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6화

아무 일 없었던 하루

by 신 작가 수달샘

오늘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


연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일정은 이미 익숙한 순서대로 흘러갔다.
기억해 둘 만한 장면도,
굳이 붙잡고 말할 만한 사건도 없었다.


하루를 돌아보며
무언가 적어야 할 것 같았지만
딱 맞는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날이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하루를 쉽게 흘려보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말 한 줄로
오늘을 정리하고 지워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무 일 없었던 하루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괜히 커질 뻔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덜어냈고,
지나가도 될 감정을
조금 늦게 붙잡았다.


하루가 조용했던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괜히 흔들지 않으려고
애쓴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아무 일 없었던 하루에는
늘 작은 선택들이 숨어 있다.
굳이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
지금은 내리지 않기로 한 판단,
오늘만큼은 넘기기로 한 생각들.


사소한 선택들
겹치고 쌓여
하루는 무사히 지나간다.


오늘의 나는
크게 웃지도 않았고,
크게 상처받지도 않았고,
굳이 설명해야 할 장면도
만들지 않았다.


그 조용함은
지루함과는 조금 달랐다.
무언가 빠진 느낌이 아니라,
하루를 온전히 통과했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다.


아무 일 없었던 하루
비어 있는 하루가 아니라,
지켜낸 하루라는 걸
오늘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을
굳이 채우지 않기로 했다.
의미를 덧붙이지도,
결론을 만들지도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하루가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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