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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pr 18. 2022

다시 글 앞에 서서.

순풍의 돛을 달고..

다시 은유작가님의 책이었다.
글쓰는 것은 물론, 지금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책 이외엔 거들떠도 안 보던 시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내가 지겨웠는지 나 원래 뭐하던 사람이지? 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서가를 서성이다가 내 손이 뽑아낸 그 책은 '다가오는 말들'이었고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침묵
무슨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참고 아무말이나 하지 않기 위해 언어를 고르는 시간.
 
문득 나는 내 인생에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짓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참고 아무짓이나 하지 않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시간.

내 자신이 별로고 내가 처한 환경도 밉고 모든 것이 싫었던 몇 달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침묵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니 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듯 했다.


언제였더라
하얀 모니터를 앞에 두고 머리속을 손가락으로 풀어나가며 오롯한 평온에 빠졌던 그 기분을 느낀지가..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은 글쓰는 일이 스물스물 열병처럼 하고 싶어지고, 손가락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걸 보니 정말 살만해졌나보다.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시간을 보냈다.
늘 인정과 칭찬에 결핍했던 나는 '타인을 향한 좋은 영향력'이 삶의 목표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내 자신을 돌볼줄도 모르면서 타인을 돌보겠다고 자꾸만 되도않는 짓을 하는 나를 누군가가 불러 딱 세워놓은 것도 같다.


" 야!! 거기 딱 서 있어봐 "


그리고 꽤 오랜시간을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은 온데간데 없고 싱그러운 초록 풀잎뿐인걸 보니.. 나의 봄은 그렇게 한장의 책갈피처럼 사라진거다. 하지만 2022년의 봄은 바깥 꽃구경은 놓쳤을지 몰라도 내 안에 작은 씨앗을 심어주었다.
다시, 나를 챙기는 삶. 지금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방법을 크게 배우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늘 버겁다, 힘들다고 외치는 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내가 외로웠던 유년시절 그토록 바라던 꿈이 이루어진 현실이라는 것을 눈크게 뜨고 다시 보게 되었으니까.






사람이 못하는 일이 어디있냐? 마음과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다. 누구는 날때부터 그렇게 했다더냐? 하면서 손에 쥔 모든 것을 놓치 않고 쥐고 가려던 나는 지난 겨울을 깨고 봄이 오면서 언땅이 녹듯 그렇게 두주먹에 힘을 풀었다.

그 안에 놓인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게 없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다시 한번 원래 갖고 있던 것들의 아름다움이 신기하게도 보였다.


죽음을 앞둔 나를 상상한다.

신께서 나에게 "그래, 이번 생에서 무엇을 얻어가느냐." 라고 물으면 "사랑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 사랑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나를 위해 태어난것 같다고 말하는 남편과 내 몸을 빌어 태어난 4남매에게서 느끼는 사랑으로도 넘쳐나지만 나는 점차 또 욕심을 낼 것이다.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더 만나고 싶을테고 부모로서 소통하는 부모사람들과 또 함께 글쓰는 글벗들과의 관계속에서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큰 슬럼프는 항상 큰 메세지를 담고 온다.


이번 슬럼프는 도대체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길래 이렇게 길고 어둡고 슬픈지 잠이 오지 않는 매일밤 나에게 물었다. 이제 빠져나갈 빛이 보인다고 느껴서일까? 그토록 궁금했던 답은 막상 싱겁다.


다시 사랑이고, 사람이고, 가족이고 지인들이고, 책이며 글이다.


너무나 쉬운 결론이고 추상적이지만 이 슬럼프의 터널을 들어가기 전과 나오려는 세상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보여요"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될 줄이야. 
아주 깊이 걱정하고, 애닳파하고 신경쓰고 한동안을 지내던 어느날, 사남매 학교만 겨우 보내고 다시 누워버린 낮, 밖에는 봄인데 내 마음은 여전히 꽁꽁 언 겨울이던 그 기분의 간극에서 엉엉 울고 있던 날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이거 내가 살아왔지만, 내가 산게 아닌것 같아... 이미 이렇게 살게 시나리오를 쓰고 그거에 맞게 흘러가는가보다. 그 시나리오는 분명 내가 쓴게 맞는데, 그 대본의 지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은 욕망이 아니라 만족과 평안을 거해야 할 타임이라고, 그걸 모르기 때문에 멈춰서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책을 쓸때 자주 찾았던 까페에 앉아 두어시간을 커피마시며 창밖 풍경과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귀를 맡기고 멍을 때리면서 놀았다. 놀면서 글이 혹시 쓰고 싶으면 펼치기 위해 챙겨왔던 먼지쌓인 랩탑을 꺼냈다.


늘 시간안에 글을 써야하고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나는 놀랍게도 글 앞에서 다른 생각의 프로세스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인데 무슨 주제를 어떻게 쓸까?" "내 글이 어떻게 읽힐까?" 라는 질문말고 "고생한 나를 위해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자" 라는 마음으로 막혀있던 글 문을 다시 열었다.





나의 크고 작은 부침과 상관없이 이 봄은 빠르게 세월을 뚫고 여름으로 또 가을로 내달릴 것이다. 그러면 나도 그 계절의 흐름을 타고 가만가만 그렇게 흘러가야지. 라고 가만히 되뇌어본다.
그동안 내가 붙잡고 지내왔던 목표, 숱하게 해왔던 다짐, 의지, 선동, 에너지 이런 종류의 단어말고
머무름, 풍요, 순풍, 흐르는대로 이런 단어를 처음으로 내 인생에 붙여본다.



교도관 출신인 나라... 선동의 아이콘, 태생부터 악한(이건 최근에 셋째에게 듣고 충격받은 말ㅜㅜ) 캐릭터라
순풍의 돛, 살짝 어색하지만, 사실 사뭇 기대도 된다.

역류의 에너지로 살아왔던 40년 인생에 순풍의 돛이 달리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


내가 응원한다. 내 인생 화이팅 !!
인생의 전환점을 맞고 있는 이 시대의 40대들, 부모들 그리고 어른 사람들 모두모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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