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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13. 2022

메타버스 명리학과 손잡다.

나는 지구에 민팅된 NFT



명리학과 메타버스.

이 두개의 단어 사이에 이음새를 붙이니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나는 처음에는 참 우습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명리학의 이미지는 점집이고 더 쉽게 떠올리는 메타버스 세상은 제페토 아바타인데 이거와 저거를 동시에 공부한다고?



그런데, 극과 극은 결국 하나라고 했던 말이 두 개를 널뛰기 하면 할 수록 마음에 와 닿는 말이 되어갔다. 그래.

알면 알 수록 이 두 사이에 희안한 접점이 있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기로 선택한 책은 NFT레볼루션이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선정부터가 이상하다.나에게는 그리고 우리 모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린 똑같이 사람이지만 똑같은 얼굴의 사람은 하나도 없듯 책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취향과 기호로 골라 읽을 수 있는 것이라는 치우친 생각이 1년 동안 글쓰기 모임에 적극 책을 집어 넣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5시 큐레이팅을 위해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내가 읽은 책으로 열심히 큐레이팅 해서 글 주제를 드리는 방식을 고집했다.



처음엔,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 지 모르겠어요. 하시는 분들과 새벽글쓰는 습관을 잡고 싶었던 거고 나도 힘과 파워로 밀어붙이는 건 어느정도 자신있어서 시작한 일인데, 이걸 1년쯤 하다보니 나에게 긍정적인 변화만큼 아픈 상처도 생겼고 몸과 마음 그리고 어깨에도 탈이 났다.





10월에 어깨 수술을 하고도 멈추면 안 될 것 같아 11기를 한 번 더 진행한 것을 끝으로 일단 모든 것을 멈추었다. 아니 멈추었다는 그때 당시의 내가 쓰기엔 너무 자의적이고 멋진 단어라 적당치가 않다.

강제 종료를 당했다.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사람들에게 그 어떤 인사이트를 주기도 힘들었다.


나는 고작 그 정도의 깊이였던 사람이었나?

자괴감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은, '나는 왜 열심히 살지?' '그냥 지금처럼 대충 아니 좋은말로 욜로처럼 즐기면서 살 수는 왜 없는거지?' '쳇, 세상에 안되는게 어딨어. 안하는거지. 내가 오늘 부터 욜로한다!!'


이렇게 선언하고는 욜로대신 골로갔다.

애들 삼시세끼 밥 챙겨주는 것 말고는 그저 누워있었고 울고 싶으면 울었고 또 잠이 오면 또 잤다.

그런데 그런 사이 내가 채워졌던 걸까? 아니면 운명처럼 다가온 명리학 공부가 나의 또 하나의 잠자고 있던 기질을 깨워낸걸까?


문득, 명리학을 공부하다 말고 이렇게 칙칙하게 누워있지 말고 예뻐져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남편에게 앓는 소리를 해서 비싼 피부과를 질렀다. 그리고 두번째 관리를 받으러 간 날 오랜만에 대형서점에 들렀다. 그리고 그날 이 까맣고 형광초록한 이 책이 날 따라왔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부모학교 메타버스라는 모임을 만들어 놓고 그 커리큘럼에 맞게 필요한 책을 골라온게 아니라 그냥 이 책이 나를 따라왔고 나는 "너 왜 따라왔니?"라고 물었는데 그때 내가 하고 있던 모임의 사람들.


글벗이라 부르는 이제 정말 가족처럼 되어버린 멤버들 생각이 났다.!








그래, 그냥 이걸로 같이 공부하자고 해야겠다. 이렇게 디지털 바보인 내가 이런 모임을 해도 되는건지 남편도 나도 걱정이 늘어졌지만, 마흔넘게 굴러먹던 짭밥으로 '질러놓으면 책임감 없게 일을 하지 않는 나'를 믿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한 이 책 뜯어먹기는 나의 숨어있는 '사람쪼으고 공부시키는 능력'과 만나 불꽃을 피웠다. 매일 새벽 구멍 빵빵 뚫어놓은 학생시절의 쪽지시험에 쩔쩔매고 마감 시간에 맞춰 쪽지를 손에 땀을 쥐고 내면서 지난날 쫀쫀했던 텐션이 우리 모두에게 다시 살아났다. 나 혼자가 아니다. 정말 같이 공부하되 나는 한두발짝 먼저가서 여기라고 길만 알려주는 거다. 늘 그렇든 좋은 사람들의 성실함과 격려로 무사히 항해를 마쳤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 같은 사람들만 있는지, 사람의 겉모양보다 마음이 중요하고 온라인 세상은 오프라인에서 못 하니까 울며겨자먹기로 하던 사람들. 그러다 나와 접속이 된 인연으로 메타버스 세상까지 함께 따라왔다.






그러니까 이 글벗들의 감상이 무엇보다 나에겐 중요했는데 다행히, 모두 완주했고 그 속에서 의미와 삶의 통섭을 재발견하셨다.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의 깔대기에 쉽게 모인다.




바로, 메타버스 세상을 잘 활용하려면 현실세상에서 나의 희소성을 더 이해하고 집중하고, 슈퍼 개인이 되어 '아모르파티'를 아는 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현실에서 잘 사는 사람은 메타세상에서도 잘 살지만 반대에게는 더 자비란 없는 양극화의 세상이라는 것. 탈 중앙화는 결국 인본주의적인 사상에 근거했으며 보편적 인류애라는것.




개인의 희소성은 다시 명리학과 연결된다.

명리학이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그거니까.

사람마다 주되게 쓰는 기운과 흐름이 모두 달라 사람마다 그가 우주이고 그 사람의 고유식별 번호가 있다는것.


아. 메타세상에 그 무엇과 바꿀수 없는 가치는 이 지구라는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에게 붙은 NFT, 즉 소유권 증명서이겠구나..


어떤 작품을 NFT로 민팅하려면 그 안에 메타데이터에 들어갈 정보들이 필요하다. 누구의 작품이며 언제 만들었으며 어떤 기조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NFT의 IP주소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누군가가 오픈씨에서 사고 싶어 하는, 혹은 경매에 오르면 몸 값이 오를 만한 그런 메타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 근데 꼭 민팅을 해야만 하나? 원치 않으면 그냥 소유만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명리학에서의 기질,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희소성은 두 손을 꼭 잡고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두 세상속에서 나라는 사람, 내 영혼만이 완전한 것이라는..  거대한 우주속에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우주전체이기도 한 사람이라는 개체.


내가 어떤 히스토리를 쓰던지 그걸 평가할 사람은 내가 선택한다.



어쨌든간에, 힘들었던 정초를 버티고 새벽 메타버스에서 잠시 내려 원래 하던 글쓰기서당으로 돌아오니 좋다. 이 지난한 여정을 함께 버터준 나의 사람들에게는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들또한 내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체험했다면서 연일 감사하다고 해주신다.



그래도 NFT공부를 마치고 아비투스를 뜯어 글쓰기를 하고 있는 글벗들의 글 사이사이에 웃음기가 보이는건 나의 웃음기가 투영되어 보이는 것인가?



기말고사를 보면 다시 저 웃음기가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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