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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ug 03. 2021

'사유의 폭' 딱 그 만큼 행복하다.

다섯명의 '내가 병' 환우들과의 동행기

<어제아침>

글을 한편 쓰고 나면 얼추 7시가 된다. 3시 30분부터 시작된 나의 새벽루틴에 퇴근을 알릴무렵 한 명씩 먼저 깨는 아이가 있다. 어제는 그 아이가 셋째였고 마침 떨어진 우유를 사러 가자며 남편과 내 사이에 하나씩 아이의 손을 잡고 비가 보슬거리는 거리를 나섰다. 굉장히 좋아하는게, 마스크 안으로 볼우물이 손가락 마디만큼 푹 패여 웃고 있는게 엄마 마음에 느껴진다. 내친김에 도넛가게에 앉아서 '우리끼리 완전범죄하자' 고 키득거리며 도넛을 사이좋게 하나씩 먹는데 아이가 이런다. "저, 처음이예요." "응?' "엄마아빠 나 이렇게 셋이 앉아서 이렇게 있는거 처음이라구요" "야. 말도 안돼 너가 2학년인데, 9년동안 한번도 이런적이 없다고?" 

"네......." 



<사흘전 식탁>

"무아야, 너는 동생들에게 다 양보하고 너것을 너무 못챙기는거 같아?" "아..니요. 그건 아닌것 같은데요"

"그럼 동생1이 연연연생 사이에서 치이는거 같애?" "엄마, 무슨말이예요. 걔 성격 알면서..."  "그치,,,,"

"그럼 동생2는?" "걔가 은근히 양보하는것 같으면서도 결국 나랑 형꺼 다 챙겨 지가 먹어요. 우리집 매번 인기투표 결과도 아시잖아요.,,"  "그...치.."

"그럼 막내는?  아니다. 걔는 뭐 말 안해도..."

........


아, 그럼 아빠랑 엄마가 희생하는거 같애? 자기꺼 포기하고??

"저기요... 어머니. 글쓰시는 분이 자기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시는가요? 아빠나 엄마는 우리 피해서 데이트 다니고 왜 우리를 이렇게 많이 낳았나 싶을 만큼 두분꺼 절대절대 우리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는거 진작에 파악했어요"

"아...그렇구나. 가정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굴러간다고 배웠는데 우리집은 그럼 뭘로 굴러가는거지???"



<지난주 계곡>

"엄마!! 20분 지났는데 튜브 안줘요!!"

"엄마!! 튜브 안 뺏길라고 저기로 도망갔어요!!"

"야!! 내 차례야. 아니야 아직 안됐어. 됐다구. 안됐다구!!!!"

"으아아악!!!! 니네 그럴꺼면 놀지마!! 다 집에 가자!! 일어나!!!"

"아, 아니예요~~아니예요~~"

"잘 놀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금방 또 위의 사항들 무한 반복....)


튜브쟁탈전을 하기 위해 그토록 계곡에 가자 졸랐나 싶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저렇게 니꺼내꺼 실갱이 하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놀고 말텐데 저걸 저렇게까지 서로 뺏고 싸우고 고자질하고 무한반복할 일일까? 

나 어렸을땐 어땠더라... 싸우는게 싫어서 그냥 주고 말았던 것 같은데......

나역시 2남2녀의 둘째 딸, 다둥이집에 셋째로 많은 세월을 보낸  날들 중 여름 물놀이 추억이라 말할것이 있나  떠올리며 평온하게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다가 정말 불에 데인듯 깜짝 놀랐다!!

아, 집안 분위기 눈치보느라 사회성이 예민한 또 다른 내가 양보했을뿐 정말 양보하고 싶어서 그랬던 적은 단 한번도 없구나. 마치 지금 우리집 3호처럼... 그렇게 억지양보를 한 것들은 편한 관계를 만나자마자, 즉 남편을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터져나와 나를 '미친 배움질을 하는 여자'로 만들었던 거구나..


그럼 지금 해보지 못한 많은 자극추구들은 언젠가는 다 하고 산다는데, 이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가 편해서 다 표현하고 사는가부지?. 내가 이렇게 엄하게 한다고 하는데도 그것보다 자신들의 하고 싶은게 더 많구나. 그래서 유독 더 싸움도 많고, 협상도 안 되고, 어느 누구하나 양보를 안하니 결말도 없는 우리집이구나.. 

하도 엄마를 찾아대길래 한명이 열번씩만 불러도 엄마에겐 40번.. 하루에 각자 몇 번 이상 엄마호출하기 없음! 이라는 규칙을 내세우려다 이것까진 좀 아닌것 같아 두었다. 나도 늘 질리게 듣지만 싫지 않은, 아니 나의 삶의 원천인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게 가장 행복이니까.

그래도 너무 심하게 나를 찾아대다 못해 경쟁적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사남매에게 고개를 절래절래 하면서

"햐... 그럼 이걸 어떻게 할까? 엄마가 몸을 4등분으로 나눌까?" 했더니 남편이 이랬다. 

"그건 안돼지. 5등분 해야지..."



<자극추구 100%?>

작년 여름, 가을 우리 가족에게는 참 많이 힘든 해였다. 가장 힘듦의 정점을 한번씩 찍는 바이오 리듬이라면 그게 작년이었길 이런게 또 온다면 어찌 살까 싶을 만큼 대책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사는 왔는데, 코로나가 텨졌고 아이들 넷 모두 전학한 곳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켜야 하는 시간을 모두 엄마는 자기계발에 아빠는 본인생업과 이런 아내 백업에 에너지를 다 썼다. 그러다 결국 터질게 터졌다. 네 아이중 가장 표현의 선이 굵은 둘째 아이가 그 스타트를 끊었나보다. 


어느 날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창문이 깨졌단다. 둘째가 전화기를 집어던져서 깨진거였고 시작은 소소한 싸움이었는데 감정조절이 힘든 아이가 가진 폭력성이 드디어 사건사고로 이어진 거다. 그 동안 뭔가 찝찝하긴 한데 굳이 들추어보지 않았던 찬장처럼 그 안을 열어보니 와르르 쟁여박혀 있던 모든 부패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무너졌다. 정신차리고 수습해도 모자랄판에 '나도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럴꺼면 낳지를 말지 낳아놓고, 그것도 넷이나..

그제야 자신을 찾겠다고 아이를 키워야 책임들을 모두 회피한 죄값인가?


상담센터를 찾고, 아이의 놀이치료가 시작됐다. 매주 성실히 임하려 노력했고, 아이가 이 곳을 좋은 곳으로 인식하게 해주고 싶어 때마다 '지하철 샌드위치'를 사줘가면서 엄마와의 오롯한 시간을 허락했다.

인성종합검사 결과를 듣는날, 나는 정말 기가 막혔다. 아이의 행동에 이유에는 기질과 행동이 있는데 기질은 타고나는 것, 행동은 환경적인 요소다. 다시 이 기질은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인내력등으로 구분되는데 여기에서 이 아이의 자극추구 분야 검사 결과가 100%가 나왔다. 상담결과를 알려주시던 선생님도 이런 100%를 나타내는 숫자는 검사지결과에서 왠만하면 볼 수 없는 숫자인데 센터개장이래 처음이라고 놀랍다 하셨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부부는 통쾌했다. 그 모든 지난 날들의 의문점들이 풀리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치료를 계속 제안하는 병원이 순수히 아이를 위함은 아니었던 것으로 결론짓고 놀이치료는 그만두었지만 가족에서의 중요한 줄기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되어준 것에 감사하다. 종합심리검사 비용만 1인당 50만원 큰아이 둘째아이 둘 검사비에만 없는 돈에 100만원을 썼지만 그게 시작만 하는데 드는 비용이였기에 우리부부는 여기까지라 선언했다. 나머지는 우리가 몸빵 마음빵으로 해결하자며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드러난것은 문제가 아닐수도 있다. 나처럼 눈치보느라 드러내지 못한 마음들이 온통 남아있을 우리집. 상담쌤들의 치료대상으로 분류마저 되지 못한 나머지 3명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와보니 역시 아직 엄마아빠가 필요한 셋째와 넷째가 그리고 큰딸이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속에 우리만의 룰을 빨리 찾아와야 했다. 드러난 문제는 문제인거고 숨겨져 있던 문제도 문제인거니까. 결국, 우리가족의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해보자고, 망쳐도 우리손으로 망치고 키워도 우리손으로 커보자고 결론 지었다.

아이는 부모가 완전하고 완벽하게 책임질 수 밖에 없다는 이 지겹고도 피할수 없는 진리와 10년만에 다시 마주선 것이다. 


우리는 다 같이 거실에 배를 깔고 일명 '금쪽이'라고 불리는 오은영박사님의 티비프로그램을 땡기는대로, 유료시청이 아닌 범위안에서 정주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스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가족의 제2의 회복기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1년 쯤이 지나 돌아보니 꽤 많은 것들이 안정을 찾았다. 여전히 소소한 문제들은 있다. 하지만 사남매 엄마이면서 내 업을 놓지 못할 나는 문제자체를 사랑해야만 한다. 어짜피 나는 그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책상머리에 붙어있는 문구에 기대 하루를 완전히 행복하게 살아보려 노력할 뿐이다.


인생을 산다는것 자체가 불안함의 연속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왜 태어났는지도 일단 모르는 채로 우린 세상에 던져졌으까. 그런데 왜 태어났는지 태어날때는 분명이 알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별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유는 "내가 원해서"라고 한다. 이 또한 모른다. 죽어보면 알 수 있을까? 이 '모른다'는 영역이 지구별에서 살고 있는 수 많은 이유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차원적인 가치인듯 하다. 모르는 것을 향한 인류의 엔트로피는 살아있는 동안 끝이 없을테니까.



<드디어 이제야 엄마되다>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출간계약'을 맺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3곳이나. 작년에 아이가 아프고 남편이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나와의 약속을 했다. "출간계약 도장. 그리고 내가 리드하지만 내 글을 쓸 수 있는 모임 1곳 딱 거기까지만 가자."

그 자리에 다행히 능력에 비해 좋은 운이 작용해서 금방 도달했다. 나의 애달픈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또 느껴진다. 쉽게 주지는 않지만 간절히 원하면 너무 늦지 않게 항상 결과물을 주는 나만의 소원요정, 수호신이 내겐 있다. 내 손으로 내 글자로 만들어낸 영들 27년간 써온 다이어리들이다. 

결혼생활 내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 모든 것을 쏟는 이유의 시작, 아이와 우리부부의 동반성장, 그 한치의 앞섬도 처짐도 없는 그 지점을 찾고, 찾았다면 평균율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거의 매일 그곳에 다짐했다. 그랬더니 이제야 아이들과 내가 한눈에 보인다. 나의 좁은 시선앞엔 나밖에 없거나, 아이밖에 없거나, 글밖에 없었는데. 내 인생은 그렇게 살아질 수가 없는 거였다. 모두를 한 눈에 한꺼번에 봐야했고, 타고난 좁은 마음과 시야를 가졌으니 이를 억지로라도 펼쳐내야 했다. 여기엔 태생이 넓고 결이 고은 성향을 가진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 딱 내 가족의 크기만큼, 나의 글벗들과의 동행에 작은 손을 내밀만큼은 시야폭은 겨우 만들어 낸 듯 하다.



이제야 내가 진짜 있어야할 곳, 해주어야 할 역할이 잡힌다.

11년 만에 드디어 진짜 엄마가 된것 같다. 운동을 빼먹고 집반찬을 만들고 있던 나를 보고 남편이 어제 해준 말이다. 이 말에 또 다시 버럭은 했고, 어떻게 운동시간을 잊어버리냐!! 며 내 머리를 콩 쥐어 박았지만, 늘 그렇듯이 그의 말은 맞는 말이다. 

강박을 빼면 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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