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자오 <햄넷(2026)> 리뷰
0. <햄넷>은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맥베스’ 등 영문학의 대명사로 불릴만한 작품을 써낸 세계 최고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제목에서 영감을 받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소설 ‘햄릿’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 작품이다. ‘햄넷’과 ‘햄릿’이라는 단어가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는 혼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시작된 상상에서 시작되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이 작품은, 삶이 가진 숭고함을 위로하는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달한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어떠한 삶이든 자기혐오는 피할 수 없다. ‘아녜스(제시 버클리 분)’와 ‘윌리엄(폴 메스칼 분)’은 각자의 자기혐오를 겪는다. 이러한 모습을 먼저 보이는 것은 ‘윌리엄’이다. 그는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자신도 비슷한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자기혐오를 갖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폭력으로 맞선 행위는 이러한 자기혐오를 더욱 심화시킨다. ‘아녜스’는 이런 그를 구원하는 존재이다. 그의 아버지 ‘존(데이비드 윌못 분)’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에도 ‘윌’의 본질을 보며, 그가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내내 상기시킨다. 또한, ‘윌’을 아버지로부터 떨어트리기 위해 런던에 보낸 후 본인이 육아를 홀로 감내한다. 이를 통해 ‘윌리엄’은 자신의 자기혐오를 조금씩 극복한다.
2. 이후 그들의 아들 ‘햄넷(자코비 주프 분)’이 죽음을 맞이한 뒤, ‘아녜스’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그의 어머니가 ‘아녜스’를 버리고 먼저 떠났듯, 자신도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아녜스’의 어머니는 그를 사랑하였지만 지키지 못했고 먼저 떠났다. 또한, 사랑으로 딸을 가르칠 뿐이었지만, 이로 인해 딸이 ‘마녀의 딸’이라는 멸칭을 얻고 사람을 멀리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아녜스’에게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혐오의 이유가 되기 충분했다. 이런 ‘아녜스’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윌리엄’은, 자기혐오에 빠진 ‘아녜스’를 자신의 예술을 통해 구원한다. 먼저 세상을 떠난 ‘햄넷’이 세상에 남아있을 때의 모습을 현시하여 그의 용감한 행동을 모두에게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부부는 사랑을 통해 서로를 구원한다. ‘햄넷’이 자신의 쌍둥이 ‘주디스’를 사랑으로 구원하고 먼저 떠나갔듯이.
3. 영화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인 ‘To be, or not to be, this is the question’를 통해 상실과 자기혐오가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숭고하다는 것을 그려낸다. ‘윌리엄’의 어머니 ‘메리(에밀리 왓슨 분)’이 언급하였듯, 가진 것을 너무나 쉽게 잃을 수 있는 것이 ‘삶’이다. 생명은 너무나도 쉽게 사그라들기 때문에, ‘떠난다’는 선택은 쉽다. 이러한 상실은 자기혐오를 만들어내고, 자기혐오를 겪는 인간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는 이러한 죄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질 것인지, 삶으로 속죄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이에 대한 질문에 영화는 삶이라고 답하며, 이러한 삶 자체가 숭고함을 그려낸다. 죽음이라는 쉬운 선택 대신, 삶과 속죄라는 어렵고 옳은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4. 이렇듯, 삶은 언제나 죽음이 함께한다. 중세는 이러한 죽임이 삶에 더욱 가까운 시기이다. ‘메리’는 두 딸을 잃었고, ‘아녜스’는 아들을 잃었다. 이러한 점에서 초반부 등장하는 주술적인 요소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녜스’는 어머니가 항상 있던 숲에서 첫 딸을 낳는다. 숲은 죽은 어머니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아녜스’가 어머니의 숲에서 딸을 낳는 것은 어머니의 보호 속에서 이루어진 행위이다. 이는 ‘아녜스’의 어머니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딸의 출산과 손녀의 탄생을 도와준 것으로, 이러한 경계가 희미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윌’이 딸의 출생 이후 바라보는 어두운 구멍은,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뒤얽힘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연극의 클라이막스에서 ‘햄넷’이 문을 넘어가기 전 어머니에게 인사를 남기는 장면이 그것이다.
5. 그렇기에, 예술은 삶을 위로하는 마법 같은 것이다. 작품에서 ‘윌리엄’은 ‘햄넷’과 똑닮은 배우를 통해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내 상실을 겪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그려낸다. 마지막 ‘아녜스’의 미소는 이러한 가능성의 현시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극 속 ‘햄릿’의 모습은 ‘햄넷’의 전할 수 없던 용감한 행동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듦과 동시에 ‘아버지’로서 아들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윌리엄’의 자기혐오를, 그리고 자식들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했던 ‘아녜스’의 자기혐오를 치유한다. 이렇게 예술은, 초반부 ‘아녜스’를 포근히 감싸안았던 자연이 이끌어낸 주술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삶을 치유하는 마법이다.
6. <햄넷>은 삶은 그 자체로 숭고한 것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랑과 예술은 이러한 삶을 치유하고 구원한다는 메시지를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에 상상을 섞어서 아름답게 전한다. 아들을 잃고 절규하던 ‘아녜스’가 이러한 구원을 통해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를 지었듯, <햄넷>은 감정을 크게 요동치게 하는 굉장한 작품이다.
*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제시 버클리) 수상 /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캐스팅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