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관심 없는 중학생의 특목고 이야기 (1)

가치관의 형성

by 이고르

중학생 때는 영어, 수학 학원 정도야 다녔지만 공부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 당시 막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게임 리그오브레전드(롤)와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께 도서관을 간다고 거짓말 치고 도서관에서 밥 먹을 돈을 아껴서 하루 종일 친구와 PC방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고, 내가 에이스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농구부를 나름 열심히 해서 구청장 배 우승으로 구 대표로 시장 배 대회를 나가보기도 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었는데, 갑자기 같은 반 친구가 내가 외고를 갈 수 있다며 같이 준비해 보자고 했다. 알아보니 다른 과목들은 모두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운 좋게도 당시 2학년 때까지는 영어가 절대평가고 모두 A성적(만점)을 취득한 상황이라 상대평가인 3학년 때 영어 성적을 잘 받으면 외고 진학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공부에 목표의식을 가지기 시작하니 등수가 쭉쭉 올랐다. 당시 한 학년에 600명 정도가 있었는데, 대략 300등 정도에서 30등 등 정도까지는 종합 등수도 끌어올리고, 영어도 1등급과 2등급으로 마무리했다. 이때 뭔가 처음으로 공부를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찌저찌 러시아어과에 진학했는데, 처음 배우는 러시아어도 나름 너무 재밌고 좋았다.


외고에 들어와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3등급~4등급 언저리에 머물렀다. 이때 당시에는 무력감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어차피 나는 공부를 원래 하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이미 벌어져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여하튼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분위기는 빈말로 말해도 좋지는 않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내신을 잘 봐서 수시로 좋은 대학을 진학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다들 하다 보니 그 '조금만'의 기준이 점점 높아졌고, 경쟁 때문에 점점 각박해지는 분위기가 눈에도 보였다.


내가 1학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을 겪기 전에는.


기숙사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후배가 엉엉 울고 있었다. 개인주의가 심하고, 서로 견제가 심한 학교 분위기에서 나도 처음에는 괜한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생각에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우는 얼굴이 너무 자꾸 기억이 나서, 다시 가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울고 있었다. 가서 남들 다 보는 여기서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니, '학교가 무섭고,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3월 둘째 주였으니까, 입학한 지 2주 만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화가 났다.


더 자세히 물어보니 그 기숙사 방 룸메이트(4인)끼리 각자 어떤 자격증을 취득했는지 등 선행학습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본인은 그런 선행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룸메이트들과 대화가 안 되고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려워서 뛰쳐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도 환경에 따라 그 고통이 심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견딜 만하기도 하다.

둘째,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당연하게도 바뀌지 않는다.


당시 대학 가려면 당연히 이 정도 상호 견제와 경쟁은 당연하다고 느꼈지만, 이 일을 겪은 이후에 뭔가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바꿔 보고 싶었다. 이런 분위기. 내 문제의식을 공감하는 친구와 함께 팀을 짜서, 전교 임원 선거에 나갔다. 대표를 안 하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큰 선거(학교 전체 단위)에 나서니 나를 모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억나는 뒷담으로는 '페이스북에 혼자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을 보니 자신감이 없는 애다'라는 모함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여차저차 당선된 이후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학교를 바꿔보고자 노력했다.


첫째, 문화의 측면이다. 학교가 서울에 있는데 기숙사에 갇혀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경쟁하고 있으니 화가 서로에게 뻗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복면가왕과 비슷한 '복면끼왕'이라는 문화행사를 구상했다. 실행은 내가 하지 않았지만, 최초 공약 구상에서는 내가 주도했다. 실행한 친구가 능력이 출중한 친구라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둘째, 정책의 측면이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가장 좋은 대학교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대학교에 우리 고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진학하면 적어도 과거 미화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서울에 있는 기숙사 학교면서, 우리보다 서울대를 수시로 많이 보내는 하나고등학교 전교회장에게 연락했고, 감사하게도 다양한 정책 원안을 이메일로 보내줘서 하나고등학교의 정책 중 적용할 만한 정책을 우리 고등학교의 실정에 맞게 보고서를 작성하여 우리 연구진학부장 선생님께 건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도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었는데, 전교 부회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일개 학생이 보고서 써온 것을 성심성의껏 검토해 주시고 학교에 적용해 주셨다.


이 외에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일단,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기기는 하였으나 나에 대한 모함이 지나친 상황이었고(심지어 선생님도 나를 불러서 '너 요즘 뒤에서 말나와'를 시전 하셨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지만 그때는 어려서, 나도 많이 위축되었던 것 같다.


졸업할 때쯤 되니 이런 아쉬웠던 점들에 대해서는 잊히고,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만 머리에 맴돌았다. 그때 내 앞에서 울던 친구는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열심히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게 아닐까? 이런 고민과 현타에 간략하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던 그 친구가 연락이 왔다. 기숙사 학교 특성상 티 나게 챙겨주면 오히려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소문이 돌 수 있기 때문에 그날만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 뒤로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데, 그때 그 연락을 통해 들었던 말이 내 인생의 가치관 형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기억나는 대로 대충 재구성하면 '선배는 아무것도 못했다고 자책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선배가 여기저기 뛰어다닌 걸로 위로받았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최악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그 한 사람이 위로받는다면,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졸업 이후 이리저리 방황했지만, 정착하게 된 변호사라는 진로에 만족하는 것은 이런 내 근본적인 삶에 대한 가치관을 변호사라는 진로가 잘 충족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는 나에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배움의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특목고를 가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진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타인을 위한 삶의 기쁨을 배웠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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