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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Oct 13. 2022

큰 딸이 준 실패 티켓.

사남매 엄마, 자기계발 안식년에 들어갑니까.

나는 사남매를 키우고 있다.

내가 잘 커야 아이들도 잘 클 수 있다는 엄마의 교육철학이라는 주머니에, 이들을 담고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12년째다.


뭘까?


처음엔 지친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줄줄이 아이도 낳고, 10개의 자격증이 증명하듯 쉼없이 자기계발도 했고 그렇게 앞만보고 달려왔으니, 지친거고 지쳐도 마땅한 때라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나를 끼워맞춰 넣었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왜, 하필 지금 이 포인트에 나는 무언가 세상을 다 휘어잡을 듯이 칼을 꺼냈다가 그 칼 끝을 황망하게 만드는 일을 무작스럽게도 계속 해나가는걸까?


질문도 지겨워져서, 아이들 등뒤에서 시간이 시키는 일상의 일들만 하고 지낸지 몇 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네 아이가 시끄럽게 빠져나간 조용한 집 거실에서 덩그러니 누워있는데..


문득 몇 가지 사건이 떠오르면서 겉잡을 수 없이 후회가 밀려들었다. 막 억울하면서도 내가 한 짓이지만 바보, 등신 같았다. 열심히만 살았지, 잘한 거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바보같은 실수들, 그리고 그 실수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게 만들어 놓고, 뭘 그렇게 잘났다고 글을 쓰고 세상을 밝히겠다고 대단한 일을 하겠다며 살았는지..


허망하고, 속상한 마음이 함부로 밀려들어왔다.


내공이 무너져 있는 상태의 마음은 밀려드는 후회속에서 빨리 헤어나고지 못하고 있었는데 .



그때

띠띠띡띡...



성급히 눈물을 훔친다.

그새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집으로 쏟아질 시간.


전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10시간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집에 들어왔고 그 들어온 이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한다.


"엄마, 우셨어요?"

"아...니.."

"...."

"어.... 어 쪼금"

"또,... 왜요?"

"엄마의 지난 실수로 아빠를 또 너희를 힘들게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갑자기 그런날 있잖아. 그 때 그 선택을 안했더라면.. 가슴치게 후회되는 일만 줄줄이 떠오르는날... 엄마는 오늘 쫌 그랬어..."


그렇게 대화는 멈췄고 시간이 흘렀고, 동생들이 각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신없이 재잘거리고 있는데 그 재잘거림에 묻혀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큰 딸이 이런말을 내뱉았다.



"엄만 그래두 돼요."

"응? 뭐가?"

"실수좀 해도 된다고요. 엄마.. 생각해봐요.

아이 하나 낳아서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래요.

근데 엄마는 그 어렵다는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아빠 도움만 받아가면서 다 해내셨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배우적도 없는 것들을 해내려고 엄청나게 노력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실수 좀 해도 되요. 우리 한명당 2개씩은 할 수 있으니까 8개 정도의 큰 실수는 괜찮아요!!

그리고 엄마도 다 우리 잘 키우려고, 잘해보시려다가 그런거잖아요"


"........(코끝이 찡.....) ... 정말...?

"네. 엄마... 진짜, 정말로요.."


큰딸이 어느새 나보다 풍만해진 가슴으로 내 머리를 끌어다가 묻어준다. 그 품에서 짧고 굵게 울어버렸다. 가만히 토닥토닥해주는 그 손길..


내가 그토록 바랬던, 응원과 위로의 손길..


부모에게 받지 못했으면 어떠랴. 태생은 내 선택이 아니었음에, 내가 선택한 내 가족에게서 받는 이 위로가 지금은 전부다. 그 무엇을 이 순간과 바꾸랴 싶다. 최근에 '아 이건 꼭 글로 남겨놔야 겠다' 싶은 내 영혼이 딸의 영혼으로 치유받는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난독증이 있다.

공부로서 대부분의 재능을 평가받는 한국 학교생활이 버거울만도 할텐데...

1학년 남양주에서

2학년 동대문에서

3학년 지금 사는 이 곳까지

세번의 전학에도 굴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남들 뚝딱 떼는 한글을 동네 학원에서 '슈퍼 엉덩이 상장'까지 받아오면서 고시공부처럼 하는 큰 딸이지만..


이렇게 잘 컸을수가 없다.



아이는 동생이 있다.

그것도 밑으로 연연생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지만 위 둘 오빠보다 더 남동생같은 여동생까지 셋이나 있다.

둘째에게 키도 다 따라잡혀가지만, 누나의 카리스마에 동생들은 꼼짝을 못하고 덕분에 우리집은 부모 도움 필요없이 알아서 서열정리가 잘 되어있다.



이 아이를 키우는데 동생 셋보다 더 힘든 경험을 많이 했다. 나와는 기질도 태생도 많이 달랐고 난독증이라는 것을 아이 4학년때나 알게 되었기에, 그 사이에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사실, 그 독한 히스토리를 다 기억한다면 아이는 나를 이토록 좋아하면 안 되는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식이 부모를 더 크게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 아이를 통해 실감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딸 아이의 소리없는 내공과 이 강함을 배우고 싶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선 이게 다 엄마가 잘 키워준 덕분이라고 말하니 여기에 바로 내가 머물고 싶은 위로가 존재했다.



어렵사리 사남매를 낳아놓고,

사회와의 분리불안에 시달리며 '엄마도 자기계발'이라는 명목하에 아이들로부터 달아날 생각만 했던 지난 10년이기도 하다.


이제 돌아오고 싶은가보다.

이제서야?

늦은때라는 것은 없나, 이걸 이 시점에 깨닫게 된 것도 내가 세운 인생목적에 맞는 길이기 때문일까?


나의 깊고 깊은 페르소나, 너무나 오래 쓰고 있어서 가면인줄조차 몰랐던 내 피부같은 모습보다 진짜 나로 머물고 싶은 때를 만난것 같다.

그 때에 마음을 쉽게 풀어놓도록 도와주고 있는

우리 큰딸이다.


그 장소는 바로 내배내낳!

내가 손수 낳아 놓은 소중하고 소중한 네 명의 생명.. 그 곁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비로소 알아가나보다.


다시, 처음 엄마가 된 느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자기계발도 안식년이 필요할까?

벗겨진 피부에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듯, 몇십년에 걸쳐 씌웠고 그 세월만큼의 시간이 걸려 벗겨낸 외피를 함부로 대충 덮고 싶지 않다.

진짜 사랑의 힘 내 존재자체로 사랑해주는 네명의 생명을 통해 가만가만 새살을 심어주고 싶다.


이런 기회가 왔음에 감사하고..

나에게 깊은 영혼의 치유를 선물해준 큰 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런게, 자식 키우는 보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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