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模糊), 하다

by 소서

모호함은 자유롭다. 명료함이 빚는 대답, 소속이 묻는 의무, 뱉어진 말이 청구하는 계산서를 잠시 피할 수 있는 나만 아는 골목길. 규정되지 않음에서 오는 안도감, 나는 그 안에서 숨을 고른다. 하지만 들이마시는 공기 끝엔 유예된 비용 같은 쓴맛이 감돈다. 책임이 도착하기 전 문을 걸어 잠가 얻은 자유는 태도가 아니라 기술일 뿐이다.


나는 이 기술에 능숙하다. 익숙함은 윤리가 아닌 반복의 결과다. 반복은 무해한 얼굴로 나를 움직인다. 칼날을 피해 종이를 쥐었으나, 도리어 그 종이에 손을 베이는 자연스러운 재앙처럼.


모호함은 선택이다.
선택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소속되지 않음을 선택하여 고립된 것인가, 아니면 고립의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방랑을 택한 것인가. 두 대답은 물과 물이 만난 듯 섞여 분리되지 않는다.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라 계속 떠도는 것”이라 말하면 고독의 비참함이 희석되는 듯했다.


하지만 방랑은 무흔이 아니다. 스친 자는 향기를 남기고, 향기를 맡은 자는 목격자가 되며, 그 목격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자유 속에서 미뤄둔 정산이 타인의 시간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정박 대신 닻을 올린다.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는 삶, 스스로 ‘이방인’이라 명명한다. 반기지 않는 세계는 나를 무죄하게 만들고, 책임지지 않는 나는 스스로를 유죄하게 만든다. 나는 내 위치를 흐리기로 한다. 경계는 무너지기 쉽게, 일부러 허술하게. 흐려진 경계는 안전하고, 안전한 만큼 비겁해질 수 있다. 경계의 흐림은 방관에 면죄부를 주고, 경계의 허술함은 무너짐의 변명이 된다.


전투 앞에서 이 습관은 더 선명해진다. 내가 피난처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는 투쟁하고 가치를 쟁취한다. 나는 그 가장자리에서 관망한다. “모든 결과는 양면성을 띤다”는 말은 나의 가장 견고한 방패다. 어떤 결과에도 창을 꺼내지 않는 중립의 태도.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비명을 느낀다. 싸우는 자들이 흘린 피 위에서 자라난 평화를 아무런 대가 없이 향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중도주의자인가, 교묘한 편승자인가.


관망을 정당화하는 언어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싸움보다 삶의 흐름을 보는 사람일 뿐이라고, 나는 나를 설득한다. 문제는 진실이 나를 성찰로 이끌기보다 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먼저 작동한다는 점이다. 방패는 타인의 칼을 막아주는 동시에 내 손이 더럽혀지는 것도 막아준다. 싸움의 비용은 지불하지 않겠다고 하며 결과의 효용에는 자연스럽게 탑승한다. 중립이라는 고요한 중심 속에서 마음을 정돈하지만, 사실 그것은 ‘정산을 늦출 권리’였나. 늦춤이 길어지면 방치가 되고, 방치가 지속되면 편승이 된다. 나는 그 경계에 오래 머문다.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선택인데, 나는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지켰다고 착각한다.


이 늦춤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사소한 손동작으로도 드러난다. 화면 위의 ‘서명하기’, ‘공유’, ‘동의/반대’. 나는 그 앞에서 멈칫한다. 읽고 다시 읽는다. 양면성을 떠올리고 확신의 위험을 계산한다. 그리고 화면을 끈다. 끄는 순간 내가 한 일은 선택의 거부가 아니다. 선택의 시간을 유예했을 뿐이다. 늘어난 시간은 나를 안전하게 하고, 안전은 나를 더 능숙하게 만든다. 능숙함은 다시 ‘나는 신중하다’라는 자기 해석으로 환원된다. 신중함이 언제부터 책임이 아닌 면책의 언어가 되었던가.


이 면책은 꽤 껄끄럽다. 불편함 속에서 대답이 강요될 때, 나는 가장 가시가 없는 문장을 고른다.


"모르겠습니다."


이 문장에는 뼈대가 없다. 변화에 따라 입장을 바꾸겠다는 틈이고, 지금의 책임을 열어두겠다는 뒷문이다. 하지만 이 여지가 책임의 개방인지, 비겁한 연기인지 나는 끝까지 추궁하지 않고 멈춘다. 침묵이 윤리였던 순간들이, 방기였던 순간들의 변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윤리를 몸으로 익힌 사람만이 윤리를 가장 그럴듯하게 남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못한다.


한 가지 답을 택하는 것이 용기라면, 대답하지 않기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명함은 폭력으로 변하기 쉽고, 침묵은 방조가 되기 쉽다. 나는 그 둘 사이,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또렷하게 안다. 다시 원점이다.


나의 모호함은 지혜로운 보루인가,

회피를 위한 핑계인가.


화면 앞에서 멈춘 손가락, 바닥을 찾는 시선, 분석으로 변환된 청각 같은 것들이 내 모호함이 추상적 태도가 아니라 구체적 행위라는 사실을 자꾸 들춰낸다. 그 들춰냄이 나를 앞으로 밀어낼지, 더 정교한 방패를 만들게 할지 모르겠다. 정답의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결벽과, 방관의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는 비겁함 사이. 나는 어느 쪽으로도 정박하지 못한 채, 이 비틀거림만을 지속하다 이것만이 내가 남긴 유일한 궤적이 될까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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