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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ul 24. 2021

우리 라떼엔 꼰대가 없다.

행복한 상상,  글벗들과 함께 할 즐거운 노후

현재 운영중인 새벽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하는 가장 주된 일은 필사글감과 주제를 제공이다. 어제보다 한뼘씩 더 발전해가는 자신을 글과 만나기 위해, 나를 믿고 모임에 오신 글벗님들을 위해 정성껏 책을 읽고 좋은 부분을 함께 필사하도록 발췌하고 주제를 드린다.

그렇게 해오길 언 10달 어느덧 글쓰새라는 이름은 10기수가 채워졌다. 우리는 추석에도 시댁에 랩탑을 가져가 글을 쓰는 기염을 토했고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글리스마스 했으며, 한해의 마지막 날에도 역시, 심지어는 2021년 떠오르는 첫해는 줌으로 함께 감상하며 새해덕담을 글로 나눈 말그대로 '글. 벗' 이다.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집단이 없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보다 내 친한 친구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존재가 된 지 꽤 오래다. 그들과 이번에는 습관을 넘어서서 어디 한번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보자! 를 목표로 함께 새벽마다 요이 땅! 하고 달려온거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10달가까이 함께 글을 써오신 글쓰새로 합을 맞춘 분들이 대부분이라 이제는 익숙하게  매일 새로운 글감으로 생각의 영역을 늘려가고 이를 댓글투어로 촘촘하게 나눈다.


글벗인연이 된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원래 새벽기상은 해왔는데, 글이 안써진다는 분. 글이 안 써지는 이유도 여러갈래다. 글감이 없다.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글은 써지는데 책은 또 다른 얘기다. 글쓰는데 의미를 찾고 싶다. 글 자체를 매일 쓰고 싶다. 글 쓸 시간이 없다. 등등.. 그 중에 오랜시간 현장에서 아이들의 글력을 만들어주신 논술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모임 전부터 새벽기상을 루틴화하여 성공해보신 적이 없다며 두려워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10달이 지나고 글의새로 호흡을 같이 맞춰가고 있는 지금. 이분은 누가봐도 '프로 새벽기상러'고 플러스 '글쓰기가 몸과 마음에 착 붙은' 글벗사람이 되셨다.




100일간의 새벽글쓰기 프로젝트 글의새에서 처음 시도하는 깨알 샵인샵 프로그램 '글벗 셀프 큐레이팅'이 있다. 이는 글벗님들이 리더자리로 오셔서 직접 필사글감과 주제를 주시는 날, 매주 토요일 새벽은 이렇게 발제자를 바꿔 꾸려보기로 했다. 오늘은 바로 내가 애정하는 프로새벽러 자람쌤님의 '그 날' 이다.


나는 사실 굉장히 내 중심적인 사람이다. 나에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일에 몸과 마음이 선뜻 나서지가 않는다. 이런 나를 알았기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나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으로 환경설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시절은 내 뜻이 아니었더라도 내 제2의 인생은 내 존재자체로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다.

선택은 남편, 다음선택은 자식들이었다. 나는 '나의 존재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있는' 사람을 찾기로, 찾지 못하결혼따위는 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있는 독신주의자'였다. 그러나 절실한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때 이루어진다 했던가? 10년의 패색이 짙은 헤매임 끝에 '정말 노력만으로 안되는게 있구나..' 를 쓸쓸하게 인정하고 '완벽한 홀로살기'를 위해 홀홀단신 태평양을 건너자 마자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운명의 남자와 완벽한 합(?)을 맞추며 네아이를 낳았다. 이해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이기심의 발로로 낳은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내가 꿈꿨던 이상적인 가정으로 안정되자 이번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집단에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내가 보인다. 머리를 디밀고 세상속에 포함되기 위해 10년간 도전한 직업만도 4가지, 내 손에 쥐어진 자격증만 10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배움질, 그냥 돈주고 산 경험에 그치고 말았고 자격증은 의미없는 종이쪼가리가 되었다. 그 어디에도 내게 딱 맞는 옷은 없었다. 그래서 옷을 맞추기로 했다. 내 옷엔 화려한 꾸밈도 비쌀 필요도 없었다. 글이 바탕이 되는 옷을 입어야 했다. 나는 어떤 형태로는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40살이 지나고 나서야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글과 멀어지게 하는 그 어떤 작용들은 결국 내 곁에 남아있을수 없음을 깨달았다. 혼자깨어있는 새벽이 너무 외로워 '함께 글쓰는 모임'을 작게 시작해보려 했다. 모객이 안되면 남편이랑 둘이라도 써볼 요량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참여로 모임은 나름 호황이 됐다.


이 안에서도 계속 '나도 좋고, 남도 좋을' 그 무엇을 향해 끊임없이 변주를 시도했다. 이 변주의 초반부터 지금까지 단 한 기수도 빠짐없이 10달을 채우고도 이 긴 여정까지 망설임없이 사뿐히 올라탄 오늘의 큐레이터 자람쌤님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이렇게 글로 지어진 우리의 인연은
어디까지 일까?


언제가 우리 단톡방에 '헤어질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쓰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나는 좁고 깊은 사람이고 연민만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효율가치를 극도로 따지는 냉정한 사람이다. 이런 나에 대해 내가 내린 솔직하고 명확한 정의 끝에 만나진 글벗인연들이기에 나는 오히려 감히 노후까지 상상하고 그 상상이 내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준다.


욕심이 많은 나는 다이어트를 해도 내몸이 제일 예뻐야 하고, 글을 써도 내 글이 제일 돋보이고 싶으며, 아이도 제일 많이 낳고, 남편사랑도 제일 많이 받는 아내로 늙어가고 싶었다. 이 욕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새벽3시30분에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상을 굴린다. 그 결과 다행히 소중한 사람들을 잘 지켜냈다. 4남매 그리고 남편에게 평생 받을 인기도 보장됐다. 이거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내가 가진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세상에 보일 만큼은 보이고 죽어야 '이만하면 행복했다' 하고 눈을 감을 나였다. 그래서 감히 꿈꾼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생기는 '이변'을 뚫어내고 한분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글벗들의 저력을 보면서, 오늘 주제를 던져준 자람쌤님의 행보를 보면서 (그는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10kg 이상의 다이어트에도 성공함으로써 인생 가장 잡기 어렵다는 두마리 토끼 체력, 필력을 다 잡아냈다 ) 우리의 노후는 내 상상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내 욕심의 범주에는 작가로서의 명예, 완전한 가정, 글로 연대한 평생의 친구사람, 그리고 경제적자유와 미국, 그리고 체력이 들어가있다. 1.2.3번의 목표달성 후 5년 안에 우리 가족은 두 아이를 낳고 신혼을 살았던 땅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5년 살기'를 할 예정이다. 이번 도미의 목표는 두 가지. 네 아이의 완전한 독립과 미국에 사는 한인부모글벗 100인이다. 아이들을 그곳에 꽂아두고 부모글벗들을 등에 업고 함께 귀국하는거다. 그래서 그때까지 만들 졸업글벗 100인과 함께 한미연대를 만들어 이들과 함께 '부모의 전당'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거기서 같이 놀고, 글쓰고, 아이들을 마음편히 유학보내고, 한국에서 받아주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애잔해하고, 아껴주고, 추억을 나누며 울고, 웃고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는 모습에 부모마음으로 동행해주고, 이 손주가 니손주냐 내 손주냐하며 그렇게 함께 늙어가고 싶다.


우리의 그날에는 노후 걱정, 세상돌아가는 시시껄렁한 이야기, 속터지는 정치이야기, 아이들이 언제 우릴 봐주러 오나 목빠지게 기다리는 미어캣이야기는 없다. 자람쌤이 발췌해주신 김형석교수님의 '백년을 살아보니'에서처럼 80,90. 100살이 되어서도 일생의 가장 젊은 내가 되어 함께 글쓰고 우리만의 반짝이는 많은 것을 나누는 모임이 될 거다. 우리의 '라떼'는 구태의연한 지난날 고생의 무용담이 아니라, 각자가 기억하는 지금의 새벽을 더 빛내줄 이야기들이 될것이고 지금의 우리 이 새벽은 훗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하루하루라고 생각하니 안그래도 이 반짝이는 새벽, 의미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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