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숨결, 목소리의 떨림까지. 벌어진 틈 사이로 서로가 포개진다. 매끄러운 원보다는 울퉁불퉁한 모서리가 서로의 홈에 들어맞을 때, 그 견고한 맞물림 속에서 비로소 체온은 실감이 된다.
한때는 오차 없는 차가운 정답들을 동경했다. 그러나 그 매끈한 벽 앞에서 어쩐지 늘 숨이 막혔다. 어른이 되면서 선명해진 건, '완벽'이란 인간을 수식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오류 신호였다. 이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복잡다단한 인간에 대해 겨우 건져낸 하나의 문장이자, 우리라는 미완의 존재들을 관통하는 직관이었다.
불완전한 우리가 사랑을 실감하는 증거는 서로에게 얼마나 망가짐을 허락하느냐에 있다. 서로의 뒤틀린 곳을 맞추며 웃고 울고, 질투하고 싸우다가도 끝내 껴안고 잠드는 것. 그럼에도 당연히 내일을 함께 맞이하는 것. 그러나 그 사랑 또한 우리에게서 비롯되었기에 완전할 수 없었다.
균열은 서로의 모난 구석을 사각지대에 숨기고 싶어질 때 시작되었다. 편평한 면만 내보이는 관계는 온전한 내가 아니었다. 모난 구석을 숨긴 채 나누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조차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이건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었다.
어른이 되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자 세상에서 비껴난 이방인 같다는 감각이 찾아왔다. 처음엔 그것이 성숙의 증거인 양 으스대기도 했으나, 어떤 밤에는 그 생각이 형태를 바꿔 어두운 천장을 가득 메우는 외로움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내게는 그 시간이 악몽보다 지독했고 한밤보다 어두웠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엄지손가락으로 타인의 삶을 무심히 밀어 올리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독을 앓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화면 밝기를 낮춘 검은 액정에는 내 얼굴 윤곽이 희미하게 겹쳐 비친다. 이 고립이 나 혼자만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의 기류처럼 읽힐 때 나는 잠시 안도한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사각의 화면 너머에서 온갖 감정의 격랑을 겪는 세계. 이런 변화에 대한 불안이 묻은 의문들이 수십 번 손가락 끝을 저릿하게 만들지만, 그런 불안을 감지하고 있다는 희미한 자부심은 몇 초 만에 나를 다시 덤덤한 방관자로 돌려놓는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나는 제일 먼저 내 방으로 숨어든다. 그 속에서 나를 혹독하게 다듬고 깎는다. 옳고 그름을 검색하고, 확인하고, 되짚으며 세계를 그럴듯하게 완전해 보이게끔 빚어낸다. 그런 다음 홀로 쌓아 올린 경계심의 울타리 안에 선 채 타인을 만난다.
끊임없이 읽고, 가늠하고, 범주에 넣는다.
그렇게 서로의 빈틈을 드러내지 않는 무균실의 교류를 이어간다.
나의 허점, 뒤틀린 욕망, 타인을 향한 원초적인, 때로는 원색적이기까지 한 비난들은 오직 내 손 안의 검은 액정 속에만 부지기수로 쌓인다. 결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꽉 쥔다. 누군가 스치듯 내 화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손아귀의 긴장은 극에 달하고 예민함이 새어 나온다.
거리를 벌린다. 가린다. 웅크린다.
몸이 기억하는 이 방어기제는 오래된 기억이 밀어 올린 반응이다.
겁 없이 속을 내보이며 서로에게 흠뻑 침범했던 어린 날의 윤곽은 흐릿해졌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무엇이 결정적 균열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사라지고, 다치던 순간 몸과 마음이 익힌 거부 반응만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감각한다.
인간은 찬란한 기억을 간직하기보다 아픈 기억을 대비책으로 붙들 때 생존에 가까워진다고 느끼는 걸까. 수많은 생채기. 아물고도 그 자리를 지키는 흉터.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가 쥘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가장 초라한 대비책이다.
이토록 방어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더 매끈한 사람이 아닌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이 기운다.
모두가 자신의 모난 구석을 숨기고 둥글게 굴러가기 위해 필사적일 때, 형태 따위 상관없다는 듯 날 서고 뭉툭한 면을 툭 내보이는 사람. 잘 닦인 아스팔트보다 인적 드문 자갈밭을 저벅저벅 걸어가 보는 사람. 햇살이 좋아 드러눕고, 바람이 좋아 팔을 벌리고, 거센 파도에도 기꺼이 발을 담그는 사람.
그는 자갈밭에 홀로 떨어진 유리 조각처럼 투명하고,
아름답고 독특하며,
그렇기에 위험하다.
그가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낼수록, 내 안에서 가차 없이 깎인 모서리와 치워지지 못한 부스러기들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유리 조각은 위험하다. 어디에서 베일 지 모른다. 그런 위험 속에서 나는 나를 드러낼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그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다.
그저 감시하듯 지켜본다.
그가 나를 볼 수 없도록 깊이 웅크린 채로.
나는 그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 먼저 숨는다.
그 확인이 불러올 비참함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숨어서라기보다, 그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감정은 점차 경외를 동반한다. 그 경외만으로도 그를 사랑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그가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모습조차 드러낸 적이 없으니.
그는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 투명한 눈에 비친 내 형상에 스스로 베여나갈 뿐이다. 우리 사이에 어떤 대칭이나 등식 같은 것을 기대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눈이 멀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가 반사하는 빛 한 줄기까지 망막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내 안을 헤집는 그 찬란한 빛이 결국 씨앗이 된 것일까. 욕망은 가장 눈부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발아한다. 그것은 갖고 싶은 것보다 영영 갖지 못하는 것, 아예 없었던 것보다 있었다가 사라진 무언가의 틈에서 뿌리를 내린다.
솔직함이 무기가 되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아마 그 말은 우리가 숨기고 가리는 일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안쪽을 곪게 하는 독을 품은 채 걸어간다.
곪은 속은 비틀린다. 그래서 우리는 투명하고 영롱한 것을 본능적으로 증오한다. 그 증오의 실체는 실은 그 투명함에 비친 우리 자신의 비틀린 형상에 대한 혐오일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절대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서로의 바닥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슬픈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