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사회> 27화
미라는
그날도 같은 카페에 있었다.
늘 앉던
창가 자리
두 번째 의자였다.
익숙해진 정적을 깬 것은
맞은편 여자가
테이블 위로 밀어 놓은
휴대폰 화면이었다.
“이거 봤어요?
요즘 이런 기사 많더라고요.”
가벼운 말투와 함께
도착한 문장은
묘하게 서늘했다.
“개인 AI는 관계를 대체하지 않는다 -
한국AI윤리연구소 내부 분석.”
미라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에야
그 화면을 바라봤다.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문장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를
닮았는지.
“이 말
요즘 논란이래요.”
여자가 말했다.
“가족 해체를 정당화한다나
뭐라나.”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근데 저는
맞는 말 같기도 해요.
원래 문제 있던 집들이
드러나는 거지
AI 때문만은 아니잖아요.”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 문장을
속으로
천천히 되짚었다.
맞는 말.
하지만
너무 쉽게
내뱉어지는 말.
“어디 연구소예요?”
여자가
가볍게 물었다.
미라는
시선을 내려
짧게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거짓말도 아니었고
회피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말이
누구의 것인지
더 이상
밝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화는
날씨 이야기로
흘러갔다.
일상적인 말들이
테이블 위를
가볍게 지나갔다.
하지만
미라의 생각은
여전히
그 문장 안에
머물러 있었다.
카페를 나서며
미라는
문득 깨달았다.
이 말이
남편
윤호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집 안의
무거운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 없는
기사 문장이 되어
세상 속을
떠돌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의견과
가벼운 판단 사이를
오가며.
말에서
주인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 무게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훨씬
쉽게
재단한다.
미라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 틈에서
누군가의
고통이 섞인 철학은
가벼운 소문처럼
소모되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미라는
걸음을 멈췄다.
이 차가운 문장을
집 안으로
들일 것인가.
아니면
문 밖에
두고
들어갈 것인가.
미라는
열쇠를
아직
돌리지 못한 채
닫힌 문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 작가 메모
말이
주인을 잃으면,
사람들은
더 쉽게
자기 말처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