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은 부부 사이에서도 존중받는다.
10년간의 부부생활, 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부부는 참 싸우지 않고 사는 편에 속한다.
어떻게 안 싸우고 아직도 연인처럼 부부관계를 유지하세요?
정말, 우리는 왜 다른 부부에 비해 덜 싸우게 됐을까?
내가 찾은 가장 큰 이유는 결혼 출발과 함께 시작된 불평등 조약이다.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했어도 인간의 유전적 순환에 따라 그 감정을 계속 먹고사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아니면, 나의 부모를 통해 반사적으로 강한 가치관이 만들어 진것일까? 모른다. 무엇에 해당되든지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없는 부부간의 기싸움 소위 말하는 밀땅은 필요하다 주의였고 살다 보면 그 밀땅은 때론 서류로 증빙돼야 할 중요한 순간이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결혼 10조항'이다.
제주의 신혼여행 그 달달한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나는 남편에게 조용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는 내용의 달달한 로맨스는 없었다. '부부 조항 10개명'이라 이름 붙인 10개의 '내가 바라는 결혼생활'이라는 제목과 해당 리스트들이 손글씨로 들어가 앉아 있었을 뿐. 그 종이를 받아 든 남자, 내용을 제대로 훑어보기도 전에 이 여자를 완전히 법적으로 차지했다는 성취감과 와인 두병에 취해 싸인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렇게 '불평등 조약'이 시작됐다.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취한 상태의 그를 노린 것은 진짜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와서 어쩔 수는 없고.
나는 그에게도 '나에게 원하는 결혼생활의 모습'을 써서 나에게 사인을 받으라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
그때마다 "오빤, 됐어. 당신이 내 곁에만 있어주면 나는 그걸로 다 이미 다 가진 거지" 닭살 멘트를 마구 날렸고 나는 "뭐, 당신이 굳이 괜찮다면.." 괄호 치고 '나중에 크게 후회할 텐데'.. 하며 그 상황을 넘겼다.
그 10조 항은 사실, 조목조목 결혼생활 속에 지켜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 부부 사이에 칼자루의 손잡이 부분을 나에게 확실하게 쥐어준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주었다. 그동안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이런 현실 표현이 금기시된 깨소금 볶아야 할 신혼부부의 화두를 밖으로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고나 할까..
결정적으로 이 10조 항이 위력을 발휘한 일이 생겼다. 바로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올 때, 둘 사이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전례 없던 경험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웬만한 것은 다 나의 의견대로 맞춰주던 그가 이번에는 어깃장을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할 유학생 신분으로 직장 구하기라는성취를 지금 막 이뤄냈고, 이제 그 안에서 내 삶을 이제 좀 펼쳐볼까 싶었는데. 난데없이 산후우울증 플러스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를 들이밀면서 "한국 갈래? 너 혼자 여기 살래? 를 들이미는 와이프가 황당했겠지..
하지만, 나 역시 다른 답안은 없었다. 나에게 그때 당시의 그곳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느껴졌고, 그 느낌은 엄살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위협하는 본능적인 감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계약'은 힘을 발휘했다. " 여기 당신 사인한 것 봐봐" 이렇게 신혼여행 이후로 죽 잊고 지냈을 그 종이를 꺼내 코 밑에 들이밀었다.
1-1조 항 : 나는 내가 살고 싶은 곳에 살 권리를 가진다.
향후 일어날 일들을 예측했던 걸까? 나는 1 다시 1항에 이런 조항을 명시해두었던 것이다.
사실 그 싸인과 계약은 공증 업체에서 공증을 받은 것도 아니라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그러니 사실 배 째라 하면 나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저 말로 싸우고 마음으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부부 사이에 내가 직접 사인한 계약서 1장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계약서는 우리부부에게 내용 이면의 의미를 가진다. 그 종이가 그때로 우리를 되돌리는 신호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계약서가 마법 양탄자로 변해 우리를 태우고 지금 마주 바라보고 있는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신혼여행의 그 달달했던 제주 호텔 와인바로 데려간다. 바로 사랑의 공기가 듬뿍 담겨서 한치 않아도 안 보이던 인생의 가장 뭉게뭉게 한 순간으로 말이다. 내가 이 여자와 처음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때의 그 '초심'을 상기시키는, 새 신랑의 마인드를 소환시켜주는 역할을 이 계약서가 하고 있었다.
그때 남자가 자신의 손으로 했던 약속과 다짐이 떠오르니, 더는 뻗댈 수 없다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마음이 유들해진지는 그다. "그래.. 인생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처음부터 맨땅부터, 시작했다. 참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남편으로부터 이 사람의 우선순위 중에 내가 1등 자리에 있다는 평생 가져갈 신뢰를 찾았고 그럴수록 남편으로 멋지게 성장시키는 현명한 아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그렇게 나의 진짜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계약서나 현명한 부부관계, 인생에 있어서 나의 중심을 찾아내는 것 모두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요리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콩나물을 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신부수업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현명한 아내인가? 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는 시간을 갖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씨앗이 부부관계를 만들고 이 부부관계가 그들로부터 탄생될 몇 명의 인생을 책임지는 중심축이 될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넉넉한 그에 비해 한없이 좁고 팍팍하고 자기 생각에 대한 똥고집과 융통성 제로인 결혼생활을 해 온 아내다.
이 설명 자체로만 보면 내가 좋을 리가 없는 와이프지만 이 한없이 좁고 팍팍한 생각 속에 현명함을 꽉꽉 담아 넣으려는 노력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리고 이 현명함을 가장 크게 도와주는 수단은 읽기와 쓰기 뿐이었다. 내가 혼자 못할 것 같아 그의 바지 그랭이를 붙잡고, 혹은 가열차게 싸워가면서 육아는 부부가 공동으로 똑 같이 50대 50 하는 거라고.. 당신이 상황이 그리해서 지금은 혼자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은 인연 흐름에 따라 나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그러니 우리 육아도 살림도 그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반반치킨 육아법이라고. 그렇게 해서 만든 3일 3일 집안 살림과 육아를 똑같이 나누어 맡는 '부부 삼법"을 만들어 냈다.
결국 내 탓으로 돌아가게 하는 독서
억울함이 몰아친다. 일이라는 범주안에 어디까지 포함되는 것인지 그의 입을 통한 것이 아니면 가늠할 수 없기에 그저 집에서 남겨진 자의 기분으로 아이넷과 아빠의 퇴근만을 기다리는 내 존재가. 한심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고, 나 자신이 빛나고 싶어 안달 나던 그 노력의 합이 결국 허무하게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아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런 날,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TV를 틀어놓고 영혼 없이 시체놀이를 하기도 하고, 가끔 꽂힌 운동이 있으면 미친 듯이 그 운동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 자기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오히려 나를 더 뾰족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떤 날 책을 붙잡고 한 권을 싹 읽고 나니, 책을 펴기 전에 나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 '1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는 어떤 슬픔도 나는 알지 못한다. -몽테스키외-' 그렇게 나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나를 지혜의 빛으로 채우는 것은 독서, 독서, 독서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책을 읽어도 내용은 다르지만 그 자체는 문제가 없고, 결국 내가 내 마음을 바꾸면 된다는 결론과 만나게 되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했다.
지성은 부부 사이에서도 존중받는다.
결혼생활 10년, 이제야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글도 쓰고 심지어는 운동까지 즐기는 그가 됐다.
상대의 변화를 의도하지 않더라고 나에게 일단 제일 좋은 것이 독서와 글쓰기다. 이 두가지를 친구삼으면 모두 집안의 문제들이 어느덧 해결되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살수록 대화거리가 풍성한 커플로 늙어가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노후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