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지금도 가기 힘들어하는 신림동 고시촌 이야기
전역하자마자 입성한 고시촌은 차가웠다. 가을이 끝나가는 무렵이어서 그럴지는 몰라도, 사법고시가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울대학교 앞 신림동 고시촌은 삭막했다. 망해가는 예전 고시책방과, 새로 지어진 삐까번쩍한 헬스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나라면 빨리 행정고시(5급 공무원 채용시험)를 합격해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오만한 생각에 젖어 이사했고,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1월에 개강하고, 3월, 7월에 등록하는 학생도 받는 학원 종합반에 그전 해 10월에 등록했다. 1월에 개강하는 학생들보다도 2~3달 먼저 공부를 시작했다. 전역하자마자 시작한 고시 공부이므로 체력이 넘쳐흘렀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강했기에 하루에 매일 12시간 이상씩 앉아서 공부를 했다. 밥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20분 안에 해치웠고, 잠은 하루에 6시간 이상 자지 않았다. 학원 열람실에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노력은 쉬웠다. 노력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1차 시험에 평균 2.5점 차이로 떨어졌다. 충격받았고 힘들었지만 초시에 이 정도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차 시험에 떨어졌음에도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등록하는 2차 시험 몰입반에 등록했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했기에 2차 시험 대비반에서도 미친 듯이 공부했다. 그 해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보다 내 2차 시험 학원 모의 성적이 월등히 높았다. 솔직히 너무 괴로웠다. 내가 이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2차 시험에 들어갈 수 있고, 나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이 악물고 참고 노력했다.
그 해 2차 시험이 끝난 이후에는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기에 한 치의 시간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12시간 정도 하면 그만두던 공부를 13시간, 14시간으로 늘렸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서 매일 새벽에 웃통을 벗고 신림동 고시촌 중심에 흐르는 도림천을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취방에 돌아와서 매일 소주 1병을 마시고 잤다. 불안감을 죽이고 내 정신을 죽이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렇게 다음 해 1차 시험에 응시했다. 유난히 어려운 1차 시험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고시촌을 떠났다. 기적같이 해볼 만한 점수가 나와 1차 시험 합격 발표 전에 작년과 동일하게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반에 들어갔다. 그 반은 장수생들이 많은 반이었는데, 거기서도 나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나 같은 악독한 놈이 합격한다고 혀를 내둘렀고, 스스로도 내가 참 악독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16시간으로 공부 시간을 늘렸다. 소주는 1병이 추가돼서 매일 2병씩 마셨다. 나는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 잠은 잘 오더라.
기적같이 1차 시험 커트라인을 넘겼다. 그다지 여유로운 점수는 아니었고, 합격을 확신할 만한 점수도 아니었으나 운이 좋았다. 그러나 최적의 전략을 선택했기에 이미 2차 시험을 최선을 다해 공부하던 와중이었다. 미친 듯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지금 빠르게 고시에 붙어야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장수생들도 나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자신에 꽤나 취해 있었다.
2차 시험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응시했다. 내가 응시한 행정고시 일반행정(전국) 직렬은 정치학, 행정학, 경제학, 행정법 과목이 필수과목이었고, 지방행정론 과목이 선택과목이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시험을 봤는데, 전 과목 모든 문제가 내가 준비한 문제가 나왔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냐면, 행정고시는 특정 과목 4년제 대학 기준 전 범위가 시험범위다. 예컨대, 정치학 과목 시험을 보면 4년제 대학교 정치학 전공 전범위가 시험범위다. 그러다 보니 반드시 모르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4년제 대학 5개 전공을 20년 동안 배운 사람이 아닌 이상.
시험을 치고 나와서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다. 떨어질 수가 없다고. 답안지 복기본을 학교 커뮤니티에 올렸다. 댓글이 미친 듯이 달렸다. 최상위권이다, 합격이다, 떨어질 수가 없다, 기만이다. 합격이라는 댓글에 추천 수가 높아 인기 댓글이 됐다. 확신했다. 이 정도면 붙었다고.
처음으로 연애도 시작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그제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는 어떤 특별한 사명을 지니게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결혼은 내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2차 시험 결과는 3달 후에 나왔고, 그 3달 동안 연애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그제야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나 사명이 아니라 위로와 사랑, 행복이 아닐까 하는..
합격 발표 당일은 그때 당시 여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었다. 합격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노력에 대한 한 치의 부끄럼도 없었기에 그때 당시 여자친구랑 같이 그날 저녁에 합격 문자를 기다렸다.
문자는 오지 않았다.
자꾸, 자꾸 전화가 왔다. 같이 공부한 사람들의 합격했다는 전화가.. 사람들은 자기가 붙었으면 나는 당연히 붙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쁜 소식을 함께하기 위해 전화했다고 했다. 그야 그럴 만했다. 나는 한 번도 학원에서 상위권을 놓쳐 본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자기가 붙었으면 자기보다 평소에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도 붙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떨어졌다.
그 어떤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도저히 더 할 자신이 없었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펼쳤는데, 수십 번은 외운 문장에 정말 말 그대로 토가 나왔다. 한참 헛구역질을 하다 깨달았다. 이 공부를 그만해야 내가 살겠구나..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에 여자친구도 나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친구가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린 것이다. 2년 안에 행정고시를 합격하지 못하는 나 자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애초에 합격자 평균 수험 기간이 4년인데.
일단 대학교에 복학했다. 살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일단 수강신청을 하려는데, 선착순 신청을 모두 놓쳐버렸다. 피씨방에서 그냥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세상에 내가 내 선택과 노력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잠도 안 자고 밥도 줄이고 스스로를 통제해도, 나는 시험에도 합격할 수 없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는 그냥 걷다 보면 눈물이 떨어졌다. 죽을 힘을 다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나 보다. 이때 마음을 달래려 신촌을 자주 걸었는데, 지금도 신촌을 참 좋아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열등감, 욕구, 결핍과 친구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이제 앞으로의 이야기는 이런 실패를 내가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내가 했으니까, 분명 당신도 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어딘가에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