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원하는 이상도 다르고, 돌아오는 운도 다르다. 그래서 만족의 마지노선을 잡고 기회가 왔던 채널A나 MBC 등 그 정도선에서 일단은 만족하고 그다음을 생각하는 게 더 현명했다. 먼저 피디 시험에 붙은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운'이다. 사실 이 운이라는 걸 나는 애써 부정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 희박한 운을 믿고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근자감을 시작으로 도전했던 게 말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뽑는 일에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그간 이뤄온 노력들이 그 조건들에 충족했다고 생각했었고 계속 부족한 조건을 채우려고 달려들었다. 현재는 근자감마저도 사라졌다. 그래서 '뒷심'이라는 것에 절박했나 보다.
그리고 현재 뒷심이라고 생각한 곳을 나왔다. 퇴사한 곳은 플랜 B 아니 플랜 D 정도즈음 되었을까? 일단은 일을 시작하려고 들어갔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 심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이외에 지금까지 뒷심으로 생각한 곳들도 기회가 왔었다. 제주 MBC, MBC C&I, MBN 등등이 그랬다. 채널A도 마지노와 뒷심 그 사이에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열렬히 열망하는 곳은 시험을 볼 기회조차 없었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지내야 하나? 어쩌면 현재의 회사를 나오기로 빨리 가닥이 잡힌 게 고민을 줄여주었다.플랜 D가 사라졌으니 플랜 A로 향해야 한다고 떠미는 것 같다. 그러나지금은 한 치 앞도 정해진 게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른 계약직을 지원했다. 일단은 이번 겨울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긴 싫다.
멘털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 더 안 좋았지만 그 시절은 오히려 '나도 될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감이 있었다.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판도라가 연 상자에서 남은 게 희망이었는지 이제야 그 설화를 이해한다. 모든 악감정을 다 제하고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앞을 나아갈 수 있다는' '내 인생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감이다. 이제 나이도 많이 차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선뜻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