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벤틀리 <기차의 꿈(2025)> 리뷰
0. <기차의 꿈>은 신화적, 그 중에서도 기독교적 색채가 잔잔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는 영화가 인간의 고난을 ‘신의 시련’으로 규정하는 기독교의 태도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기차의 꿈>은 주인공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튼 분)’가 짧은 행복 뒤에 찾아오는, 죽음과 상실의 형태로 등장하는 이러한 시련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작품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작품은 이러한 시련을 죽음과 상실의 형태로 묘사한다. 죽음은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그려지는 상징이다. 기차길을 놓기 위해 행해지는 ‘벌목’이 대표적인데, 이는 나무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무’라는 먼 존재에서 보이던 이러한 죽음은 점점 주인공의 주변으로 내려앉는다. 이름 모를 아시아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같은 일을 하던 동료가 과거 행동에 인한 복수로 죽임당한다. 이렇듯 죽음은 늘상 존재하고, 이는 ‘로버트’가 친구로 여기던 ‘피플스(윌리엄 H. 메이시 분)’에게도,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도 찾아온다. 작품은 이렇게 삶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고 그렇기에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죽음은 상실을 동반한다. ‘로버트’는 산불로 인해 가족들을 잃는다. 이후 ‘로버트’는 잃어버린 가족들을 잊지 못하고 그들을 기다리며 여생을 보낸다.
2. 그렇다면, 이러한 ‘로버트’의 삶은 과연 불행했을까? 작품은 이러한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삶은 수많은 행복과 슬픔이 섞여있고, 갑작스러운 마지막을 맞이할 수도 있으며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 존재했음은 변하지 않기에 삶은 아름답다.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삶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로버트’가 아내 ‘글래디스(펄리시티 존스 분)’와 딸과 같이 보냈던 행복한 순간은 짧았지만 분명 존재했다. 화재 방지를 위해 높은 탑에서 근무하는 ‘클레어(케리 콘던 분)’가 ‘로버트’와 나눈 대화에서 ‘숲에는 산 나무도 있고 죽은 나무도 있다. 때로는 죽은 나무가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라는 대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나무는 언제나 죽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많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벌목이 되더라도, 나무는 이 세계에 어떠한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겠지만,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말부, 우주에서 보는 지구의 모습과, ‘로버트’가 하늘에서 보는 숲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거대한 세계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고, 어떠한 형태로든 정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3. 동시에 작품은 슬픔이 삶을 덮은 이후에도 행복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떠난 후에도, ‘로버트’가 강아지를 키우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가끔은 그 슬픔에 산 채로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때로는 남의 일 같기도 하죠’라고 ‘클레어’에게 말하는 ‘로버트’의 대사를 통해, 작품은 큰 슬픔이 다가온 이후에도 행복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은 행복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닌 것처럼 불행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듯이.
4. 그러한 점에서, 극후반부 ‘로버트’가 오두막 앞에 쓰러진 소녀를 구하는 장면은 이러한 삶과 세계를 긍정하는 장면이다. 초반부 ‘글래디스’는 ‘로버트’에게 ‘아버지 역할을 할 시간은 많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글래디스’와 딸 ‘케이트’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떠나버린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한 소녀가 오두막 앞에 쓰러진 채 나타나고 ‘로버트’는 그가 자신의 딸이라고 직감해 지극정성으로 치료한다. 그 꿈 같던 밤이 지나고, 소녀는 다시금 사라진다. 환상인지 실재인지 알 수조차 없는 이 순간 속에서 ‘로버트’는 구원받음을 느낀다. 자신을 떠났던 아내와 딸이 사라진 것이 아닌, 숲 속에서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죽음으로 놓인 기찻길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렸고, 사냥당한 사슴이 사냥꾼을 살아남게 하였듯이. 이는 죽음과 상실은 개개인에게는 비극이지만, 이 넓은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5. <기차의 꿈>은 20세기 초 개척 시대의 미국을 살아가던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을 통해 삶의 순환과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의 삶은 사랑으로 얻은 짧은 행복과 상실로 인한 긴 슬픔 위를 달리는 기차와도 같았다. 그는 사랑으로 얻은 행복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였고, 상실로 인한 슬픔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도착한 삶의 끝자락에서, 그는 기차길 위에 놓인 풍경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듯 자신의 삶에 놓여진 행복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영원함을 깨닫는다. 동시에 그는 먼저 떠난 가족들이 다른 형태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인다. 결국 삶이라는 기차에서 그가 보았던 풍경 속에는 모든 사랑과 모든 슬픔이 아름답게 얽혀있었다. <기차의 꿈>은 삶이라는 복잡한 존재가 가진 아름다움을 드넓은 세계에 얽힌 순환을 통해 전달하는 멋진 작품이다.
*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색상, 주제가상, 촬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