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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Nov 15. 2022

선택적 주말부부 1일차입니다.

가을, 언제 갔나요?



도망치듯 떠난 유학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최선을 다해봤지만 그 무엇도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괴롭고 외로웠다.

그 괴로움에 금방 익숙해지는 젊음이 서글펐다.


그렇게 29살 되던해, 지극히 I형이고, 알고보면 깜짝 놀랄만큼 내향적인 내가 과감히도 미국행을 택했다.



'시집 보냈다고 생각하고 보내달라.'

부모님에게 전달한 통첩처럼, 나는 평생의 결혼과도 맞바꾼 기대감으로 뉴욕을 간 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친척 이모가 있는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 줄곧 나에게 기대만 하다가 지쳐버린 부모님을 설득하기에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여 보여서였다. 나에게 있어 뉴욕은 더 물러설때가 없는 작은 새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듯 떠밀려 겨우 날아간 곳이었다.



절망의 낭떠러지에서 삶의 희망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

그토록 오래 갈망했던, 내 영혼의 짝이 놀랍게도 정말 거기에 있었다.

사실, '있을지도 모른다는 the only one' 대한 기대감으로 내 20대를 다 썼다 해도 과하지 않다. 나는 그 무엇인가가 되기를 그토록 애쓰는 것 같았지만, 결국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 모든 것을 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안아줄 나만의 한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 이런 가열찬 선언도 없었다. 난 그저 그것을 포기할 능력자가 못 되었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내 자신을 인정해 줄 정도는 되야 할 텐데, 초라하고 거지같고, 뭘 해도 안 풀리는 내 인생이 정말 싫고 미웠다.


역시, 그건 환타지였어. 현실은 현실일뿐 내가 바라는 '한눈에 알아보는 영혼의 짝' 따위는 없는게 맞구나....  나? 포기할 능력이 없는데. 그렇다고 현실에 맞춰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나를 집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데....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억지로 떠밀려 떠난거다.

완전히 놓으면 만나게 되고, 내려놓아야 얻어지는 세상의 이치인걸까?


29살의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 맨하튼의 매서운 칼바람을 지나 그 겨울의 끝자락.

서른이 갓 시작된 그 해 2월 운명의 그를 만났다.






난 뭘해도 돈이 되지를 않는다.

셀프로 명리학과 사주앱을 아무리 뒤져봐도.. 재물을 뜻하는 글자는 없다. 예기치 못한 재물을 뜻하는 '편재'가 겨우 하나 있긴하다. 정기적으로 따박따박을 뜻하는 단어인 '정재'가 없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직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최근에 합류했던 스타트업에서도 2달 만에 그토록 원했던 편집장직함을 내려놓고 만류하는 대표님에게 퇴사처리를 부탁드렸다.


합류할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근무시간보다 더 길었다. 요란하게 서류작성하고 다시 15년만에 4대보험 가입자가 되고, 국민연금에 들어간 필체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 나는 무소속이 되었다.


이 회사 바로 직전에 성질이 다른 종류의 회사에 잠깐 몸담았는데, 그 회사 입사하겠다고 산 정장값도 못하고 퇴사했다.


그 전엔 장사 속도 없는 내가 친구가 만들어 대박을 터트린 수제 마카롱을 보고, 나도 마카롱과 커피를 너무나 좋아한다며 야심차게 디저트까페를 오픈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결혼 10년동안 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따서 모은 자격증 개수를 세보니 10개다.


이 자격증끼리는 뭐랄까, 오합지졸..맥락도 없다.

드론조립&비행자격증, 피겨스케이트1급, 국악강사, 난타강사, 독서지도사, 논술지도사, 케이크디자이너, 페이스패인팅, 실버국악강사, 포교사자격증..

여기에 쓴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사이사이, 부동산 사고를 비롯한, 기획부동산 땅, 주식, 코인,외환거래등 금융사고도 많이 쳤다.


이 또한 "한때~~였다"는 과거형이면 참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여전히 그 사고의 여파로 현실에서의 오르는 금리와 빠듯한 생활비 사이에서 하루하루 힘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나에겐 이 모든 것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이 있다.


바로, 죽고자 할때 나를 살렸던 그 사람. 서른 딱지를 달자마자 내 눈앞에 나타난 그 사람.


지금 나의 이 감당못할 에너지가 쏟아내는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막어주고 닦아주고, 치워주고, 때론 말려주는 그와 난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자괴감에 시달렸던 몇 달, 아니 몇 년이었다.

아무리 사남매 낳고 키우느라 그랬던거다.. 잘 하려다가 그랬으니 그럴수 있다라고 위안을 얻고, 일어나려 해도 잘 일어나지지 않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의 20대를 가만히 역순으로 따라 가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 참 어두운 그때로구나!!


그 많은 기대와 실망속에 결국 마음을 접고 시간이하자는대로 살아보자..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그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진짜 마음이 만들어낸 인연으로, 네 아이를 낳고 지금의 내가 원하는 내 삶을 잘 꾸려왔듯



지금, 수많은 사고와 잘못되는 일들, 연달아 이어지는 실패가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그토록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겠구나... 하는 믿음.



역사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했던가.



나의 20대는 그토록 찾던 '한 사람'을 30살이 되어서야 나에게 꺼내 주었듯,

30대는 그토록 나의 업을 찾아 헤매이다가 40이 넘어서야 '쓰는 사람'이라는 한 단어를 남겼듯..


지금의 나는 50대의 찬란함을 위해 이토록 어둡고, 대책없고, 아픈거라고 지치고 힘든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답을 어설피 찾아본다.



그 답이 오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이미 너덜너덜 해 진 내 마음은 울퉁불퉁, 말과 마음과 행동이 따로 국밥이다.


하지만 안다. 그 희망이 적어도 내 입과 몸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한창 부모의 마음씀에 예민한 초등생 네 아이들에게 입과 몸을 잽싸게 움직여 밥도 주고 사랑도 주고 공부도 시키고, 집안일도 하고 틈틈이 글도 쓰고 사업공부도 하면서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어제 벼르고 벼러 반년 늦은 결혼기념일 밥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나를 떠나 있으라"고 선언했다.

그는 황망하고도 쓸쓸한 이 바다를 지켜주던 비옥한 땅이다. 여태 나를 위해 그 땅을 썼다면 그래서 사남매도 키우고 이 정도 일궈왔다면, 지금부터는 오롯이 그의 것으로만 새로운 씨를 심는 때라고 판단했다.


곁에 있으면, 같은 행보를 반복하겠지, 그냥 두면 편한 쪽으로 흘러가는게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는 억지스러운 환경설정,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부부를 '선택'했고, 그에게 '제안'했다.


말해놓고도 "내가 괜찮을까?" 바로 걱정스럽지만,

그 제안은 더 나아질 우리 가족의 미래 때문이다.

그 희망이 있기에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내 자신으로서 최선은 아닐지라도 기본은 해낼 수 있다. 그 기본이 쌓이고 쌓이면 늦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곳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희망은 때론 고문이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올 해 가을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계절 가을에, 사랑하는 남편 손 잡고 느긋하게 산책도 못해보고 무엇인가에 눈이 뒤집혀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방금 지나간 가을을 그리워한다.


다행이다. 가을은 오고, 또 오는 거라서..


내년.. 삼복 무더위를 지나고 찬 바람이 문득 느껴지는  그때, 그때의 나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그 어떤 모습이라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그게 내 희망이고,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떻게 표현해도 주제도 없고, 읽는이에게 도움도 안 될 이 긴글은 결국 지금 내 마음은 힘들다는 한 줄일 뿐이지만


요란망측했던 올 가을을 지난 나에게 이 시간은

깊은 감사이고, 여기에 눈치보지 않고 (엄마의 망가진 위 때문에 사남매가 커피를 못마시게 사방에서 감시한다ㅎㅎ)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커피 한 잔까지 보태지면 감히 행복하기까지 하다.


행복이 별거인가?

아이들이 떠나 비로소 조용해진 식탁에서

이렇게 나만의 하루를 가만히 열어 보담아 줄 수 있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만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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