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DDP
/ FINDER,
다른 취향의 신호
개인이 자유롭게 취향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말한다. 나에게 요즘의 유행은 단순히 빠른 교체로만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취향과 서브컬처가 바닷속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수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저마다의 깊이로 잠겨 드는 흐름에 가깝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보다는 이미 어딘가에 축적되어 있던 세계들이 저마다의 시차를 두고 우리 앞에 도착하는 셈이다.
문제는 그 모든 흐름을 끝까지 따라갈 여유가 우리에게 좀처럼 없다는 데 있다. 사회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개인의 시간은 늘 빠듯하다. 사람들은 짧은 틈 안에서 가장 확실한 만족을 돌려주는 쪽으로 먼저 기운다.
물론 익숙한 선택지로 돌아가는 이유를 피로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경제적 효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마음, 접근성, 알고리즘, 공동체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다만 선택지가 무수히 열려 있을수록 무언가를 깊게 탐색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우리는 자유롭게 고르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무엇을 어디까지 좋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현실과 협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타인의 취향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장면에 우리는 주목한다. 누군가는 새 브랜드를 먼저 발견하고, 누군가는 막 나온 음반을 듣고, 또 누군가는 독립 출판물이나 한정판 굿즈를 재빨리 알아챈다. 먼저 반응한 이들의 감각은 곧 타인의 대화와 피드 속으로 번져오고, 우리는 긴 탐색 없이도 누군가의 열기와 애정이 스친 대상을 손쉽게 접한다.
이때 유행은 단순한 소비의 파도라기보다, 흩어져 있던 기호들이 잠시 같은 표면 위로 떠 오르는 장면이 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아닌, 각자 다른 자리에서 축적하던 감각이 한 시점에 함께 가시화되는 순간인 것이다.
울트라백화점 Vol.2는 바로 그 장면을 전시장 안에 옮겨놓았다. ‘FINDER’, ‘COLLECTOR’, ‘CUSTOMER’라는 세 개의 시선을 따라 취향 탐색의 여정을 설계한 이 구조는, 여러 브랜드와 창작자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발견, 축적, 선택, 소장을 거치며 취향이 윤곽을 잡아가는 과정을 하나의 동선으로 구현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FINDER’ 섹션은, 지금 어떤 감각이 어디에서 먼저 떠오르고 있는지를 살피게 하는 구역이었다. 060mag, 닷슬래시대시, 데이지 등 각기 다른 플랫폼과 매체가 제안하는 인사이트는 하나의 중심으로 정렬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내오는 신호에 가깝다. 그 앞에서 관객은 “요즘 유행하는 것”을 확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 수많은 징후 가운데 무엇에 자기 감각이 반응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여기서 전시가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취향은 대세를 따라가는 반사적 선택이 아니라, 자기 감각이 어느 세계에서 걸음을 멈추는지를 알아보는 일이라는 지점이다.
/ COLLECTOR,
오래 쌓인 애정이 만들어 낸 하나의 세계
이어지는 ‘COLLECTOR’ 섹션은 취향을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축적한 애정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음악, 출판, 영화, 패션 등 각자의 분야를 깊게 파고든 이들이 모여 있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기준 아래 획일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집념이 저마다의 질감을 유지한 채 공존한다.
비사이드 레코즈가 제안하는 플레이리스트, 텍스트 에비뉴가 모아놓은 문장과 책, 리뷰어스 씨어터의 시선, 더 리얼 부티크가 보여주는 수집으로서의 패션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같은 사실을 드러낸다. 취향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무엇에 시간을 쏟고 무엇을 자기 삶의 일부로 길러낼지 스스로 결정해 온 시간의 축적이라는 점이다.
이번 Vol.2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Who made this?”였다. 무엇을 만들었는가 보다 누가, 왜, 어떤 시간을 통과하며 이것을 지속해 왔는가를 먼저 묻는 것. 빠르게 복제되고 쉽게 대체되는 시대에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결과물만 소비하고 지나칠 때, 어떤 세계를 끝내 유지시키는 동력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기준과 고집, 그리고 반복된 시간이다.
취향의 세계는 그렇게 누군가의 지독한 편애와 축적된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쯤에서 ‘울트라백화점’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취향이 자본주의의 가장 유통적인 공간의 언어와 겹쳐진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위태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가피하다.
취향이 시장의 논리로 옮겨지는 순간 맥락은 흐려지고, 쌓아온 세계는 납작해질 위험을 안는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의 취향은 유통과 구매, 선택과 소장의 구조를 통과하면서 점차 사회적 형태를 갖춘다. 전시는 그 간격 속 긴장을 느끼게 한다.
울트라백화점은 단순한 소비 공간이라기보다, 취향과 소비가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처럼 읽힌다. 백화점은 원래 많은 것을 한꺼번에 진열하고, 비교하게 하고, 지나가게 하고, 결국 무엇인가 앞에서 멈추게 만드는 공간이다.
울트라백화점 역시 그 구조를 닮아 있지만, 그 안에서 관객이 하게 되는 일은 단순한 소비의 결정만은 아니다. 어떤 부스는 스쳐 지나가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발걸음이 늦어지고, 처음 마주치는 수많은 이름 중에서도 곧장 검색해 보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소비는 여기서 취향을 훼손하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취향이 사회와 접속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작동한다.
/ CUSTOMER,
사회와 접속하는 취향
그렇기에 이 전시는 취향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들까지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요즘은 새로운 유입을 두고 종종 ‘얕다’라고 판단하는 시선이 있다. 기존 팬들이 새로 들어온 이들을 ‘포저’라 부르며 위계를 세우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물론 이런 태도를 단순한 배타성으로만 밀어낼 수는 없다. 문화가 지나치게 빨리 상업화될 때 본래의 맥락이 사라지고, 단지 예쁜 이미지나 소비 가능한 기호로만 남는 데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애정이 문화를 떠받치는 힘이라면, 새롭게 유입되는 이들의 호기심은 그 문화를 다음 단계로 밀어주는 동력이다. 깊은 애정과 느슨한 입문은 서로를 훼손하지 않는다. 같은 생태계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을 뿐이다. 많은 애정은 가벼운 호기심이나 우연한 마주침에서 시작된다.
하위문화가 도시와 브랜드의 언어로 옮겨지는 지금 필요한 것은 배제가 아니라 균형이다. 너무 적은 사람만 남으면 새로움을 잃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 본래의 색을 잃기 쉽다. 살아남는 문화는 늘 그 사이의 불안정한 경계 위에서 간신히 형태를 유지한다.
문화를 지키는 일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끝없이 조율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CUSTOMER’ 섹션은 단순한 판매 구역이라기보다, 취향이 사회적 관계 속으로 편입되는 마지막 단계처럼 읽혔다. 아티스트의 작업과 한정판 굿즈를 통해 전시의 경험은 전시장 바깥의 일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여기서의 소장은 흔한 기념품 구매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것은 물건을 사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내가 이 세계와 어디까지 연결될지를 고르는 선택이다. 전시는 관객을 수동적인 구매자로만 두지 않는다. 자신의 기준으로 의미와 관계를 고르는 선택자로 상정한다.
무엇을 살 것인가 보다 어떤 태도와 이어질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소비는 여기서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취향이 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된다.
결국 이 전시가 보여준 것은 취향의 화려함보다 취향의 시간이었다. 오늘의 취향은 나만의 고립된 성채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다른 이에게 건너가며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자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깊이 알 수는 없다. 때로는 내 취향에만 파묻혀 지내고, 때로는 바깥에서 크게 울리는 신호에 잠깐 반응한 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표류하듯 스쳐 가는 접속을 무가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문화는 바로 그 찰나의 시선에서 시작되고, 어떤 이는 그 짧은 멈춤 끝에 예상보다 긴 시간을 한 세계 곁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유행은 빠르게 번지고 사라지는 소음이라기보다, 흩어진 사람들이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장면에 더 가깝다. 다만 그 연결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본다고 해서 같은 깊이로 머무르지 않고, 같은 이름을 안다고 해서 같은 맥락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어떤 취향은 누군가에게 오래된 삶의 형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잠깐 스쳐 가는 표면에 불과하다. 울트라백화점은 그 찰나를 단순한 열기나 소비의 표면으로 다루지 않고, 그 뒤에 놓인 사람의 시간과 태도, 그리고 연결의 방식을 함께 보여주었다.
지금 시대의 연결은 오래 아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잠깐 멈췄을 뿐인데 이상하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 분명 남의 취향이라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 안의 감각이 먼저 반응해 버리는 것. 유행은 종종 그런 미완의 접속을 통해서만 우리를 한곳에 세운다.
전시장을 빠져나온 뒤에 내게 남은 질문도 그런 것이다. 잠깐 같은 곳을 본 사람들이 정말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는지, 내가 멈춘 그 자리 역시 발견이었는지 복귀였는지. 취향이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 역시 결국 그 정도의 어긋남과 시차를 품은 채로만 성립한다.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는 오는 5월 10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전시 2관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