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진 조경건축가 인터뷰 구술 정리

오목공원에서 배운 도시의 교양

by 최지원
작년 12월, 서울프로퍼티인사이트 ‘최차장의 건축설전’에서 오목공원에 대한 취재를 하고,조금 더 해상도 높게 바라보기 위해, 이 공원을 설계한 박승진 조경건축가를 인터뷰했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한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시야를 넓혀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아티클 한 편에 다 담지못해, 박승진의 말들을 이렇게라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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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경은 ‘나무’가 아니라, 도시가 버티기 위해 만든 설계다.

박승진: 가드닝은 에덴동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길죠. 그런데 조경은 사실 근대에 들어서 생긴 분야예요. 시민혁명 이후 영국 도시가 너무 열악해지면서 “이렇게는 못 산다, 도시에 자연을 도입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출발했거든요. 공원이 먼저 만들어졌고요. 영국에서 시작했지만 미국에서 공원 체계를 만들던 사람들이 ‘조경’이라는 이름도 같이 정립해 갔어요. “Landscape Architecture”라는 말이 생긴 뒤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는 플랜팅만 한 게 아니라, 도시 전체에 자연을 어떻게 넣을지 계획하고 설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조경을 “플랜팅 디자이너” 정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센트럴파크만 봐도 공원 안에 건축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경은 원래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었어요.

2. 조경이 총괄 하는 공원, 앞으로는 민간 개발도 조경이 주 도 할 수 있는 환경

박승진: 선유도공원을 설계한 사람을 “조성룡”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심은 정영선 선생이고 조성룡 선생은 함께 참여한 건축가였죠. 선유도공원은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발주였고, “조경이 대표 설계사가 되고 건축·토목을 붙여서 진행하라”는 프레임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구조는 공공 공원 발주에서 흔히 보입니다. 지자체가 공원을 만들 때 공원 발주를 건축가에게 바로 주지는 않거든요. 공원 설계는 조경 설계사무소에 발주하고, 공원에 필요한 화장실·관리사무소 같은 건축은 “조경분야에서 알아서 섭외해서 진행해”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차장: 공공은 그런 프레임이 있는데, 민간은 그 구조를 잘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전히 조경을 ‘부속’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승진: 맞아요. 다만 이건 나라별 제도와 클라이언트 인식이 결합된 결과죠. 어떤 클라이언트는 “큰 틀은 조경이 먼저 잡아야 한다”고 판단하면 조경이 먼저 잡고, 어떤 프로젝트는 건축가가 조경 계획을 잡기도 합니다. 반대로 조경가가 건축 계획의 큰 틀까지 잡고 가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누가 먼저 프레임을 잡느냐’는 프로젝트 성격과 발주자의 판단에 달려 있어요..


최차장: 요즘 민간개발이 일본을 많이 따라가잖아요. 도쿄나 오사카 대형개발을 보면 “건물에 조경을 얹은 느낌”이 아니라 “공원 안에다 건물을 지어놓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녹지가 진짜 중심이고, 얼마전 오사카 우메키타를 실제로 가보니 거의 공원 수준이더라고요.


3. 오목공원은 ‘큰 그림’에서 시작했고, 디테일은 비례에서 완성됐다.

최차장: 오목공원 얘기로 들어가면, 제가 인상 깊었던 건 방식이었어요. 큰 틀을 먼저 잡아놓고—회랑을 놓고, 주변에 숲을 두껍게 만들고—그 안에 조그만 건물을 배치하는 흐름. 먼저 공원의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건축이 따라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박승진: 맞아요. 일단 큰 그림을 그려놓고 건축가를 불렀죠. “나는 이런 생각이 있고, 이렇게 가야 한다.” 실행하려면 도면이 필요하니까 건축 팀을 붙이는 거예요. 그리고 건축에서 세세한 게 바뀌면—예를 들어 기둥 두께나 간격 같은—반드시 저와 상의해야 합니다. 단순해 보여도 비례(프로포션)에서 공을 정말 많이 들여요.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미세하게 조정해서 최종 감도를 맞추는 거죠.


최차장: 그래서 실제로 오목공원에 앉아 있으면 “디자인의 세부 의도는 잘 모르겠는데도 적정하다”는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겉으로 튀는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 경험을 조용히 결정하는 디테일 같았습니다.


4. 공공의 시스템이 품질을 만들고, 리터러시가 설계를 지킨다.

박승진: 오목공원에서 중요한 건 책임 공무원이 설계자를 존중하고 협업 구조를 열어줬다는 점이에요. 공공은 미팅이 핵심이고, 위클리로 설계회의를 돌리며 진행합니다. 조경이 총괄 계약을 하고 토목·전기·기계 등을 외주로 나눠 주는 구조는 건축과 유사해요. 이런 시스템이 있어야 공원의 디테일이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힘든 건 반대편이에요. “무식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순간, 설계가 쉽게 왜곡되거든요. 한겨울에 “왜 잎이 하나도 없냐, 왜 꽃이 안피었냐”는 전화가 와요. 겨울은 겨울인데, 겨울에도 꽃이 항상 있을 거라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차장: 그게 진심인 경우도 있어요?


박승진: 진심인 경우도 있어요. 계절 변화를 몸으로 겪어본 경험이 없으면 그런 오해가 실제로 생깁니다. 공공 지침도 비슷해요. “사계절 꽃이 피는…” 같은 문구를 좋아해서 지침에 넣곤 하는데, 현실에는 그런 식물이 없잖아요. 최근 기후가 변하면서 더 어려워지고요. 제가 자주 말하죠, ‘교양’은 문학작품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내가 사는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감각하고 관심 갖는 태도라고 봅니다.


5. 공원은 싸구려로 만들면 안 되고, 설계자는 끝까지 매만져야 한다.

박승진: 기술심의에서 “공원에 고급 목재를 까느냐” 같은 말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시민이 세금 내서 만드는 공원인데 싸구려로 만들면 시민을 무시하는 거죠. “세금 냈더니 공간이 좋아졌네”라는 공원에서 대접받는 느낌이 나야 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쓰니 더 튼튼해야 하고요. 특히 목재 데크는 좋은 걸 안 쓰면 2~3년 후 썩어서 민원이 터져요. 그래서 줄일 데 줄이고, 필요한 데는 좋은 걸 쓰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제도입니다. 관에는 디자인 감리 제도가 약해서 끝까지 디테일을 밀어주는 장치가 부족해요. 결과를 지키려면 설계자가 결국 끝까지 가야 하죠.

1년 공사 동안 주 1~2회 현장 가서 회의했고, 과정에서 만든 보고서가 4,000~5,000페이지였어요. 사실상 무상에 가까운 투입이었습니다. 저는 프로젝트를 “누가 만들었다”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었나”로 봐요. 오목공원에 힘을 쓴 사람들을 가능한 범위에서 추적해 보니 총 동원 인원을 약 3,800명으로 추정했거든요. 마지막 발표에서 참여 회사들을 엔딩크레딧처럼 자막을 만들어 올린 것도 그 이유였죠.

착공 이후 설계사가 배제되는 일은 생각보다 잦습니다. 오픈식에 설계사를 안 부르는 경우도 계속 있고요. 사회가 건축을 어디에 두느냐도 중요해요. 한국은 건축이 국토부 소속인데, 프랑스는 건축이 문화부 쪽에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사회가 건축을 ‘개발/자산’으로 보는지 ‘문화’로 보는지 시선이 드러나죠.

예산 얘기로 가면, 기업 프로젝트는 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경 처리 면적이 1,000㎡면 “사람들 보기 민망하지 않으려면 최소 이 정도 공사비는 써야 한다”가 나오죠. 그 기준에 맞춰 설계비를 제안하는 겁니다. 조경 공사비가 전체 공사비의 3~4% 수준이라 상대적으로 덜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판에 공사를 쥐어짜면 결국 조경부터 빠지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초기부터 “여기가 공개공지/조경 자리”를 구조·레벨까지 포함해 확정하고, 뒤에서 잘리지 않게 방어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차장: 오늘 얘기 들으니까, 제가 조경을 보던 프레임이 좀 바뀌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오목공원처럼 ‘좋은 시스템이 실제로 디테일을 어떻게 살렸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애이아이로 인해 인터뷰를 녹음해 두고, 그것을 다시 문장으로 정리해 남길 수 있는 품이 덜 들어서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편리함이 축적될수록, 글을 한자한자 때려박는 일이 점점 희귀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지난 주말 아침에 본방 사수했던 ‘싱싱고향별곡’에는 4대째 다기를 만드는 장인이 나왔다. 그 집안에서 이제 그 다기를 그만 만들면 이제 그 다기는 사라진다고 했다.

글쓰기도 이제 저런것이 되려나, ‘글을 직접 쓰는 사람’이라는 일이 혹시 소멸직전의 극소수의 일이 되는 건 아닐까, 상상을 해봤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문장을 한 자 한 자 두드려 적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쓰기가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리는 시대에는 글을 쓰는건 사명감이 될지, 아니면 그저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고집으로 계속 써대는 일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나는 최후까지 글을 직접 쓰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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