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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15. 2020

아이는 배울게 많은 부모에게 찾아오는 스승이다.

막내, 막내 그 거역할 수 없는 혼돈과 유혹.

엄마. 오늘만 유치원 안가면 안돼요? 아이잉~”

언니 오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말을 툭, 아무 거침없이 내뱉는다. 언니 학교를 데려다 주고, 손을 흔들며 손하트를 만들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별로 반응도 없는 언니를 (큰딸:아침 삐짐 사건)열혈 배웅해주고 교문을 돌아서는 한 걸음을 떼자마자 막내 입에서 나온 공포스러운 그 말.

어린이집 가방도 다 있고, 이제 너만 가면 되는데.. 너를 보내 놓고 할 엄마의 일들이 시간, 분 단위로 계획되어 있는데..


무조건 안되는 건 아닌가? 너를 끼고 해? 아, 안되는데 너가 없어야 일이 되는데......


“아, 제가 오빠들 말 잘 듣구요. 엄마가 밥 먹으랄때 잘 먹구요. 공부도 방해 안 하고, 제 자리도 정리 잘 할꼰데요~?”

망설이고 있는 내 마음을 잡아채려는 듯 속사포처럼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쏟아낸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그려보다가 말고 잘도 조잘대는 저 쪼고만 입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어본다.  


그리고 늘 ‘안돼,안돼. 흔들리지 말자 응. 그건 아니야..’ 가 쏟아지던 내 입에서 정작 나온 말은, “너어, 정말 ! 진짜 오늘만이다!” . 예상치 못한 대답.

대책없는 이 말. 사남매를 키우며 늘 자랑삼던 엄마의 원칙 중심의 드높던 권위가 사라졌다. 맺고 끊임도 결여됐다. 사실 이건 내가 지양하던 스타일의 양육방식인데, 어쩔 수가 없다. 이 녀석은 아이는 전에 없던 나의 모습을 영혼에서 끌어내놓고 나를 늘 놀라게 하니까. 무장해제라고 하던가??


나는 늘 이렇게 딱딱하고 시스템에 맞춰 살아야 하고 일상의 스케줄이 어긋나면 힘들어하는 사람으로만 살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막내 녀석이 엄마에게 즉흥적인 삶의 기쁨을 가르치고 있었다. 배워보니 이렇게 사는게 나쁘지도 않다. 나도 노는거 참 좋아하고 즉흥적인 사람인데, 좀 더 멋지게 놀겠다고 미래의 삶을 위한 지금을 희생 담보가 내 안에 강하게 박혀버렸나보다.


이런 나를 그렇게 사는거 아니라고 우리 막내가 가르친다.

역시 사람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인가.? 내가 누구 말이라고 이렇게 잘 듣는 사람이 아닌데, 막내 파워는 정말 슈퍼 갑이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미니데이트나 할까?

우~~와~~ 엄마 최고!! 아이에 손엔 초코우유를 쥐어주고 늘 바쁘게 픽업만 해서 가던 아이 학교 앞 커피숍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여유있게 한 모금 음미했다. 세상이 갑자기 느린 속도로 흘러가고 내 귀에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 까페에 아침에 이런 좋은 음악이 흘렀구나.. 막내덕에 여유를 찾아 좋기는 하다.


그런데 이 말 많은 놈, 엄마 입에 커피 향이 입에 퍼지기도 전에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엄마, 참 맛있어요?””엄마는 왜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냐요?” 어쩌구 저쩌구... 근데요, 우리 유치원에 준우가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요... 어쩌구 어쩌구

“엄마, 엄마? 엄마! 엄마~~아~ 어엄마!!”  “....응?”  “나 말 진짜 많지요? 이제 말 그만 할게요.” (3초후 ..) “근데, 엄마......”


엄마가 늙었다. 이런 아이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고, 마냥 귀여워서 쳐다보는데 시간을 쓰고 있고, 이놈의 말랑거리는 엉덩이를 쪼몰딱 거리면서 인생의 재미를 찾는다. 그러다가 화를 삭히며 애써 참는 얼굴로 등교한 큰 딸 생각에 머물자 이내 웃음기가 사라진다.


조금 아까 아침 우리집 풍경.

엄마가 글 쓴다고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엄마, 지금이 몇 신줄 알아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시계를 봤다.

아뿔싸!! 8시 30분 등교 10분전이다. 내가 글 쓰다가 아이 알람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무의식중에 끄고는 애 학교가는 날에 대한 생각을 저만큼 밀어두고 애를 깨우지도 않고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고 몰입하고 있었나보다.


오늘 일찍 가야한다며 전날 가방싸두고 어쩌고 하던 모습이 그제야 기억이 나며 진땀이 살짝난다.

미안함에  한 발자국 주변을 어슬렁 거려 보지만 마음이 상해서, 엄마의 관심사와의 경쟁에서 져서, 빈속으로 가방을 챙겨서 가는 아이, 그리고 언니를 따라 무작정 나선 막내.

그럼 잘못은 한 건 확실하니, 이 아이를 콱 잡아채 엄마가 미안하다 쿨하게 애기하고 잘 풀어서 학교에 보내면 될 것을, 못난 엄마 주변만 어슬렁거리다가 계속 심술보를 안 내려놓자 종이짝 같은 육아 인내심은 금방 바닥을 보이고 만다.“무아, 그만해라, 이미 지난 일인걸 어쩌라고 이렇게 화를 안 풀어” 이런다. 내가 이래.


그래놓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했거나 실수하면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나? 자격있나 싶어서.. 슬그머니 가서 손을 다시 잡아본다. 다시 빼버리는 손을 또 잡고 싶지는 않다.  딸과는 마음 거리 두기를 유지한 채로 계속 걷는다.  옆에는  손을 1초도  놓치고 쪼몰딱대면서 팔딱거리는 딸이  하나 있으니  배짱이다. 내가 이럴줄 알고 둘씩 낳아놨지. 흥!


내가 이렇게 나이만 먹었지, 아이의 마음을 보담아 줄 그릇이 없다. 아니 사실,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랜덤이다.

자주 있었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그것도 내 기분에 따라.. 전문가들이 말하는 최악의 양육방식이다. 엄마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와 공기가 달라지는.



부모답지 않은, 치사한 핑계를 대자면 내가 나를 바꾸는데, 큰 훼방꾼이 사실 막내다. 난 진정 공평 잣대로 아이들을 대하고 싶은데, 막내는 복병이다.


하는 짓이 남다르다. 보고 배운 것이 최고의 교육인지 언니오빠의 좋은 것만 쏙 쏙 뽑아 액기스를 방출해 대니, 엄마는 도리가 없다. 막내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 내가 속수무책이니 같이 사는 어른 남자한테 좀 도움을 받아볼까 하는데, 이 남자는 더 노답이다.

완전 애 손에서 놀아나도 저렇게까지 당하나 싶어 옆에서 보고 있다보면 화가 날 정도로, 막내딸x 꽁무니를 졸졸 쫒아다니는 그리고 질질 끄달려가는, 그러다 팽당하고 상처받고 또 부르면 쪼로로 달려가는 참 구질구질한 을포지션, 을도 안니다.  갑.을.병.정.?  그래 갑과 정의 연애가 따로 없다.


잔소리를 해봐도 소용도  없다. 아이들이 다 느끼고 편애는 안 좋은게 당연 하고 아빠의 편애는 특히 아이들 성장에 아주 극단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자제해라 아무리 얘기해 봐도 자기도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바보같은 대답만 늘어놓는다.

나는 아는데. 자기는 모른단다. 10년전 어느  여자의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에 전력투구 했을 때만 나오는 바로  모습. 나에게는 추억이  잃어버린  모습.

나는 그 모습 아는데...


둘이 꽁냥꽁냥 노는 꼴을 보다 못해

“어린 것한테 홀려가지구...”눈을 흘기며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만큼 강력한 중독이  있을까? 이 남자 정신차려야 할텐데..

자기의 10년후를 생각하면 지금 누구 꽁무늬에 있어야 하는지,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지금이 좋으면 좋은 단순한 남자사람. 자네, 정신차리시네나..




암튼, 1번과 2번을 대하는 태도와 3,4번을 대하는 내 태도에 깃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마다 다름이 분명히 있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아이 없다와는 조금 뉘앙스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솔찮게 받아드는 질문중에 하나가 “ 넷 다 예뻐요? 누가 제일 예뻐요?” 이런 류인데. 답은 둘 중하나다.

누구 반드시 한명은 꼭 예뻐야 하나요?” 혹은 “그날 제일 빨리 자는 애요”


그런데, 아니다. 한번 더 생각해보니 그냥 이유없이 더 웃게 되고 , 한번 더 엉덩이와 볼을 쪼몰딱 거리게 되는건 확실히 3.4번의 빈도가 높다.

이래서 어른들 하는 말은 모두 맞진 않지만 대부분 적용 한계선을 넘긴다. 내.리.사.랑.아래로 갈수록 특유의 슈퍼 귀여움을 장착 하고, 부모는 그에 대해 원칙이나 일관성은 언니오빠나 줘버리고 막내에게는 무장 해제되는 상황. 막내를 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감정일 것이다.


코로나가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은 더 패닉상태에 고착되어 있고, 아이들에 대한 해결점은 없었다. 나도 내 일을 멈출 수 없고, 운동도 멈출 수 없고,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진득하게 시간을 잘 보낼 능력이 없어 밖으로 돌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집에 자체 고립된 생활을 한지가 꽤 오래 됐다.


서로 한 공간에 오래 있다보니, 아무리 나간다 해도 삼시세끼를 챙겨줘야 할 의무를 가진 엄마와 안팍이 구별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연연연생인 아이들끼리도 좁은 공간을 나눠쓰며 하루종일 붙어 있어야 하니, 소소한 것들에도 모두 예민하게 맞서서 싸움이 일어난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 냈다. 집이 엉망이라며 소리도 자주 질렀고, 밥을 먹으라고 좋지 않은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설겆이를 하면서 일부러 그릇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집안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참 힘든거 팩트다. 그런데 문득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마음 한켠이 시려왔다. 어쨌든 엄마는 운동한다, 미팅간다 나가기라도 하지.. 아이들은 아빠 엄마가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다. 엄마는 화가 나면 감정표현을 하지만, 자기들만의 정제 되지 않은 감정표현이 튀어나오는게 형제간의 싸움인데, 이를  엄마는 밑도 끝도 없이 하지 말라고만 한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를 가긴 하는데, 뭘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고 친구들과는 대화도 하지 못하게 하고, 유리막 안에서 혼자 밥을 먹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하교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집에 갇혀 온라인을 들여다 보고 수업을 받으라는 규칙에 자기를 억지로 맞춘다.


아... 또 내 입장만 있었구나. 또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았구나. 내 마음에 시급히 아이들의 자리를 마련하자. 급 반성하는 의미로, 우리집 ‘데이트제도’를 퀄리티있게 가꿔가기로 했다.

많은 아이들과 항상 몰려있으니 각자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발견할 최적의 시간인 11시간을 가지기가 어려워 1주일에 한명씩 데이트를 하는 요일을 정해놓고 그것을 지켜왔다. 그런데 그 제도를 도입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데이트가 의무방어전처럼 흘러가고 엄마는 매주지만 각 아이에겐 한달에 한번 이벤트시간인데 엄마는 일을 하던지 다른 생각에 자주 빠져있었다.


그런데 저번주 내가 정신이 좀 차려지자 아이들 입장에서 이 생활을 한 번 면밀히 들여다 보고는 마음으로 결심을 했다. 적어도  퀄리티 타임만큼은 지켜 내겠노라고 다짐하고 맞은 다시 맞은 셋째의 데이트날이었다. 운동을 하고 운영진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적당히 에너지는 고갈되어 있었다.


집에 가면 저녁도 해야 하지만 얼른 해놓고 쉬고 싶은 마음 아직도 더 해야할 일에 대한 압박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결단했다. 내 스스로와의 약속이 있으니 아이에게 전화 통화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두라고 했고, 집에 들어오자 마자 저녁을 챙겨놓고 바로 나갈 마음을 굳게 먹었다.


셋째는 오락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작년 데이트 중 가장 즐거웠던 어느 날이 마음에 저장되어있었고, 아이는 그 추억을 소환해 냈다.

엄마랑 오락실가서 에어하키와 보글보글 게임을 한 기억이 아주 뇌안에 콕 행복기억 이번엔 이수역 남성시장안에서 그 추억의 한 조각을 또 채워간다.




이렇게 총 보내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2시간반쯤이다. 내가 몰입해서 글 한편 쓰는 시간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이 시간을 쓰면, 사람이 달라져 있다. 어린시절을 기억하면 가장 반짝이는 기억중에 하나가  것이고,  무엇과도 바꿀  없는 자신만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것이다. 아이의 눈빛이나 낮빛이 출발할 때와 오는길이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쉽게 비포 에프터가 다른 아이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후회 대신 앞으로 내가  잊지말고 챙겨가야  우선순위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대신, 엄마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자책은 하지 않는걸로.

나는 이 아이들의 진심어린 웃음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너희의 삶의 의미를 찾아주려고 엄마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앞세워 정작 아이의 현실 행복은 지켜주지 못한 엄마였구나를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현실에 잘 적용해가면 그만이다.



이 생에 배울것이 많으면 스승이 자식의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나는 참 배울것도 많은 이번 생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아주 빡쎄다.

그런데 이렇게 집약적으로 배운만큼 그 배움이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모두 쌓여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이 현실로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세상 모든 칭찬중에 최고의 칭찬은 자식들로부터 이런말을 듣는 것 아닐까.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 아들들에게는 “나 엄마랑 결혼할래요” “엄마가 내 엄마라서 자랑스러워요” 등등.


어제 아침 유치원 하루 쉬기를 허락해 준 엄마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팔랑팔랑 뛰어가던 막내가 휙 나를 돌아본다. 아 아이는 자기가 내 배속에 오기전에 공중에 떠다니다가 아빠 엄마를 우리집으로 하기로 본인이 결정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암튼 휙 돌아본 그 아이의 작은 입에서 나온 말.

거봐  난, 참 엄마를 잘 골랐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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