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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l 22. 2021

너, 인생의 답 여기서 찾은거구나.

사색과 인생을 내게 가르쳐준 곳, 바다


여기는 여수 바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통창으로 시원하게 바다가 흐른다. 저 멀리 섬 자락 끝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되는 건가. 여기에서 흘러 저곳으로 가는 건가.


구름은 낮게 깔려있고 하늘은 켜켜이 하늘색 파란색 흰색 파스텔이 경계 없이 흩어져 있고 사이사이 새벽녘의 불그스르함이 애잔히 남아있다.


난 참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딱히 바다를 부모님이 데려가 준 기억도 없었고 책이나 티브이에서 본 바다가 전부였지만, 그 언제가 곧 만나게 될 바다를 상상하는 것이 팍팍한 나의 유년시절의 몇 안 되는 유일하고도 소소한 기쁨이었다.


지금 내 오른쪽 창으로 펼쳐져있는 풍경.

내 상상의 바다가 처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건 동해의 바다, 라테의 20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정동진 바다가 내 기억에 머무는 첫 번째 바다다.

브런치의 커버이미지가 마땅하지 않을때마다 나는 바다사진을 꺼내든다. 내용과 맥락과 상관없이 바다는 다 품어주니까 ^^


그때, 바다를 현실의 눈으로 처음 딱 바라보던 그 순간의 기억은 눈을 감으면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바다의 광활함과 색채감과 압도적인 위암 감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배신받지 않은 마음'을 배웠다. 그때까지 세상은 참 나에게는 어렵고도 이상한 곳이었다.


포근함대신 늘 눈치와 비유맞추기로 일관해야만 했던 부모님과 가정환경을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어떤 이유인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9살의 어린나이부터 "삶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까?" 에 대한 내 안의 궁금증이 멈추지 않았다. 하고 싶어서 한 생각도 아니요. 누가 나에게 물어서 들어온 생각도 아닌 생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그걸 작은 체구로 가득 안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소녀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사는 나는 타인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아이'였을 테고 나는 그 이상함을 감추고 평범한 아이로 비춰지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그런 나에게 상상속에 바다가 주었던 위안이 어떤 의미의 것이었는지 이제 어렴풋이 안다. 바다를 상상만 하다가 처음 내눈으로 본 날 '아.. 내가 상상했던 딱 그 마음 그 위안'이 이거였구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처음으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짐작에 큰 평안과 마주했다.


그 어떤 대상으로도 느낄 수 없었던 단단한 신뢰와 믿음을 나는 바다로부터 얻은 것이다.





"아마 좋겠지?? 이런이런 기분이 들꺼야.."라는 상상과 기대가 무참히 무너지는 경험들, 다들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것들 조차 내 인생에서는 당연할 것이 하나도 없는 슬픈 삶. 그 슬픔을 바다는 그대로 안고 품어주며 나에게 되물어 주었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내가 바다를 향해 던진 질문을 내 자신에게로 처음 가져다 온 그날. 나는 다시 생을 한번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나와 바다와만의 약속이었다.

 


유년시절의 실패는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별거인만큼 큰 사건. 존재감이 미약해 더 성공에 욕심을 많은 품었던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을 포기하고 전국민이 다 어려웠다는 IMF시절 부모님과 언니의 등골을 빼가며 졸라서 갔던 1년치의 기숙학원 재수생활. 거기에 어린시절의 아픔까지 다 녹여넣고 생을 다르게 살아보리라 다짐했고, 노력이 결실을 맺어 시험당일만 잘 넘기면 삶이 달라질꺼라 기대했던 그 숱하 희망이 '단 하루, 생애 첫 실수'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릴 수 있는게 인생이라는 그 뼈아픈 통곡. 그 처절함을 안아줄 수 있는 것은 바다뿐이었다.


그의 위로와 어쩔 수 없는 생에 다시 던져지기 위해 시작한 대학생활 본격적으로 틈만나면 바다를 보러가거나 상상의 바다속에 잠겼다. 스무살의 바다와 내가 둘이 한 약속을 늘 기억하지는 않았어도, 힘들때면 그냥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아... 바다 보고 싶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바다사랑은 숱하게 많은 사람과 데이트코스로 엠티장소로 가족여행으로 친구들과의 여름휴가지로 이어졌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나 이제는 이 사랑하는 바다속에 바다보다 더 사랑하게 된 존재들이 담겨서 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자가 됐다.


늘 먼바다, 지평선 끝에 가 닿았다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멍때리고 있다가 다시 잔잔한 물결에 내 속을 담아내 보았다가 하늘 한번 둘러보고 기러기때에 잠깐 현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물에 잠기다 보면 마음도 따라 가만가만해진다.


나에게 사색이란 단어를 가르쳐준 바다, 그와 나의 1대1관계속에 '바다'보다 더 자주 나의 시선을 빼앗는 사남매. 어쩌면 그는 약속을 지켰는지도 모른다.


이 바다속에 몸을 던져 영원히 잠들어버리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던 바다는 나를 밀어냈다.


조금만 더 버티고 나서 다시 오라고.


"얼마나? 나는 지금도 충분한데..."


딱. 10년만.. 내 안에 목소리겠지만 정말 바다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때 내 나이 21살. 딱 10년만에 바다는 약속을 지켰다. 31살의 5월 영혼의 짝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식장에 입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부산 해운대의 바.닷.가.에.서. 말이다.


평생 도시에만 살아온내가 태평양건너가 만난 인연과 그의 고향인 부산앞바다에서 평생을 가약할 인연을 맺으리라고는 그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바다는 알고 있었을런지도..



작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소양이 사색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물과 현상을 그냥 보지 말고 다각도로 면밀하게 쳐다보면 그것이 이야기 해주는 역사와 서사가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노력도 해보았지만 보이긴 개뼉다귀. 내가 아는것만 관심있는것만 볼 줄 아는 일자무식의 내 눈엔 내 마음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결국 그렇게 오랫동안 도전했던 명상도 사색도 포기했다. 이것을 돈주고 배운답시고 시간도 돈도 노력도 많이 잃었다. 그런데 이 바다 그냥 보여준다. 사색과 명상을 가르쳐달라고도 안했는데 그저 자신을 송두리째 보여줌으로 그 안에 내가 잠기게 만들어준다.

 

사주팔자라는 것이 있다하고 나는 그것을 다분히 꽤 믿는 편이다. 내 사주에는 '물'이 많다고 한다. 그것도 큰 물.


태어난 때가 한참 가을이 무르익을 때이니, 가을의 큰 바다. 이게 나란다. 듣고 보니 내가 이렇게 바다에서 잃어버릴 생을 건질만큼의 사색과 위안을 얻은 이유가 조금 해석이 된다.


지금 오른쪽으로 살짝만 고개를 돌리면 내 발밑을 흐르고 있는 듯이 계속 어디론가 흘러가는 여수바다가 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만히 보다보면 알게 되는 사실, 이 흐름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시작과 끝이 없어도 무언가는 계속 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여있는것 같아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바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늘 바다를 상상하며 사색만하고 살 수 없지만 늘 상상하고 바라보면 나를 인생에 잠길 수 있는 자연물이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나의 어딘가의 가고 싶다"의 어딘가는 100이면 100항상 바다였다. 바닷가가 고향인 남편을 앞세워 늘 그의 고향을 내가 먼저 찾았고 그의 출장일로 찾는 여수는 횟수로 대충 세어도 5년만에 서른번쯤은 왔음직한 곳이다. 아마 그가 일하는 현장이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네 아이까지 앞세워 아득바득 쫒아다니지 않았을거라는 것에 내 손목을 건다.


하늘도 좋고 산도 좋지만 나는 바다가 좋다.


가만히 있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는 내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곳, 언뜻보면 가만히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시도 쉬지않고 어디론가 흐름을 타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물결,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평온하고 여여하며 우아하다. 나는 그렇게 '바다를 닮은 사람'을 꿈꾸나보다.



무살의 나에게 '10년만 버텨봐. 좋은 것을 줄게' 했던 바다. 10년후 남편을 태평양바다 건너에서 선물했고, 10년만에 두 나라를 고루 거쳐 네아이를 주었다.



분명, 내 목소리에 응답한거다. 바다와 나 둘밖에 없었는데 그걸 못 들었다면 내가 그 이후로 이렇게 살게 되는 삶에 던져질 그 어떤 개연성도 없다. 이건 분명 바다 네가 나에게 한 짓이고, 우주의 작용이며, 소원요정에게 전해 실어다 나르고 있었던 거다. 이래서 난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세상을 보이는 세상에 구현하는 일을 하며 살게 된걸까.



"나는 외롭다. 삶의 의미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살 이유가 없다" 던 나에게 바다가 준 삶의 의미들이다.


욕심이 많은 것을 알아챘는지 많이도 줬다. 최씨사남매

나는 이 선물을 달게 받고 있다.  이렇게도 신나게 말이다.










어제의 여수바다는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이자 바다가 준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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