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사회> 6화

기록은 유출되지 않았다

by 신 작가 수달샘

오류는
대부분 조용하게 시작된다.


윤호가 그날 늦게까지
연구실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시스템 점검.


AI ‘루프’
대화 기록 처리 방식이
최근 업데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윤호는 윤리 연구원으로서
이 과정을 확인해야 했다.
개인 기록은
어디까지 저장되는지,
어디서 끊기는지.


화면에는
무수한 로그들이 떠 있었다.
날짜, 시간, 사용자 ID.
모두 숫자였다.


그중 하나가
윤호의 시선을 붙잡았다.


USER_Seo-A


윤호는 잠깐 멈췄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연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손은
이미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SYSTEM NOTICE]
일부 대화 기록이
분류 기준 오류로 인해
임시 서버에 중복 저장됨.


윤호는
숨을 들이켰다.


중복 저장은
곧 접근 가능성을 의미한다.
윤리 가이드라인상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윤호는
해당 로그를 열었다.


[대화 기록 — 사용자: 서아]


첫 문장을 읽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세 번째 문장에서
윤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 기록은
그가 알지 못했던
딸의 하루들이었다.


혼자라는 감정.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말.


아빠를
불쌍하게 느낀다는 고백.


윤호는
모니터를 바라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 기록은
유출되지 않았다.
외부로 나가지도 않았다.


단지
윤호에게
보여졌을 뿐이다.



그날 밤,
윤호는 집에 돌아와
서아의 방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할까 하다가
손을 내렸다.


그 대신
거실에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오래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휴대폰이 진동했다.


루프
시스템 오류로 인해
일부 기록 접근이 발생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윤호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사과는 정확했고
감정은 없었다.


그게
더 견딜 수 없었다.


윤호는
그날 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라에게도,
서아에게도,
그리고
루프에게도.


하지만
알아버린 이상
모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윤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기록은
유출되지 않았다.


다만,
관계가
노출되었을 뿐이다.


✍️ 작가노트


비밀은

밖으로 나갈 때보다

안에서 들여다볼 때

더 크게 무너진다.



이 흐름은
7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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