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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05. 2023

글을 써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글쓰기, 나에게는 평안이었다.


마음의 평안.

내가 요즘 아니 작년부터

아니 어쩌면 생각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부터 여태껏 내가 구하고자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된다. 우리 언니는 그리고 나를 아끼는 몇몇 지인들은 강력하게 하느님을 만나야 구해진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그 진심도 알지만

 마음이 그걸 허락하지는 않는다.

하느님도 계시겠지만, 신이 하느님'' 있다는 사실에 진실로  믿겠다고   없는 나다.

누군가는 믿는다 선언을 먼저 하라하지만, 진짜 내 마음에 움직임이 아닌데 천국에 못갈까봐 그게 이유라서 해야 한다면 그 또한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신은 진짜 마음을 원할테니까 말이다.

영글지 못했고, 못났다고 해도 단테의 신곡처럼,

 좋다는 천국에 가지 하고 림보에 머물거나 연옥에 간다해도

나는 결국  마음이 아직 열리지 않은 내 마음을 존중한다.

사람마다 때가 있고, 이유가 있겠지..


여튼 난

그놈의 마음의 평안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에다 또 가지를 치는 생각에 치여 달리고 달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다시 글쓰기와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글과 나는 애증의 관계의 2022년 한해를 보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사랑하는 소녀였다.

아니 글쓰기밖에 친구가 없는 작은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니네가 당연하게 받는 사랑이 내게는 없다고  어쩔꺼냐고 심지굳게 맞설 내공이 없는 소심하고 나약한 아이였다.


어린 마음으로  설명할  없었지만 채워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한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 교과서 끝에 끄적이던 글자.. 느리게 집에 걸어오던  기슭에 나무막대기로 쓰던 단어, 글이였다.

글이라기 보다는 죽음, 사는 . 나의 .. 이런 류의... 단어의 나열이나. "사람은  태어난걸까?" 등의 전인류가 찾고 지만 찾을 수 없는 맥없이 커다란 화두의 문장뿐이었지만. 어쨌든, 글이었다.


그때의  나약한 꼬마를 글이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던걸까? 마흔이 넘어 그 아이가 살아내 행적을 돌아보니, 글의 아우라가 결국  아이의 자기다움을 지켜주었고, 업도 찾아주었고, 인생의 최고 반려자도 만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토록 갈구했던 내가 원하는 경제적인 지지를  아이는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워했다.


나는 글을 사랑했지만 글만큼, 어쩔땐 글보다 사랑하는 아이가 으니까. 그것도 넷씩이나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을 


셀프로 이런 질문을 한다.

갑자기 하늘이 쩍 갈라지고 신의 목소리로

"그래!! 네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어냐 ?"

물으면

그게 딱 하나일때 그것만 들어준다 하면.


너는 무엇을 구하겠느냐?



이 대답은 실제 일어난 상황이라고 여겨야 그 효과가 있다. 그럼 진짜 이루어 질껀데 여기다가 가짜마음 혹은 나도 언제 쌓아두었는지 모를 마음 겹겹을 최대한 벗겨 진짜 마음을 그제야 꺼내놓는다.


나의 욕망은 진짜 그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으니까.!!


그렇게 들은 나의 2022년 대답은 '마음의 평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 한 해

나는 그걸 찾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뭐야 니 인생 바닥이 어딘지 찍어보자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혼생활 13년만에 가장 힘들었던 한해고, 위기의 순간이 자주 나타났고, 나의 마음은 추락하고 잠시 멈췄다가 또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2023년이 밝아온 지금,

에라이~ 모르겠다. 글이나 쓰자!! 며

같이 사는 동료에게, 글로 만난 벗들에게 묻어 다시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이제야 2022년이 나에게 남긴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정리해본다.


명.현.현.상.


어떤 일이 해결되려고, 해결되기 전에 최대치로 시끄럽고 정신없고 소란스러워지는 현상.


피부과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좋은 제품을 발랐는데 피부가 뒤집어 지면 둘 중 하나란다.


첫째, 진짜 뒤집어 진거다.

둘째, 진짜 좋아지기 전에 나쁜 것이 모두 드러난거다.


나의 작년은  인생을 두고 어떤 의미일까?

진짜 뒤집어진걸까?

아니야, 아니야!!

모든 것이 좋아지려고 좋아지기 직전에 나쁜것이 모두 드러난 것이기를 바라고, 바래본다.


태양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터널은 나갈때까지 그 출구를 알 수 없다.


이 말이 지금의 내 마음상태에 적합한 표현이기를..


그래도 명현현상 쪽으로 부등호를 가만히 기울여 그릴  있는 이유는 나는 지금  순간 다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돈도 안되고, 현실도 모른채 붓이나 잡던 선비놀음 싫다고 밉다고 절대 안한다던,  옆에서 뒤에서 쿡쿡 찔러도 절대 안한다던  글을 현재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내가 지금 하는 행동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에 내 마음을 모두 가져오는 것인데,


멈춘다는것이 누군가에게는 명상, 누군가에게는 일에 몰입, 누군가에게는 잠이겠지만 그 세가지가 모두 애써도 노력해도 나에게 결국 멈춤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글벗이 추천해 준 책 '내가 틀릴수도 있다'의 첫 챕터를 펴자마자 불현듯 깨달았다.


아, 나는 글을 쓸 때 비로소 모든 생각을 멈추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거구나!!

그것도 과거에 후회나 미래의 환상이 아닌 현재의 내 모습을 오롯하게 보고 있구나.!!


이 행동,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멈춤이요, 마음챙김이자, 나만의 수행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2022년 1년의 화두로 잡은 것이 온갖 잡음을 일으킨 후 결국 나를 다시 글쓰기 앞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은유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글감을 어떻게 찾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내가 글감을 찾는것이 아니라 글감이 나를 찾는 것일 수 있다고.


기억하는 것을 모조리 쓰는 것이 글이 아니라, 떨쳐지지 않는 것, 기억에서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을 쓰는 것이 글이라고.


그래. 내가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잡아 끌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

나의 이 지리멸렬한 생각을 마음으로 치환하는 유일한 방법이 글쓰기일지 모르겠다는 마음.


이 순간을 담아 작은 화면을 열어놓고 키보드를 타탁더리는 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는 새벽.

이 새벽을 다시 되찾기 위해, 그렇게도 작년 한해가 시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는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


세상을  돌고 나서야 집에 파랑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듯,  마음에 평온은 바로  내가 하던  글속에 있었다는 

글을 써서야 비로소 2022년이 보이고, 답답함이 구체적으로 설명이 된다.


이렇게 설명이 되고 나니.

글이 나를 선택해 준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런 책을 알게 해준 향기님,마맘에게 감사하다.

(마맘 감기 빨리 낫기를....ㅜㅜ)

어제 막 쏟아내듯 해버린 글에도, 진짜 마음의 위로를 달아준 글벗들에게 감사하다.

인사이트가 훌륭하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지인의 조언에 나의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있음에 감사하다.


그렇게 감사로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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