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부부는 돈만 벌면 된다.

돈걱정이 제일 좋은 걱정이라고 믿는 부부

by 스텔라

<30 금. 계곡에 가다>

올 여름 아직 아이들의 튜브가 개봉박두 전이다. 언젠가 터질게 터질게다. 꼭 가야한다면 한번은 가야한다면 한가할 때 혹은 스케줄이 딱히 없어 지루할 때, 지나치게 더울 때를 기회로 가고 싶었다. 그럼 가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나 혼자 그런곳에 가는 방법을 아예 잃어버렸다.

남편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글만 쓰는 바보, 애만 낳은 천치다.

슬쩍 남편 눈치를 본다. "아, 야구부 방학도 얼마 안 남았고, 뭔가 애들이 물에 몸을 못 담궈서 싫은가 본데?" 어이없다는 듯 큰 목소리로 그가 응대한다. "우리 여수 가서 해수욕 하고 실컷 놀다온게 지난주예요. 여보 정신차려"

"아, 맞다. 여수.. (뜨끔했지만 애써 담담한 듯) 그건 그냥 옷입고 논거고, 물안경도 없었고, 그리고 놀이엔 소급적용이 없어요. 오늘 놀 일을 퉁치지 않아야 진정한 놀짱...아..아..닌가?" 그 큰 목소리 뒤에 숨겨진 그의 내밀한 속을 재빠르게 파악해보니 역시, 이런 나의 제안이 그도 싫지는 않는거다. 어느덧 그는 폭풍검색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그의 굽은 등을 보고 짐작했다. "오늘 중 우린 계곡물에 발을 담그겠구나"

그렇게 가게 된 안양예술공원 계곡, 생각보다 물이 맑지는 않았지만 계곡놀이 반나절쯤 즐기기엔 참 괜찮은 장소라고 그에게 물개박수를 쳤다. 넋놓고 놀기만 하던 아이들에게 급조해서 이렇게 우리의 놀이터를 데려다 주신 아부지 찬양과 감사인사를 몇번 이고 종용했다.


집에서 30분도 안되는 거리라 물이 맑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조금 실망한 눈치의 그다. 우리는 흑탕물이라도 아무 상관없는데. 그나마 그의 레이다망에 걸린 물줄기를 타고 맨 꼭대기에 있는 식당에 여정을 풀었다. 식당에서 자리 안내를 받으러 가는 길 허전해서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아이는 단 한녀석도 없다. 모두 진작에 입수완료. 우리 부부는 저만치 발 밑에 계곡 어디쯤에 몸을 풀고 깍깍 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눈으로 보며 파전에 막걸리, 사이다. 그리고 오리백숙을 먹었다. "우리 어디까지 했더라?" 언제 끊긴 이야기인지는 생각도 안나지만 여튼 우리는 용케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해도해도 계속 쏟아져 나오는 글얘기, 인생얘기 사이사이에 한번씩 오는 아이들에 입에 고기와 파전과 콩나물무침등을 요구대로 혹은 엄마의 필요대로 넣어가면서. 그렇게 우리는 계곡물에 아이들 풀어놓고 오리백숙이나 뜯는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싶었다.


넷이서 튜브 두개로 정말 이게 그렇게까지 끝까지 쟁취하고 싸워야 할 일인가 싶어 중재 겸 물속에 발을 담갔다. 일단은 계곡물에 발을 담궜다는 사실이 좋다. 신기하게도 바위로 쌓여진 1.5m 가량의 단차를 두고 윗물은 덜깨끗한 대신 따뜻했고 아랫물은 차가운 대신 맑았다. 위 아래를 집들이 하듯 한바퀴 다 구경하고 놀아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차례로 응대하다가 슬며시 아이들의 시선을 빠져나와 저 멀리 돌바위 위에 앉아본다. 전체가 가장 잘 보이는곳, 언젠가부터 새로운 곳을 가면 아이들의 안착이 확인 된 후 그 풍광의 전체그림이 가장 잘 보이는 스팟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잠시라도 머무른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고 나서 생긴 버릇이다. 내가 여기를 언제 다시 오게 될까? 다시 오더라도 오늘의 이 상황과 마음은 아닐테지. 생에 살면서 단 한번만 볼 수 있는 지금의 모습. 일상도 마찬가지인데 새로운 곳에 오고서야 그 평범한 인생진리가 깨달아진다. 그래서 새로운 곳에 와서 하는 새로운 경험이 좋은 글감이 되고 삶을 새로고침으로 보게 해주는가 보다. 그나저나 아이들에겐 오늘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추억될까?








<31 토, 올림픽에 열광하고, 시장에 가다>

나는 올림픽 보는게 그렇게 좋다. 다년간의 승부가 펼쳐지는 오늘을 위해 바쳐온 몇년간의 선수들의 땀의 현장을 이렇게 안방에서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여섯명이 게으른 똬리를 틀고 서로를 배게로 누워서 보는게 송구스러울 만큼. 그런데 지는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은 미안한 마음보다 내겐 더 어려운 일이다.

지고 있거나 질 것 같으면 연신 채널을 튼다. 채널권을 가진 위대한 권위자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는 사남매는 "엄마, 쫌..." "아,, 쫌 한군데만 봐요" 이 정도의 소심한 반항을 할 뿐.

과감히 티비를 끄고 삼남매에게 토요게임을 허락한 후 막내와 함께 오리모찌 사냥에 나선다. 사냥개보다 더 강인한 정신력으로 목표물에 집착하는 막내에게서 오리모찌 얘기가 나온것은 3주도 더 된 듯하다. 듣다듣다 못한 아빠가 '그래, 무슨일이 있어도 아빠가 꼭 너의 우리모찌를 지켜줄게. (근데 여보 우리무찌가 뭐죠? ..) 아빠의 멋진 약속을 지키러 나가는거다. 뭘 사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럴땐 내가 그의 구원투수가 되어준다. 1차시 학교앞 문방구는 역시 굳건히 문이 닫혀있었다. 실패. 2차시 글벗살롱 옆 팬시뱅크에 희망을 걸고 목표지점을 향해 골목길을 탁 접어든다. 문을 안열었을 가능성도 있다. 휴가기도 하고 , 덮기도 하고.. 두근두근 .. 그녀못지 않게 우리부부도 긴장해있다. 휴.. 천만다행히 문을 열었고 그녀가 원하는 오리모찌도 있다. 그것도 4개나 한개들이 세트로. 세상을 다 가진듯이 행복해서 팔짝팔짝 뛰는 아이를 보니 부모인 우리 마음도 이렇게 기쁘다. 그 기쁨의 여세를 몰아 내가 동네에서 가장 사랑하는 까페에 앉아 티라미수 한 조각과 커피를 들이킨다. 그녀의 입에는 지나던 길 작업실에 들러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잠깐이라도 환기를 시켜주고 꺼내 들려 준 사과주스가 꼽혀있다. 한층 땀도 식혔겠다. 우리는 각자의 등에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남성시장'에 갔다.

물건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사면 양쪽 배낭이 점점 무게가 실려온다. 시장에서 장을 보면 왠지 이기는 장사를 하는 것 같다. 마트의 시원한 바람대신 편안한 카트대신 시장의 열기와 등에 땀이 축축히 배는 가방이 주는 삶의 활기가 내 안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합리적인 소비로 새끼들 먹여살릴 식자재와 과일먹깨비들의 식량을 조달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밀려든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마트대신 시장에 자주 간다.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한의 방어를 하기 위한 사남매 부모의 몸부림. '내 가방 아직 더 넣을수 있어' '아니야 내가 들게 이건' 이렇게 아름답게 실갱이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타고 야심차게 집에 돌아와.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먹거리를 풀어낸다. 떡과 과일과 찹살도너츠를 식탁에 한상 풀어놓고 나머지 반찬거리 식자재를 정리하기 위해 냉장고 앞에 선다. 얼마 안 걸린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보니 그렇게 배낭을 매고 온 우리의 어깨가 무색하도록 빈접시만 남기고 다 해치운 녀석들. 가끔 한해도 못 넘기는 신발사이즈를 업그레이드 해주면서 크는 속도도 뜨헛. 하곤 하는데. 얘네가 이렇게 먹어치우는 장면과 만나면 사실 두려움이 엄습한다.

글로만 먹고살기는 녹녹치 않고, 만약 되더라도 아주 먼 훗날일텐데. 그때는 얘네가 이 음식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일듯 하니, 편의점 알바를 해도 요즘은 월300만원은 번다는데, 알바를 기웃거려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8월1. 일. 기획일을 의뢰받고, 비오는저녁 드라이브>

달이 바뀌어도 내 일상은 여전히 이런 고민으로 시작한다. '뭐 먹지?' 슬슬 힘에 부쳐온다. 그들도 좁은 공간에서 계속 부대낌이 난다. 잘 노는듯 했다가 이내 싸우기를 반복. 그가 눈짓을 한다. 알았다는 무언의 눈짓으로 화답하고 옷정리로 솎아놓은 옷가방을 들고 '옷체통 다녀올게' 한 후 그길로 동네 스벅으로 향했다. 하늘은 맑은데 비가 내리고 있다. 크게 갈등한다. 이 비를 맞고 그냥가? 올때가 불안하다. 차를 가져가? 주차가 불안하다. 집에 올라가서 우산을 가져와? 막내나 그 누군가의 '나도 같이가~~'가 터져나오고 이내 같이가~~ 매들리가 시작될까봐 제일 불안하다.

우리가 스벅에 온 이유는 '담판'을 위해서다. 남편은 내가 운영하는 새벽글쓰기 모임에 1기부터 지금까지 10달넘도록 열혈맴버다. 글도 꽤 괜찮고(가끔은 나보다 낫고.) 책쓰기에 대한 생각도 오래전부터 한 터라 기획과 목차를 내려고 고심 중인것은 알았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품고 있는게 꺼내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건가보다. 내가 알지 저 고통, 저 답답함 저 상황. 누구보다 잘 안다. 작년 제작년 그리고 그 전날의 내 모습들이 그를 통해 투영된다. 나에게 정식의뢰를 하겠으니 기획과 목차를 뽑아달랜다. 망설였다. 저 과정을 거쳐 한꺼번에 3개의 출간계약을 달성했다지만 아직 하나의 결과물도 나오지 않은 상태고 '내가 돕고는 싶지만 도와줄수 있는 문제인가?' 에 봉착했다. 나도 내 책을 쓰고 싶어 환장한 나머지 돈을 뿌려가며 기획과 목차를 받아들었던 아픈 기억들. 더 아픈건 그 받아들인 목차대로는 하나도 쓸 수 없어 현장에서 피땀흘려 벌어온 남편 돈을 허무하게 날린것만 같은 일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입금부터 하려는 그를 막아서고 일단 그가 쓸 수 있는 목차를 한바닥 끄적여봤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만나자했다. 마침 여자 배구팀이 일본에게 극적으로 이긴때라 우리는 전의에 불타올라 아이들이 방해를 하던 말건 출간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내 입을 보고 한참이나 멍하게 있던 그. "아, 그건 안되겠다." 한다. "그치? 안 되겠지? " "응. 나 혼자 다시 한번 해볼게" 좁고 깊기만 한 나를 품어준 얇지만 넒은 그의 성향. 그에게 꼭 맞는 기획과 목차를 시작으로 소원노트에 쓰고 있는 그의 그 날짜에 출간계약서에 싸인을 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와이프로서, 글벗으로서, 우리 모임의 유일한 남자회원으로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글 출장에서도 음주로 떡이 된 상태에서도, 랩탑이 없어 핸드폰에다 손가락으로, 기차안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매일 글을 써낸 그의 책임감과 인내, 그리고 가끔 성격파탄에 가까운 나란 여자와 합을 잘 맞춰 이렇게 살아주고 있는 그의 저력을 나는 믿는다.




그렇게 첫 의뢰가와의 협상은 결렬됐고 우리는 부부모드로 돌아와 음쓰를 버리러 나왔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세져있었고 비를 피한답시고 차에 잠깐 올랐다. 그리고 그 길로 그는 시동을 걸고 차를 몰았다. 감지않은 머리, 음식이 막 튀어있는 티셔츠 행색은 서초구 거지 같았지만 마음은 막 집앞에서 남친이 기다리던 차에 올라탄 것처럼 신이 났다. 설렘은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는 설렘보다는 이 편안함과 익숙함을 사랑한다. 그와의 연애도 좋았지만 결혼생활이 더 좋은 이유다. 그렇게 우리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잔잔한 큰 물'이 보이는 까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이 고여있는 물에 퐁퐁 들어가는 풍경을 쳐다보며 커피를 마시면 그 순간이 천국이니까. 예전에 살던 동네, 최근 이웃작가님덕에 알게 된 오남저수지를 향했다.



그는 빙수를 나는 생강레몬티를 시키고 발코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은 어쩜 그런 동화에나 나올법한 파란색을 내고 있는지, 저수지에 비치는 소담한 불빛들이 저수지의 고요한 풍경과 잘 어울린다. 애들이 전화가 온다. 어딜간거냐고. 말하다 보니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차 5분거리면 갈 수 있는 한강이 있지? 그제야 생각이난다. 오늘은 둘이 동시에 그곳을 잠시 벗어나고 싶었나보다. 한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도 예쁘지만 오늘은 이런 적막하고도 은은한 불빛과 낮은 저수지에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리웠던 것도 같다. 그러면서 잔잔한 위로에 젖고 싶었던 걸까 '지금의 우리도 괜찮다. 잘하고 있다."는


어느 정도 마음결에 다듬어지고 나니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절로 난다. 글과 일상을 떼어놓을 수 없는 내가 되어가는것. 나의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과 이 습관 컨베이어밸트를 함께 타고 있다는 것. 아이들이 하루하루 잘 커가고 있는 것 만큼의 뿌듯함이다.

이제 우리부부는 돈만 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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