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끝은 어디?

부부11년차, 여전히 연애하듯 살아가는 부부이야기

by 스텔라

작은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부부의 싸움이란 늘 그렇듯이 아주 작은, 말로 설명하는것 자체만으로 내가 쪼잔해 보이는 그런 애매한 그런 일들이 발단이 된다.

우리 부부는 여느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각자 글을 한편씩 쓰고 소원노트에 짧은 운동까지 마치고 난 후였고 사랑스럽게 아이들과 허그로 아침인사를 나눈 후 여섯식구가 식탁에 앉아있었다.

우리집 아침담당인 아빠가 나름의 정성으로 아침밥을 준비한 식탁에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조식을 즐기고 있는데 어김없이 막내가 일어난다.

"어디가?"

"응가마려워요..."

"너.... 진짜야? "

"아휴.... 그럼요. 그럼요~~"


늘 이렇게 니 배변이 진짜냐, 가까냐를 두고 진위여부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이 애가 자꾸 밥먹기 싫어 화장실을 핑계삼아 시간을 벌기 위해 자주 '배변을 가장' 하기 때문이다. 그 때 첫째가 물었다.

"엄마, 우리 키우는 중에 제일 하기 싫었던 일이 뭐예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 발음하려면 혀를 잠깐 딱딱한 입천장에 꽉 대었다가 떼야하는 그 단어를 입밖으로 힘차게 내뱉었다. 똥!!


"엄마는 엄마것도 절대 안봐. 참 보기가 싫어. 그냥 배속에 머물다 나온 음식물찌꺼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더럽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건 맞는데, 무슨 트라우마인지 엄마는 유독 그냥 보기도 언급하기도 싫더라구. 이런 엄마가 4명이 번갈아 싸대는 그 똥을 치우느라 밥먹다가도 몇 번씩을 일어나는 건 당연했지. 니 아빠 닮아 장을 또 짧고 넷다 하루에 평균 3~4회. 여기서 잠깐, 4곱하기 4는? "16이요!!" 4단을 외워볼까!~~ 어쩌구저쩌구~~


그니까, 엄마가 신생아때도 제일 싫은 일이 똥기저귀 갈아주는 거였어. 그리고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응가 후 뒷처리는 '반드시 물로 씻긴다'는 원칙을 고집해서 더 힘들었지. 특히 여행이나 외출때 난리 폭탄난 넷을 자리에 앉혀놓고 밥 좀 한바탕 먹이고 이제 내 한 입 들어갈라 치면....그 타이밍이 꼭 그렇지.

그 때는 내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내 착각'이라고 외면하고 싶었고 니네중 하나가 '엄마 응...가' 라는 외침은 내 환청이라고 믿고 싶었던 때를 한참 살았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네, 막내만 남았으니까... " 그렇게 아이들과 큭큭대며 별것없는 수다를 떨어내던 아침이었다.


'육아 라떼'론을 펼치며 '니네 키운 전설의 이야기' 재미에 홀딱빠져 있는데,마침 딱 들려오는 막내목소리

"엄마, 응가 다했어요!!" " 이거 무슨 타이밍이고?"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귀가 먹은 사람처럼 방금 아무소리도 못들은 사람처럼 몸은 가만히 식탁의자에 꽂아 두었다. 일명 눈치작전, 버티기에 돌입한거다. 이윽고 들릴듯 말듯한 한숨소리에 이어 내 건너편에 앉아 같이 버티기를 잠깐 시도하던 그가 마침내 일어난다.

'흐흐흐 성공이다. 어느때고 다 싫지만, 아침 응가 씻기는게 제일 싫어...' 하고 남은 커피잔을 들어 여유롭게 입으로 가져다 대는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 악!! "

내가 뛰어가보았을때 욕실로 들어가던 그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화장실 벽에 몸을 딱 붙이고 꼼짝도 않고 있다. 분위기를 짐작해보았을땐 발가락 어딘가를 굉장히 쎼게 찧인듯 한데, 그 강도가 엄청났나보다. (평소에도 엄살이 좀 심해서.... 양치기 소년의 다치기버전 처럼 대수롭게 않게 넘겼던 것도 있다) 어디 피났는가? 싶어 살피는데 금방 부어오르긴 하지만, 찢어진거 아니길래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아빠의 안전을 확인한 아이들도 다시 돌아와 아까 하던 재미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별안간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것이 아닌가.


"왜, 당신은 애가 엄마를 부르는데 일어나지를 않아?"

"당신이 갔잖아"

"그거야 당신이 안 일어나니까."

"누가 가래?"

"내가 안 가면 애가 계속 기다리잖아"

"지금 당신 발 다친게 내 탓이라는 거야? 아픈건 아픈거고 말은 바로해야지"

................


집안 공기가 확 싸늘해졌다. 그리고 이 싸늘함을 풀겠다고 슬쩍 애교를 부려봤다. 그도 그 애교에 화답하고 잘 넘기려 했던 건 같은데, 특정부위를 잡았다가 힘조절을 실패한 나머지 더 넘어올 수 없는 루비콩강을 건너고 말았다. 나를 폭팔시킨거다.

나는 그때까지 나를 쥐어잡던 감정을 싹 거두고 얼굴에 웃음끼, 슬픈기운도 모두 다 집어넣고,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의외로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주말 동안 목말랐을 화분에 물을 주면서 작업실을 환기시키고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려 내 마음에도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환기를 시켰다.

그 순간 갑자기 욱, 하고 울분이 터진다. 요즘 뭔가 모르게 평소같지 않게 예민한 남편에게 나름 맞춰준다고 노력했던 나였는데,

"이래서 머리 까만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내가 요즘, 표현이 필요하니 좀 잘 해주세요"라고 좋게 자주도 얘기했는데... 자기야 말로 사람말을 개똥으로도 안듣더니...뭐?? 참 나.. ㅈ댜ㅗ시ㅐ젇게ㅐ


나를 수시로 올라오는, 욱감정을 나름 참고 있었던 중이었보다. 하는 짓은 달갑지 않지만 부부란 그런것 아닌가. 사랑만으로는 쉽지 않으니 의리를 동반해 끌어가다 현명하게 퉁치기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

그래서 지난 11년간 나에게 잘해 준 내공 통장에서 쌓인 실적에서 야금야금 빼서 퉁치기를 반복하던 중이었는데 퉁을 넘어서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은 행동을 그가 한것이다.



이럴때 대부분 어떤 결말로 이어지나? 다른 부부들은, 연인들은 싸움의 끝은 누가 정리하게 되는지.

나는 단 한번도 먼저 싸움의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사과를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사실 무능력함에 속하는 건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죄'로 참 많은 다른 것을 해야 하는 초비효율적인 안타까운 인간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반면 '미안하다는 말, 인정한다는 말, 내가 잘하겠다는 말' 3종 세트로 지난 11년간 모든 아내의 내조와 촉망과 존경을 받아온 남편. 그와 나의 소소한 싸움은 항상 그런 패턴으로 결론이 나곤했다.


작업실에 와서 또 인정과 사과와 이어지는 긴 대화로 이번 일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줬다. 부부싸움 후 최고부터 최악의 정리 7단계


1.제일 괜찮은 남편, 먼저 인정,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아내를 마음으로 안아주고 달래고 사과를 받아준 감사로 밥사주고 커피도 사준다.

2. 그 다음 괜찮은 남편, 사과는 하지만 그 뒷수습은 알아서해라 식이다. 나도 할말이 없어서 가만있는게 아닌데, 사과 먼저한게 어디냐 하고 넘어가는 단계.

3. 그냥 그런 남편,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사건이 무뎌질 무렵 괜히 말을 건다. 다른 상황으로 그때의 일을 덮는 거다. 이때 평화주의자 아내가덮는 활동에 동참만 하면 게임 끝. 없던 일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엔 앙금이 남는다.

4. 좀 별로인남편, 처음엔 사과로 시작했다가 아내가 왜 그랬냐. 재차 따져 물으면 금방 인내심을 바닥내고 다시 나가버린다.

5. 좀 더 별로인 남편,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데!!" "그만좀 해라" 하는 등의 반발심 발언으로 사과를 안하느만 못하게 상황을 만나는 남편

6. 많이 별로인 남편, "아, 나도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 소리치며 집을 나가버리는 남편

7. 최악의 남편, 집나가서 술을 머리 끝까지 먹고, 밤새 걱정시키다 못해 외박까지 하고 그 다음날 들어와 그 다다음날까지 자버리고 일어나서 라면끓여먹고 다시 나가버리는 남편


이 얘기를 듣더니 자기는 어디에 해당되느냐 물었다. 다행히 부부참교육 현장의 수제자답게 제일 괜찮은 남편의 형태로 일관하다가. 가끔 2번3번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편이라 대답하면서 '그 대신 맛있는 점심을 사줘라' 알겠다. '내친김에 커피도 사줘라' 알겠다. 하고 잘 넘어 갔다. 부부사이는 정말 희안하다. 누구나 사는대로 평범한 관계인듯 한데 이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한 두 남녀의 노력에는 굉장한 인생의 피땀과 애처로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큰 애매모호함은 딱히 '이렇게 노력해라'라고 말할 메뉴얼도 없다는데 있다. 내 아내는 세상에 이 사람뿐이고 내 남편도 이사람 뿐이니까. 그런데 그 바탕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명은 해야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평생지는 관계와 평생 이기는 관계는 불가능하기도 하고 가능하다 해도 바람직하지 않다. 5번 그 사람이 져줬으니 이번엔 마음먹고 내가 진다!.

이런 보이지 않는 밀땅,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이것을 한마디로 지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지혜라는 것은 어디에서 생기는고 하니 다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누가 부부가 사랑으로 사나? 그런 마음은 잊은지 오래다.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니다. 식당에서 마주보고 웃으면서 밥먹는 남녀는 절대 부부가 아니다. 이런 항간의 떠도는 부부의 정의는 '내 실전부부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와 하나밖에 없는 내가 만나 '지구에 하나뿐인 가정'을 만드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 핵심인 '부부관계'에 대한 온전한 정의와 책임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부부의 책임일 뿐이다. 내가 이 사람과 처음 살고자 했던 그 마음, 배만 안 고프면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서로만 있으면 다 헤쳐나갈 수 있다고 결혼을 결심했던 내 마음만이 알고 있는 그 결단의 순간의 초심, 그것을 자주 깨워내서 그곳으로 영점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이 깔려있어야 한다. 마치 우아한 백조의 물속 미친듯한 물질처럼.

희망적인건, 이 노력은 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 매달린 결실들은 생각보다 많고 달고 풍성하다. 부부관계에서 나오는 문제들만 해결해도 그 에너지로 국가를 하나 건설할 정도라 한다. 이 세상 모든 관계의 불완전의 핵심을 찾아찾아 거슬러 가다가다 보면 모두 그 사람의 배우자와의 관계와 만나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살기 쉬운 나의 본질, 내 배우자와의 관계. 이 관계에 대한 어루만짐이 하루에 한번이라도 있는 삶과 덮어놓고 그냥 물밀듯 사는 삶은 지금은 크게 느껴지지 않아도 조만간의 훗날이나 노후에라도 언젠가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 드러남속에 진짜 행복한 삶이 들어있다면 그 어떤 세상 결과물과는 결이 다른 충만함을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가 된다. 그건 오로지 나만이 느끼는 인생 행복의 농도이자 퀄리티의 기준점이 될테니까. 부부관계만 좋다고 모든 삶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불행하면서 완벽하게 행복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안정된 부부관계가 주는 만족도는 다른 어떤 성취가 채워지지 않더라도 제법 내 삶을 괜찮은 삶의 평균율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곳이 부엌만인가? 내 일터만인가? 내게 '어떻게 그런 부부가 되었나?' 묻는 지인들의 말에 진짜 중요한 요리주제는 음식이 아니라 남편이라 주장하는 나로서, 딱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것이라 말해드린다.

"나는 절대, 단 한번도 한순간도 남편을 '니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따옴표에 넣어두고 포기해버린 적이 없다. 부부관계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포기를 언급할 관계여서는 안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결방안은 있다".

나는 이렇게 알토란처럼 닦고 깍고 빚어진 우리의 부부관계가 데려가줄 우리 가족의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이 기대는 미래에만 가 닿아있지 않다.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면, 나는 그와 오늘도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또 같이 자고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굉장한 설레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런 면에서 내 삶을 바라볼때가 가장 가슴 뻐근하게 뿌듯하고 내면에서 차오르는 행복함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내 진심이니까. 연애할 때처럼 바다가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여수로 한방에 차를 몰아준 그와 나는 오늘도 바다를 함께 바라볼 것이다. 물론 그의 눈은 바다보다 아이들 뒷통수에 눈이 더 자주 가겠지만. 내 눈빛은 그런 그를 향해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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