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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Sep 02. 2021

부모, 데드라인이 생명라인이다.

부모사관학교 기본종합 '데드라인 삼합'을 소개합니다.

호락호락한 육아팀에서 목요일 육아 수다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목요일은 언젠가부터 '기분좋은 긴장감'이 흐르는 날이 됐다. 호락팀은 부모들끼리 편하게 이야기 나누라고 멍석을 깔아주셨지만 매주 늘 차례가 되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떨린다. 그런데 수다를 한바탕 하고 나면 그게 뭐라고 그리고 육아의 힘이 된다. 또 그 당연한 진리가 나의 일상을 노골노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일까. "아... 나만 이모양으로 사는것은 아니구나.." 희안한 위안 속에 안도도 하고 가끔은 열심히 사는 '자랑스러운 부모'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그런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는 날인가보다. 오늘의 주제는 '육아와 체력의 상관관계'인 만큼 최근 출간된 책 '바디프로필도전 1일차입니다.' 의 영향과 에디터와의 특별한 벙개 캐미스트리로 첫번째 '특별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체력이 육아의 코어임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지나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와 나의 정체성 양날의 검을 지키는 일은 힘들다. 이 힘든 여정은 언제 끝날까? 워낙 힘들었던 시간인 '힘듦 of the 힘듦'의 구간을 조금 지나왔다고 망각의 동물이 스윽 고개를 내민다. 나는 그간의 고생을 살짝 잊었나는지 아직은 그 구간에 머물러 있는 후배부모들에게 힘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불이 들어온다. 11시  땡. 호락방 음(mm) 토크가 시작됐다. 살짝 긴장감이 돌면서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아이넷에 파묻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육아핵전쟁 시절, 내가 무수히도 시도 해보았던 많은 삽질중에 나도 좋고 아이도 좋고 가정에도 좋은 것이 바로 나를 위한 운동, 그리고 책읽기와 글쓰는 일이었다.

이 엣지없는 결론을 얻기 위해 지난 10년간 무려 10개의 자격증과 5군데의 이직 그리고 역이민과 8번의 이사라는 미친10년을 보냈는데 그 결과는 다행히 시시하지 않다.

마감이 있는 운동의 결과 바디프로필을 찍었고, 눈 은 편집자의 눈에 띄어 출간제안을 받아 책을 냈고, 그 책으로 나의 필력을 혹은 지난 나의 세월을 인정받았다. 비로소 그렇게 휴화산에 겨우 놓아두었던 육아분노의 마그마가 조금 잠잠해진다. 작가로서 가장 따라살고 싶은 나의롤모델 박완서 선생님도 글쓰는 작가인 동시에 5자녀를 낳은 다둥이 엄마기도 했는데, 아이만 낳아 키우던 시절을 '쓰는 것만이 구원인 시간'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떤 유명한 외국 작가는 아이를 키우며 동시에 글을 쓴는  일을 '나름의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독약을 마시겠다' 고 격하게 표현했다. 


다행히 독약은 마시지 않았고, 어려운 시절에도 나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더니 어엿한 출간작가의 꿈을 이뤘다. 장하다. 그리고 수신의 다음단계인 제가의 영역, 두딸과 두아들은 내 욕심의 80%쯤 만족하게 잘 크고 있으며 배우자는 99.9% 만족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비현실적이다 싶을만큼 그의 큰 품속에서 이제야 싹을 틔운 스텔라 나무는 무럭무럭도 잘도 자라고 있다.






내가 이렇게 고생끝에 작은 낙이 온다는 것을 자랑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정말 힘이 되는 탁상공론같은 말번지지르보다는 '실질적인 꿀팁을 줄 수 있는' 선배언니 누나같은 엄마이고 싶다. 어떤 글에서 봤는데, 부모의 문제는 선배 부모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했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쇼핑을 해도, 머리를 파격적으로 바꿔도, 사회적으로 입신양명해도 내가 엄마로서 힘든 일은 이길을 먼저 가본 엄마만이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나의 그 시절, 결이 맞는 선배작가들의 책이 없었다면 난 아마 위에서 말한 그 독약 마셨을런지도 모른다. 박완서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 구원의 시간 '글쓰는 나' 따위 진즉 때려치웠을런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엣지있게 사는것은 참 어렵다. 특히 누구누구 엄마 말고는 딱히 나를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전업맘의 경우 더 그렇다. 나는 전업맘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싫어 '도메스틱 엔지니어' 혹은 '가정시스템메이커'로 나를 불러달라고 주위에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부르기 애매했던 사람들은 하나둘 내 곁을 떠났나? 조울증에 자격지심 덩어리에 걸핏하면 단전부터 끌어오르는 화를 내는 내 곁에 사람이 붙어있기 힘들었을게다. 어쩔 수 없이 살려고 붙어 있던 최씨 5명에게 못볼꼴도 참 많이 보였다.





육아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하고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막막하다. 그야말로 육아에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감지점'이 없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나답게 살고자 하는 좋은 욕심에 계속 물을 주면 언젠가 아이키우면서 '엣.지.도. 있게' 살 수 있다. 나다움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나와 대화하는 것'이다. 한번도 나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이걸 잘 해야만 나도 잘 크고 아이도 잘 클 수 있다고 하니 꼭 한번 해보는거다. 그냥 슬쩍 해보지 말고 이왕이면 푹 빠져보자. 이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때까지만 어렵지 하다보면 재밌다. 특히 이 행위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들어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이번 생을 사는 목적


이런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펼쳐본다는 것. 그 구간을 뚫어 본 사람은 밖에 머무는 사람과 달리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진다. 그리고 나다움만 찾고 나면 그 다음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간다. 더 좋은 그 어느 곳을 향해서.

나는 이 나와의 대화에 가장 접근하기 좋은 방법이 바로 내 신체를 움직이면서 나눌 수 있는 나와의 대화시간, 바로 운동이고 대화거리를 물어다 줄 수 있는 수단이 '좋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내 손끝으로 글로 표현까지 해 낸 다면 아주 완벽한 삼합이 된다. 더 많이 잘하면 좋겠지만 일단 이것만 가지고도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가정도 바르게 서는 경우를 많이 봤다.




우리 부모노롯이 어느 시절에나 안 그랬겠냐마는 유독 쉽지 않다. 배우지 않은것을 가르쳐줘야 하는 리스트들이 참도 많다. 나와의 대화? 무슨 시나락까먹는 소리니? 배나 안 고프게 살고 학교 좋은데 가면 그게 최고지. 대기업 취직하거나 공무원되면 더할 나위 없고. 그런데 고도성장의 역군인 부모로부터 큰 우리는 AI시대와 산업화시대 어디쯤 잿빛의 그 어느 영역에서 오랜동안 머물러 있어야 한다. 안 그래도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아이를 '4차산업시대에 맞게' 잘 키워야 한단다.

이거야 말로 도깨비 시나락까먹는 소리 같은데 답은 찾아야만 한단다. 내 아이를 위해서. 그런데 바깥에서만 그 답을 찾으려 하면 점점 답은 나와 멀어져간다. 오랜동안 바깥에서 구해 보고 많이도 해매고 울어 보고 나서 하는 육아 선배의 말이니 믿어주시라. 연연연생을 키우며 그 와중에 나를 놓지 않으려 매일 밤 얼마나 많이 울고, 세상에는 얼마나 많이 다쳤을까.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러니 내 말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에 탄력을 받아 내 안에 살고 있는 나를 읽기와 쓰기로 깨우고 그런 나를 데리고 사는 내 몸집을 움직여 이 아이도 깨어나게 하면 좋겠다. 그러면 요 세녀석 읽기,쓰기, 움직이기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를 계속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게 어디인지는 사실 보이지 않아 믿기는 힘들지만, 안 믿으면 어쩌나, 혹시 다른 더 좋은 대안은 가지고 있는지? 내 눈으로 보기에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선배가 보인다면  그들을 멘토삼아 그들이 겪어본 진심을 믿자.

그리고 믿었으면 실천하자. 대신 '마감'이라는 데드라인을 두고. 새벽글쓰기 모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감시스템이고, 바디프로필이 운동습관에 의미가 있는 이유도 '끝과 일단락이 있는' 루틴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에 생이 찬란하다고 하지 않았나.

데드라인은 한글로 죽음의 선이라고 직역되겠지만 사실, 이 시대의 부모들을 살리는

진정한 '생명의 라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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