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브런치 작가가 되다.
그래, 아동바동 열심히도 사는구나. 도대체 너의 소원이 뭐냐?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의 소원만 들어주겠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오늘 글벗들의 '셀프큐레이팅' 시간에 한 글벗님의 정성으로 받은 글 주제 '원씽'을 내 식으로 질문해봤다.
좋아! 500억짜리 글벗빌딩을 지어 달라해야겠다. 아니 네 아이 모두 아이비리그를 보내달라고 할까? 자식으로 내 소원을 쓰긴 아깝나? 그래 아까워. 100쇄 찍은 베스트셀러작가는 어때? 그 어떤 것도 욕심 가득한 이내 마음을 잠재우기는 부족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싱겁게 결론 내렸다.
'지금 이 남편과 부부작가로 좋은 영향력을 펼치며 살고 죽을때까지 함께 쓰고 싶습니다'.
에이.... 내가 써놓고도 싱겁다. 그리고 정말? 이렇게 되물으면 '아유.. 당연히 농담이죠. 제 진짜 꿈은요... 월세 얼마가 나오는 빌딩에서 블라블라~~" 바로 가슴치며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내 소원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만족할 만한 답은 바로 저게 진실이다.
너의 소명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고 꽤나 만족하는 중년의 삶, 네 아이의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 아닌것은 아닌데 뭔가 빠져있는 기분을 씻을수 없었고 그게 뭔데?라는 되물음에는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아 소위 말하는 '슬럼프'의 구간에 접어들었던 나. 그저 아이들 방학에 코시국 일상에 '지친 것'으로만은 설명이 석연치 않던 시체놀이.
역시, 새벽에 글쓰는 모임의 글벗들이 나를 시체로부터 건져주고 있다. 나 혼자 쓰기는 지치고 외로워 함께 쓰면서 '글로 내 커피 정도는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체면을 세워주는, 최소한의 글밥벌이 장치이자 나의 사람들이 모인 곳 '글쓰새'는 사실 내 편협한 사회생활의 '원띵'이다. 사실 뭣도 모르던 시절 모임은 하기 싫었고, 두려웠고 글만 계속 쓰고 싶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가 '돈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물으면 '글만 쓰고 살고 싶다'라고 대답하니까.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다.
어느날 유치원에 다녀온 막내가 엉엉 운다. '나도 춤추는 예쁜언니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왜 아무데도 안 보내주냐..'며 친구들은 차타고 영어를 배우러 가는데, 주영이가 입은 발레복 입어보고도 싶다고 코끝을 빨개지며 내 바지자락을 붙들고 엉엉울던 날,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야지 싶은 절박함에 모임을 더블로 운영해 본 일이 있다. 그런데, 이 일이 '육체노동과 시간의 합'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사람과의 소통'과 '진짜 마음'이 들어가야 하는 일인 이상 나의 성미와 능력치엔 간단한 모임을 하나 더 운영하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아껴서 장을 보고 그 하기 싫은 집밥에 또 마음을 두어 억지로라도 외식을 줄이고, '돈 잘버는 지사장'님에게 알랑방구 끼는 방법밖에. 그러다가 '편의점 알바라도 할까?' 라는 마음이 계속 마음에 파고 들지만 그 또한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부릴 공상에 지나지 않는거겠지.
이 모임에 새벽글모임 탄생의 첫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글벗 1호'라는 이름으로 남편이 포함되어있다. 말그대로 1년전 모임을 만들었을때 처음으로 모임에 함께해준 1호 글벗이다. 마침내 온전한 부부 글벗이 된 '남편계 모범답안' 그, 안팍으로 나의 최고 자랑거리다.
세상엔 수 많은 글쓰는 사람들이 있고, 정말 많은 출간작가가 있지만 책과 안친하던 남편을 책을 보게 하고 결국 글쓰기로 유혹해 결국 글 중독을 만든 사람으론 내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그런 그가 이젠 어엿하게 이름앞에 '작가님'을 붙일 수 있는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으니. 남편과 혹은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열망에 화답하는 우리부부의 새로운이름이 되어줄 이름 '부부작가'.
언젠가 '꼭 부부작가가 되고 싶다' 그게 나의 최종꿈인 '부모학교'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자 인생 가치임을 직감했다. 그 후 남편이 글을 쓰는 환경을 최적화하기 위해 보이는 노력과 보이지 않는 갖은 애를 썼다. 11년 동안 육아나 부부생활에서는 한치의 물러섬이나 사과 한번 없이 까칠하게 굴었으면서 '출산의 경험'을 주제로 글벗들과 글을 쓰다가 이 분노가 일파만파 퍼진후 그가 '절필선언'을 했을 때 나는 그에게 바로 무릎을 꿇었다. 어떤 연유에서건 그에게 글을 갖다 붙이고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고, 이 쉽지 않은 일을 '첫 책 출간 성공' 으로 끝내고 싶었는지 '출간준비 잘 되가냐?' 며 연일 그에게 목차와 기획서를 종용하기도 했다.
글쓰기의 끝은 없다지만, 누군가의 채찍과 당근 없이 자동으로 흘러가는 셀프 컨베이어 밸트를 태우는 것 그게 그의 첫 책이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출간이라는 것은 출산처럼 인력으로마나 되지 않는 '시절인연'이 필요한 일임을 그토록 처참하게 배우고도 그새 잊다니.! 나의 이 건망증은 출산을 거듭할 수록 제곱근이 붙었나..
'호락호락' 모임에서 좋은 에디터님와의 연결도 브런치, 이를 통해 좋은 부모들과의 연대할 연결이 일어나자, 또 나와 출산거리두기의 실패로 둘째를 열혈키우는 애정동생의 브런치 합격소식으로 브런치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더 증폭됐다. 지난 주 어느날, 글벗1호님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지금 브런치 신청하면 바로 될 것 같은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고개짓을 세심하게 살펴보니 끄덕이 아니라 가로젖는것 같다. "심기를 건들지 말자. 아직 때가 아닌가" 하고 물러섰는데, 돌연 어제 저녁 턱 하고 어떤 핸드폰 화면을 내 눈앞에 보여주는 거다. 나는 2번인가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쉽사리 받아 들수 없었던 바로바로 '브런치 팀의 합격축하 메일'.
너무 기뻤다. 최근 내 책 출간계약 소식에 견줄만한 설렘, 기쁨은 없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기뻤다. 나에게는 '그가 출간 계약을 했다'와 같은 사인으로 보인다. 사실은 본인 깊고 깊은 곳에 글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불혹이 넘도록 제대로 한번도 꺼내지 못한 능력이 이제는 꺼내졌고 깊은 습관이 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글쓰기를 향한 애정직진일테다. 이거다 싶으면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보이는 그의 애정전선이 글에 발현될 그날, 내가 아닌 대상이지만 유일하게 질투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목표물 '글쓰기' 그의 인생 제2의 시작점을 미리 본 듯 기쁨이 솟구친다.
이제는 내가 맛본 글쓰기를 통한 후련함. 인정욕구. 가슴뻐근함, 연대의식 모두 그의 것이 되겠지.
좌절, 머리쥐어뜯기, 자괴감, 나같은게 무슨, 쓰다가말고 절필하고 싶은 마음. 이런 사이드이펙트도 물론 딸려갈테지만 나는 힘들게 울면서 여기에 왔지만, 웃으며 그의 길을 인도해줄수 있으니 지난 나의 눈물이 이제 진짜의 위로를 받는듯 싶다
자본 하나 없이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성공미담은 참 많다. 글쓰는 일은 모두 가진 것이 없이 공평하게 몸뚱아리와 손가락으로 시작한다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책이 사방을 둘러싼 환경과 내가 자란 환경은 자본금이 다른 시작이다. 책과 가까운 부모환경속에 자란 아이와 책을 보고 있으면 집안일을 하라는 잔소리가 들려오고, 눈치가 보이고 볼륨최대치인 TV소리와 언제 부모가 크게 싸울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집안 분위기 속에서 책을 결코포기하지 않고 글쓰기로 이어가는 것은 '무자본 창업'처럼 고난이 예고된 '집필노동자'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사남매의 셋째로 다둥이 집에서 살았지만 모두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사업과 장사 '돈 되는 일'에 밝아온 집안에서 유일하게 '글 줄'을 놓지 않고 '돈 안되는 바보같은 일'을 포기 하지 않고 사는 '이상 유전자'그게 나니까.
그래서인지 다이어리포함 26년을 하루도 안 빼놓고 쓰는 일을 계속 한 사람치고는 글로 이렇다할 성과도 없고, 아직도 내 글의 어디를 뜯어고쳐야 할지도 감을 못잡아 출판사와의 통화에서 쩔쩔매는 내가 되었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나를 칭찬하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 같은 요즘이다.
쓰는 것이 사치였던 시절, 꾸역꾸역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알바가는 만원버스안에서도 쓰면서 흐릿하게나마 꿈꿔왔던 나의 미래 '완벽한 동행자와 함께 쓰기' 라는 꿈이 이루어진 지금의 삶에 잠깐의 축포정도는 허락하고 싶다.
그의 '브런치 작가 등단' 소식은 아이러니하게 '이제 정말 편한게 글써도 되겠다' 혹은 '나는 좀 쉬어가도 되겠다'는 이기심과 이어진다. 여태 내 스스로에게 채찍을 거둔적이 없었고, 이 채찍이 나의 장점이 되어 안쓰던 사람을 쓰게 하는 마법도 여러차례 일으켰지만, 내 스스로에게 제대로 당근을 먹인적이 있나? 진짜 쉼을 허락한 적이 있나? 물으면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언제 쉬어가야할지 몰라, 쉬는 대신 지독한 슬럼프를 겪은 것도 같다.
이제는 글쓰는 남편덕에 쉬엄쉬엄 간다. 이것은 마치 '나의 분신이 쓰고 있으니까' 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유치한 생각이지만 뭔가 글맥이 끊어지면 생명줄이 끊어지는 것 같이 생각하는 나에게 42년만에 처음 허락된 휴식일지도 모른다. 나를 대신할 사람, 내 정신과 육신을 대신할 사람은 네 명의 자식도 두명의 엄마도 피붙이 형제자매도 아니다. 이 생에 유일무이한 사람, 영혼의 단짝 바로 '남편 글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