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설레서 눈을 떠본적이 언제였더라.'
오늘의 글은 이 한문장에서 기인한다. 내가 언제 설레었는가에 대해서. 예전의 나는 가을아침 가을날의 쌀쌀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그 바람을 맞으면서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맞는 서늘한 가을 바람은 내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곤 했었다.
'그 때의 여유를 언제 또 느껴봤더라.' 하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에는 '진정한 쉼' 이 없었다.
재수를 시작하고 공대에 입학했고, 매번 학기장학금을 받았고 수석졸업의 타이틀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은 무엇이었나 , 그런게 있었던가. 하는 물음이 몰려온다.
대학교 방학에는 온갖 자격증과 영어공부에 도전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긴 여행은 내가 교환학생 기간에 가본것이 처음이었다.
아. 교환학생 1년의 그 시절이 나의 유일한 방탕한 생활의 시작이자 여유가 있던 삶을 가진 소중한 기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긴 취준생활에 이은 첫번째 직장, 두번째직장, 세번째직장, 그리고 현재의 네번째 직장까지. '내 삶에서 내가 나를 위해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
이제는 쉼이 필요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드는 순간이다. 아마도 내 몸은 기력이 다했다고 나에게 쉼을 요청했는데, 나의 뇌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나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건 나에게 힘든일이 다른 사람에겐 힘들지 않을수 있고, 나에게 힘들지 않은 일이 타인에게는 힘든일이라는거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의 에너지는 어디까지인걸까
나는 진정한 쉼을 위해 현재의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일까
이렇게 현실에 이끌려 살아가다 보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
아니면 이건 모두 현재의 힘듦을 회피하고자 하는 회피형 생각인걸까
쉼의 기간을 진정으로 가지면 나는 행복할까
"쉼표"의 국어적 사전은 다음과 같다.
어구를 나열하거나 문장의 연결 관계를 나타낼 때, 문장에서 끊어 읽을 부분임을 나타낼 때 쓰는 ‘,’ 형태의 문장부호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다음달 대출이자, 통신비, 보험료 ) 나는 다시 내 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로 한다. 올해 안에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기를.
그리고 쉼을 원하는 내 몸의 욕구를 나는 30대 안에는 들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진정한 쉼 뒤에, 내 인생은 쉼표를 찍고 어디로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