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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엘라 Jun 20. 2017

시작하다

글을 쓰는 것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문장을 쓰고 검토하고 수정하여 하나의 글을 완성시키는 것은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보다 단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뿐이랴. 잘 쓰인 글을 위해서는 문장력, 어휘력과 더불어 작가의 통찰과 내공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글처럼 느린 것 혹은 느린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글보다 즉각적인 사진이나 영상이 더 선호된다. 단발적이며 머리를 스쳐나가는 스피디한 자료 형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보들이 주로 인기다. 사고를 자극하고 느리게 보아야 하는 글은 환영받지 못하고, 남이 뭘 먹었는지 무얼 소비했는지 얼마나 멋진 곳에 갔는지 알고 알리는 게 더 열광받는 반(反)지성주의 사회이다.


나 또한 열혈 인스타그램 사용자였는데, 처음엔 일기처럼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던 것이 어느 순간 나 역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포함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업로드를 하고 있었다. 찍고 필터를 씌워 현실과 다른 환상(현실을 기반하긴 하겠지만 사실적으로 담지 않은, 시각적 요소를 부풀려 현실과는 상이한 것)을 만들어 내고, 남의 시선을 즐기는.. 그러자 문득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글이 보고 싶어 졌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 못 할 그런 신변잡기적인 것들 말고, 마음을 울리거나 나중에 다시 생각이 나게 하는 그런 것들을 두고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 졌다. 내가 뭘 먹고 뭘 샀고 뭘 했는지보다 남들이 정말 궁금해할 내 일상의 조각들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를 시작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느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린 것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시 많아지고 있다. 트위터가 처음 나올 때에 빠른 세상이라는 시류를 잘 반영하였듯, 브런치는 글을 쓰고 읽음으로써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반지성주의에 반(反)하는, 비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가치를 되짚고자 하는 이들에게 걸맞은 매체인 듯하다. 너무 물질적인 것만을 열광해왔던 그간의 행보에 대한 반감인 것 같기도 하다.


p.s. 진부 하디 진부한 제목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박사과정생임에도 대체로 나는 작문력이 뛰어나지 않다. 아직 참신한 문장들로 감성적인 글을 쓸 능력도 부재하고, 문장력이나 통찰력이 뛰어나지도 않겠지만 그러니까 자꾸 써보려 한다. 글쓰기 연습을 하다 보면 '몇 년 뒤의 내 글의 제목은 보다 멋져지겠지'하는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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