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내신 4등급의 고려대학교 이야기 (2)

설익은 고민과 섣부른 진로의 결정

by 이고르

연봉 100배를 거절한 EBS 강사 윤혜정 선생님은 최근 유퀴즈에 나와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참 불쌍하고, 제도적으로도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타인이 마련한 대학 서열이라는 기준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 말씀에 백배 공감한다. 나는 사회가 정해준 루트를 아주 충실하게 따른 학생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을 평가하건대, 단체로 정신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대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뭔가 본인이 문제가 없어 보여도 심리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고 조심스럽게 권한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우울과 불안에 빠져 대학교 1학년을 보냈던 것 같다. 외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그 학과 학번 대표를 맡아 각종 고려대학교 축제 행사, 주점 등을 총괄하고 단과대 학생회에도 들어가서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어릴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결핍인 인정과 사랑에 목마른 삶을 보냈다. 어떻게 그걸 충족해야 할지 불안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인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큰 경쟁인 취업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은 낮았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리저리 충돌했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기에 서로 자신의 부족함을 부딪히기 바쁜 1학년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지만 신경 쓰다 보니 마음에 없는 일도 많이 했고, '대단해 보이는 것'에 집착했다. 학번 대표, 단과대 학생회, 중앙동아리를 병행하면서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나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 삶을 살다가 친하게 지내던 대학 동기와 여름방학에 둘이 3주가량 유럽 배낭여행을 갔는데, 가서 지겹게 싸웠지만 싸우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잡게 되었고, 적어도 바쁘게 사는 것이 대단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그전까지 무리하던 활동들을 모두 그만뒀다. 운동 관련 중앙동아리를 그만뒀고, 단과대 학생회 활동을 마무리했으며, 학과에서 하던 활동들을 거의 그만뒀다. 그리고 2학기에는 말 그대로 잠만 자고 술만 먹었다. 수업을 전부 오전으로 당겨서 수강신청하고, 오전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낮잠을 잔 후 저녁에 일어나 술을 먹었다.


그러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폐인처럼 살 수는 없다 싶어서 1학년을 마치자마자 그다음 해 1월에 바로 육군에 입대했다. 4년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진학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과 어울리니 도대체 어떻게 관계를 일구어 나가야 하는지 너무 어려웠다.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몇 개 있는데, 선임들의 "야~ 군대 잘 왔다. 내가 고대도 때려보고." "넌 고대 나와서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해?"


군에서는 헌병(경찰) 병과로 일했는데, 성폭행범이나 살인범에게 밥을 주고 청소를 시키는 경험도 해봤다. 생각보다 감옥(수용소)에서 잡범들이 난리 치고, 흉악범들은 조용하더라. 악이 그렇게나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 병과의 또 다른 역할은 다른 병과의 군기를 잡는 일이다. 휴가에서 복귀하거나 휴가를 출발하는 병사 중 군 기강이 해이해진(군복을 제대로 안 입는다거나 등) 병사를 잡아 징계를 청구하는 역할. 그러다 보니 우리 부대 내에서의 똥군기가 심했다.


옆 건물 후임이 새벽에 공부하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2시간 동안 구구절절 자신이 왜 자살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살할 것인지를 나에게 상담했다. 심상치 않다 싶어서 당직 간부님께 보고 드리고 더 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부조리였다. 일을 잘 못한다고 선임에게 핸드폰을 빼앗기고 집단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었다. 자살 계획이 너무 생생했다. 잠도 못 자고 고민하다 결국 예고된 자살 전날에 부대 중대장님께 보고 드렸다. 중대장님이 화가 잔뜩 나서 생활관을 뒤졌다. 그 후임 유서가 나왔다. 내 후임들, 동기들과 선임들 이름이 잔뜩 적힌.


부대는 뒤집어졌고, 나는 그 훨씬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휴가를 나왔다. 휴가를 나와서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고등학교 선생님을 찾아갔다. 따뜻하게 맞아 주시면서 당신의 군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게 큰 위로가 됐다. 위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그냥 입대 이전의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그 유서를 쓴 후임은 정신병으로 의가사 제대를 했다. 그 이후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부조리에 가담한 후임의 비아냥이 있다. "나도 자살하는 척하고 유서 하나 쓰고 전역할걸."


Chat GPT 생성, 이런 훈훈한 상담병과 상담실은 없었다 ㅋㅋ


나는 그 일 이후로 일과와 병행하는 또래상담병으로 임명됐다. 이걸 한다고 뭐 다른 하는 일이 적어진다거나 직접적으로 나에게 이득은 없었지만 안 시켜도 하는 일이었으니 차라리 명분이라도 있는게 편했다. 그 이후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후임이 있었다. 그 후임도 내가 상담하고 보고서를 써 줬다. 걔도 전역했다. 환경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사람이 이상했던 걸까? 폐쇄된 공간에 가두고 똥군기를 강요하면 누구나 정신이 이상해지는 걸까..


이런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다. 딱히 내가 군대에 입대한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라 지키려면 해야지. 그러나 이렇게 사람의 정신을 망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환경에서 부조리를 눈감지 않고 해결해 보려 나섰던 나라면 어떤 분야든 부조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진로가 무엇인고 하니, 정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치인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어떤 진로가 가장 정치인(국회의원)으로 많이 진출하는지 찾아봤다. 고위공무원, 법조인. 행정고시 아니면 로스쿨이구나. 로스쿨은 3년 동안 반드시 대학원을 다녀야 하니, 시험에 붙기만 하면 공무원이 될 수 있는 행정고시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전역하자마자 조급하게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서 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그게 나를 망치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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