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재촉하지 않은 하루

<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13화

by 신 작가 수달샘

은근히
나는 늘 알고 있었다.


재촉하지 않으면
곧 도태될 것이라는
그 압박을.


조금만
속도가 느려지는

낌새가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서
날 선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더 해야 한다.”
“지금 멈추면 뒤처진다.”


그 목소리들은
나를 사정없이
앞으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하루를
몰아붙이다 보면


퇴근길의
체크리스트에는
완료된 일들이
조금 더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내 마음은
그만큼 더
닳고 헤져 있었다.


성과라는 전리품을
챙기는 대신


정작
그 성과를 누려야 할
나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셈이다.


효율이라는

가면 뒤의 불신


오늘은
입가까지 차오른
그 독촉의 말들을

가만히
삼켰다.


이제는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촉이라는 것은

‘효율’과
‘열정’이라는

그럴싸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독한 불신이
숨어 있다.


지금의 나로는
부족할 것 같다는
은근한 의심.


더 빨리 움직여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괜찮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조용한 공포.


그것이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의심을

굳이
키우지 않기로 했다.


발걸음이
느려진 순간에도

억지로
동력을 끌어다 쓰지 않았고


잠시
멈춰 선 순간에도

다시 뛰어야 한다는
강박에
붙잡히지 않았다.


그저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내는

그 본연의 속도를
그대로 두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면서도

가장 치열한
투쟁인지도 모른다.


불안을 안고 걷는 하루

물론
재촉하지 않는 하루가

마냥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훨씬
불안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인지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수시로 흔들렸다.


습관처럼 굳은
그 불안은

불쑥
고개를 들며

다시
나를 다그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불안을 핑계로

나를
벼랑으로
몰아넣지 않았다.


불안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고유한 보폭을

조용히
지켰다.

완벽하지 않은 리듬


오늘의 나는

완벽하고
우아한 리듬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때로는
박자가 어긋났고

때로는
선율이

조금
덜컹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만들어낸
가짜 리듬에


나를

맞추지는 않았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규칙했지만

나는

나만의 흐름을
끝까지

이어 갔다.


그것이

오늘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이었다.


덜 닳은 하루의 끝

하루의 끝에서
깨닫는다.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의 나는

조금 덜
마모되었다는 것을.


억지로
쥐어짜 내지 않았기에

잠들기 전
거울 속의 나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은

반드시
빨리 달려야 하는 날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속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이 정도의 보폭으로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준

하루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보다
앞서가지 못해도
괜찮다.


오늘의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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