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에서 박수받기
나는 고교 내신 4등급으로 고려대학교에 합격했다. 외국어고등학교라는 특수성도 있었겠지만, 수능 최저 4합6(국어/영어/수학/탐구1과목)을 맞췄고, 면접을 정말 잘 봤던 것 같다. 당시 수시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특기자전형), 철학과(일반전형) 등을 적었었는데, 극과 극으로 면접을 봤다.
특기자전형 면접은 수능 전에 봤던 것 같다. 수능도 치기 전에 떨리는 마음에 고려대학교에 가서 노어노문학과 면접에 들어갔는데, 지원동기를 물어보길래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배운 러시아어를 또 배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서 직감했다. 아, 떨어졌구나. 실제로도 떨어졌다. 분명 지원동기를 준비해 가긴 했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의 교수님 앞에서 거짓말을 칠 수가 없었다.
일반전형 면접은 수능 이후에 봤다. 수능을 치고 이제는 진짜 잘 봐야 된다는 생각에 철학과 면접장에 들어섰는데, 내가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고민했던 행복에 대한 생각(작가 링크에 있는 네이버 블로그에 관련 글을 적어두었다)이 지성면접 주제로 나왔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계속 말하다가, 나가라고 쫓아내서(?) 말을 끊고 나가게 되었다. 괜히 서운했던 기억이.. 저 더 말할 수 있어요
인성면접에 들어갔는데, 대체로 분위기가 좋았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면접장을 박차고 나왔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께서 내 생활기록부 독서기록에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이 있는 것을 보고 샌델은 공동체주의자인데 학생은 개인주의자인지 공동체주의자인지 물어보셨다. 그때 딱 3초간 고민하면서 고려대학교가 역사적으로 어떤 학교인지 되새겼다. 반드시 공동체주의로 답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순발력을 발휘했다.
"지금 교수님과 제가 앉아 있는 이 면접장은 참 따뜻합니다. 그러나 폭설이 내린 오늘,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1달러가 없어서 얼어 죽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제가 개인주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대답에 진짜 과장이 아니라 면접을 보는 중인데 교수님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셨다. 그리고 나가라고 하셨다. 나가면서 확신했다. 아, 이건 붙었다.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떨어질 수가 없다고. 실제로도 붙었다. 내가 한 답변이 딱히 뭔가 논리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교수님이 원하는 말을 완벽하게 해 드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짓말을 참 못하는 사람이다. 준비도 안 한 상황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때 당시에는 저런 생각을 진심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나 혼자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한번 더 생각하는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다. 다만, 이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삶의 이익을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오만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신중해진 것 같기는 하다.
여하튼, 팩트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짐작하기로는 내신이 낮았지만 면접을 잘 봐서 대학에 합격한 것 같다. 특히, 당시 내가 입시할 바로 그 해에 고려대학교에 논술전형이 폐지되고 일반전형이 생겼는데 그 일반전형에 합격한 것을 보니 나는 참 운도 좋은 사람이다. 그 운을 잡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였을 뿐, 지금도 나는 정말 많은 우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