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입시 (2): 학점을 중심으로

학점올 올리는 과정에서 느낀 전공에 대한 것들

by 이고르

사법고시 시절에는 학생들이 수업을 아예 나오지 않고 시험만 공부해서 문제였다고 한다. 반대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자 학생들이 수업을 지나치게 열심히 들어서(?) 문제가 된다. 학점이 로스쿨 입시에 주요하게 반영되다 보니 좋은 학점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학점을 주지 않는 교수님 수업은 아무리 명강이라도 기피 대상이 된다.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학점 환산식을 얻어내기 위해 학교 본부와 교섭하고, 학교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로스쿨 진학을 위해 학점 환산식을 타교와 비슷한 정도로 유리하게 바꾼다.


어떻게 보면 이 자체가 매우 부정적으로 대학 교육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학생들에게 전공과목을 충실히 듣는 과정이 아니라 전공과목 성적이 잘 나오는 결과만 강조하다 보니 성과만 좋으면 내용을 전혀 이해 못 해도 아무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꼭 그런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애초에 전공에 아무 관심도 없던 내가 로스쿨 진학을 위해 수업을 열심히 듣게 되면서 전공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이다.


나는 철학과에 진학했지만, 그전까지 철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니체를 좋아해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에 걸쳐 완독 하기도 했으나 그건 니체에 관심이 있어서이지 철학 자체에 광범위하게 관심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가 바로 행정고시를 공부하면서 철학은 내게 쓸데없는 생각만 시키고 학점은 잘 주지 않는 성가신 전공이었다.


그런데 행정고시를 그만두고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점을 올려야 했고, 모든 철학 전공 수업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기 시작했다. 발표도, 질문도, 교수님께 찾아가서 상담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드디어 철학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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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는 칸트를 싫어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성의 명령에 따라서만 살 수 있겠는가. 당장 오늘 밤에 엽떡을 시키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조차도 버거워하는 것이 사람인데, 이성이 하라는 대로 살라는 것은 도인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칸트 전공을 열심히 듣고 나니 칸트의 주장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칸트는 세상을 영원불멸한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 했고, 그 원리를 위해서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이다 보니 '이성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는데 나는 그 결론을 칸트 주장의 전제로 오인했다. 이후에는 칸트의 비판 3부작 중 하나인 '순수이성비판' 스터디에도 참여하면서 나름대로 칸트를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


둘째로, 나는 동양철학을 싫어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성리학을 제일 싫어했다. 조선을 망친 것은 성리학이라고 생각했다. 실용적인 성격의 과학을 등한시하고 성리학을 추구하고 외부의 학문을 배척했기 때문이 조선이 멸망했을 것이라고 단선적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을 열심히 들어 보니 성리학은 애초에 실용적인 학문이었다. 우리 오천 원권 천 원권에 나와 있는 이이와 이황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그 기틀을 마련함에 있어서 왕의 결단력을 중시하는지 신하의 능력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전제가 달라지고 그에 따른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뒤에 가서 변질돼서 문제지..


셋째로, 나는 철학 고전을 싫어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 그런 고전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공 수업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을 배우고 생각이 달라졌다. 도서관에 앉아 혼자 국가론을 읽는데 웃음이 나왔다. 현대 사회에서 정계에서 싸우는 쟁점의 대부분은 그 예전의 플라톤 국가론에 적혀 있었다. 근본이라는 것이 이런 거라는 것을 납득했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전공을 등한시하다 제대로 공부를 한번 해 보니, 생각보다 철학은 합리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도 행복, 노력, 결핍 등에 대한 글을 작성하고는 하는데, 철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성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로스쿨 입시를 위한 학점을 따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전공을 공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꿀강만 찾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공 중에서 그 꿀강이라도 제대로 듣다 보면 분명히 뭐라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효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을 단단하게 무장하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실용 학문보다 강한 칼을 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자아성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다시 뻗어나가는 세상에 대한 공감은 삶의 단단한 토양이 되니까. 비록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도 제대로 된 태도를 가지고 임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배웠다.


다음 글은 드디어 로스쿨 입시의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법학적성시험(LEET, 리트) 공부방법론에 대해 작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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