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2026)> 리뷰
0. ‘센티멘탈 밸류’는 ‘남들이 보기엔 평범해 보이더라도 자신에게는 뜻깊은 의미를 가진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본 작품 <센티멘탈 밸류>는 주인공인 세 부녀의 ‘센티멘탈 밸류’인 ‘집’과 그것이 내포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통해 깊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의 두 주인공 ‘구스타브(스텔란 스카드가드 분)’와 첫째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집’으로 대표되는 ‘가족’이란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이어서 이들이 ‘가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도는 당연스럽게도 실패로 돌아간다. 아버지 ‘구스타브’는 오래 전 가족을 떠난 후, 인생의 말미에 이르러 딸들과 화해를 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거장 감독으로 칭송받는 그의 인생은 표면적으로는 좋아보였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를 다룬 각본을 쓰고 큰 딸 ‘노라’에게 주연을 맡아달라고 하지만, 바로 거절당한다. 이후 ‘레이첼’이라는 유명 배우로 촬영을 진행하지만, 각본에 담긴 ‘구스타브’의 가족사를 감당할 수 없던 ‘레이첼’은 배역을 포기한다. 이는 ‘구스타브’가 딸이 누리기 바랐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레이첼’을 통해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럴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2. 첫째 딸, ‘노라’도 마찬가지이다. 연극 배우인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며 이상 행동을 내내 보이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간 이후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에게 배역을 주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에게 차갑게 대하고, 배역도 거절한다. 이후 ‘구스타브’를 내내 피해다니던 그는 결국 동생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 분)’와의 연락도 끊어버린다. 이를 통해 공연 전 불안을 극복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무대에는 아예 오르지 못하며 문제가 심화된 모습을 보인다. '구스타브'가 그랬듯, 비슷한 성정을 지닌 부녀는 이렇게 가족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 그럴 수 없다.
3.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시작점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존재했다. ‘구스타브’의 어머니이자 ‘노라’의 할머니인 ‘카린’은 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에 저항하다 사로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가진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이를 버티지 못 하고 어린 ‘구스타브’가 집을 비웠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쟁의 상흔은 대물림된다. 어머니의 부재를 겪은 ‘구스타브’는 성장 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어린 딸들을 두고 가정을 떠난다. 이렇게 상처는 ‘노라’와 ‘아그네스’까지 흘러간다.
4. 이러한 상처는 서로를 마주할 때 회복된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려는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노라’의 말처럼, ‘아그네스’가 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를 여태껏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자신의 본심을 ‘구스타브’에게 전달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시작점으로 하여 그들을 서로를 마주한다. ‘아그네스’는 아버지가 두고 온 각본을 읽고, 그의 본심을 깨닫는다. 이후 연락을 끊은 언니 ‘노라’를 찾아가 이 각본을 전달하고 본인의 입으로 낭독하게 한다. ‘노라’는 ‘구스타브’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같은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자신은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망가진 반면 ‘아그네스’는 정상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며 자신을 탓한다. ‘아그네스’는 이에 ‘노라’라는 언니가 있었음에 아버지의 부재를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두 자매가 서로의 마음을 마주할 때, ‘구스타브’는 자신을 찾아온 ‘레이첼’에게 배역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전달받는다. 아무리 봐도 ‘노라’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들은 ‘구스타브’는 자신의 ‘센티멘탈 밸류’인 집을 향해 욕을 하며 자신을 마주한다. 집은 그의 미련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본심을 확인하며, 동시에 이를 서로에게 내놓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마주한다.
5. ‘마주함’은 회복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과정임과 동시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구스타브’는 연극을 싫어하지만 딸 ‘노라’의 첫 연극의 작가인 ‘체호프’는 좋다고 말한다. ‘노라’는 유부남과 사귀며 불륜을 일삼던 ‘구스타브’를 이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행한다. ‘집’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의 추억과 상처가 얽힌 공간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품고 있는 ‘센티멘탈 벨류’이다. 그렇기에 ‘구스타브’는 집에 집착하고, ‘노라’는 집을 떠난 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가족이 서로를 다시 받아들인 후 모습은 그렇기에 상징적이다. 그들의 영화는 집이 아닌 세트장에서 진행되며, ‘노라’가 자살 기도를 할 때 옆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 ‘구스타브’가 영화의 주인공이 죽음을 선택하기 직전 ‘컷’을 외치며 상황을 종료시킨다. 이는 ‘집’에 대한 집착에서 그들이 벗어났음을 보여주며, '노라'의 치유할 수 없는 과거의 상처를 '구스타브'가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장면이다.
6. <센티멘탈 벨류>는 전쟁이라는 깊은 비극으로 빚어진 상처에 고통 받는 가족이 서로를 마주하여 연대를 통해 차차 회복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카린’은 ‘구스타브’를 영원히 떠났지만, ‘구스타브’는 ‘노라’를 영원히 떠나지는 않았다. ‘노라’는 ‘아그네스’의 곁을 지켰고, 세 부녀는 ‘아그네스’의 아들인 ‘미하엘’을 사랑으로 대한다. 그렇기에 ‘미하엘’은 상처 받지 않고 자라날 것이다. <센티멘탈 밸류>는 세 부녀가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아름답고 위트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