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내신 4등급의 고려대학교 이야기 (5)

나는 누구인가?

by 이고르

고시를 그만둔 직후 "너는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대답할 수 없었다. 경쟁에 몰입하고 자아가 아닌 타자의 기대에 맞춰 살다 자기 자신을 잊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을 거치고 방황을 그만두려는 찰나 군대에서 받았던 편지들을 되돌아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군대를 가기 전에 나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했다. 고양이 관련 채널이 있으면 전부 구독하고, 고양이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고양이에 대해 공부하고, 고양이 카페를 찾아다니고..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기 군대에는 귀여운 짬타이거(길고양이)가 있냐고.

2018년에 찍은 고려대학교 고양이 사진


여전히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한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스스로 반성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아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기대, 사회의 고정관념에 맞추어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정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2022년 당시 작성했던 스스로에 대한 문서

먼저 카페에 가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나는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정리하고, 그에 대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정리했다. 그러자 자신의 열등감, 결핍, 욕구, 행복, 사랑, 즐거움에 대해 하나하나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모두 적어 내렸다.


그러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며, 열정 있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동물과 술과 음악과 글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래서 글을 적고 있다.


나를 탐구하며 과거에 내가 정치를 생각했던 이유가 합당한 지 생각해 보면, 그다지 합리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정치인들을 찾아가거나 정치인들을 직업적으로 많이 만나는 분들을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서 약속을 잡고 직접 물어봤다. 당신은 왜 정치를 하는지, 내가 정치를 해도 될 만한 사람인지 등을 깊이 물어봤다.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만나주었다는 점이다. 직접 시의회로 불러주신 의원님도 계셨고, 국회 앞으로 불러주신 정당인 분도 계셨다. 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들은 브런치 작가 프로필에 기재된 블로그 URL에 들어가면 "생각" 카테고리들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생각보다 매우 크게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저 정치인이 되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나는 우리 가족, 연인의 행복에서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더 큰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이런 가정에 대한 욕구와 함께 정치에 대한 얕은 생각을 말씀드리니, 교수님, 변호사님, 정치인 분들 모두 내게 꿈과 안정에 대한 합리적인 타협으로 로스쿨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해 주셨다.


가장 큰 이유는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정당이 하라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고, 변호사 자격증이 그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정치인은 결국 법을 만드는 사람이니 법과 관련된 전문성이 있으면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비슷한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고 나서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진로는 지금으로서는 로스쿨이라는 생각을 했고, 진학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로스쿨 입시까지는 아직도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로스쿨은 근본적으로는 대학원이고, 대학원은 학부를 졸업해야 하는데 고시를 너무 일찍 시작하다 보니 아직 2학년도 마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인생을 길게 보기로 했다. 고시를 시작할 때만 해도 20살 때 모든 것을 성공하지 않으면 30살이 되는 시점에 나는 죽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죽기 살기로 살았는데, 꿈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천천히 방황하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기로 했다.


먼저, 술을 좋아하니 관련해서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의도에 있는 위스키 바에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합격했으나 기존에 약정했던 일주일에 2회 근무가 아닌 4회 근무를 말씀하시길래 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학교 다니면서 병행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말과 글,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니 웹소설 관련된 초기 창업팀에 들어가 마케팅(이라고 말하고 기타 잡무 모든 것)을 담당했다. 웹소설학과 교수님도 찾아가고, 네이버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팀도 찾아다니면서 웹소설과 관련된 서비스를 구상했고, 투자자들 앞에서 우리 창업팀에 투자해 달라고 설득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뜬구름 잡는 느낌에 팀을 나가게 되었지만, 항상 공적인 영역만 생각하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적 영역에서 활동해 보니 여기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업팀에서 나온 이후로는 미국 교환학생을 준비했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와서 내 시야를 반전시키고자 했다. 동부 어딘가에 있는 대학의 교환학생에 합격했는데, 로스쿨 준비를 위해서는 그동안 고시로 망쳐 놓은 학점을 복구해야 하기 때문에 철회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큰 후회는 없다.

지금도 유튜브에 박제되어 있다 ㅋㅋ (미래지구당은 실제 정당 이름이 아닌 팀명)

교환학생 철회 이후로는 말하는 것,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고 토론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고려대학교 중앙 토론동아리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토론으로 최우수상(국회사무총장상)도 수상해 보고, 연세대학교와의 교류전에서 대표 토론자로 나서 보기도 하면서 비록 1년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활동했다.


이렇게 방황의 과정을 겪고 나서 지금에서야 이 과정을 돌아보니 느끼는 것은 꿈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분명히 언젠가는 그 꿈속의 자신의 모습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 모습은 원래 자신이 원했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의외로 실망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모습조차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이때는 학점도 처음으로 거의 만점을 받으면서 로스쿨 입시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이 뒤로는 드디어, 어떻게 로스쿨 입시를 준비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과 함께 작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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