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끝은 없지만 발전가능성 충분한 영역.
내가 참 애정하는 부모들의 수다 '육아 토크방' 호락호락한 이야기 나누는 목요일 새벽이다.
오늘의 주제는 '훈육'이라는데. 뭐 그리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일상과 많이 동떨어진 주제도 아닌데 어찌보면 제가 하루중에 하는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기도 한데, 막상 쓰려니 손가락이 황망하다.
사실 주제를 받아든 어제부터 계속 생각을 해보는데도 딱히 어떻게 훈육을 정의하며 나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일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훈육은 월령별로 다르다.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와 못알아듣는 아이에게 부모가 대해야 하는 태도는 당연히 다르듯이. 일단 우리집 아이들 기준, '말귀 알아듣는 아이들'을 먼저 풀어본다면 대략 이렇다.
일단 훈육은 '훈육 대상과, 그 대상이 처한 상황 잘 알기'로 시작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잘알려면 '왜 그랬니, 무슨상황이니'를 먼저 물어야 한다.
어제 밤에 동창모임에서 거나하고 즐겁게 취한 아빠가 기분좋게 평소 잘 못먹는 '동네에서 제일 비싼 피자'를 두판이나 쏘셔서, 보고싶었던 가족영화를 틀어놓고 그 앞에 옹기종기모여 맛있게 먹고 있던 찰나였다.
쨍그랑 소리가 나서 깜짝놀라 돌아보니, 막내의 피자 앞접시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있었고, 아빠가 이런 행동을 취한 큰딸을 불같이 혼을 내고 있었다. 화가난다고 막내 동생 피자 접시를 뒤집어 버렸으니 눈앞에서 이것을 본 아빠도 극도로 화가 났나보다. 피자 파티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큰딸은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났다. 분위기를 조금 누그러지고, 맥락없이 그럴행동까지 할 아이는 아닌데 싶어 가만 되짚어 물으니 우리가 못보는 사이 막내가 언니에게 부모몰래 취한 행동을 똑같이 되돌려 준것이었다 한다.
이 경우 당연히 언니라서 무작정 참아야 옳은 것은 아니다. 그 행동 자체는 다르지만, 상대의 행동에 대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전법을 위한 행동이었을때는 그 훈육의 무게도 달라야 한다. 그리고 선행된 잘못에 대해 동생도 같이 훈육해야 하는데 부모가 감정이 앞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시작하면 아이는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를 잃게 된다. 적어도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런일이 일어난 이유를 자백(?)하게 하고, 부모도 이성을 챙긴 후에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아이들을 통해 뼈져리게 배웠다. 훈육은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서 하는 행동임을 감안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주의할 점은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맺음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의 잘못은 길고 장황하면 안된다는 것. 이건 나도 잘 안되서 연습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짧고, 굵게 임팩트있게 치고 빠져야 한다고 한다. 대신 아이가 각인할 수 있도록 대답을 꼭 챙겨 들을 것.
매번 이렇게 앉혀놓고 상황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조곤조곤 말하고 억울한 점을 들어주고 이렇게 해야하나? 이론은 그게 맞는데 대부분 적어도 난 그렇기 못하다. 현실은 현실이다. 우리는 육아인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일 말고도 급히 처리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을 만난다. 그런 중에 매일 한결같이 부드럽게 훈육하는 부모되기란 어불성설이다.
내가 사남매들의 수많은 싸움을 중재하면서 얻은 노하우는 크게보면 남편과 잘 지내는 비법과 동일하다.
'직관력 키우기' 그리고 '노력하는 태도' 엄마 아빠의 공력이기도 한 이 능력이 키워지면 한결 수월해진다. 즉 엄마가 자신을 제대로 성장시키고 나면 모든 상황이 조금씩 다 실마리가 풀린다. 상황을 파악하고, 핵심을 건져서 아이가 현재 잘못하고 있는것을 한 문장으로 찝어주고, 앞으로의 행동강령을 약속받는다. 현명하게 훈육해야 하는 사람도, 이 훈육의 수혜자도 쌍방이 훌륭의 길로 접어들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엄마의 공부는 사실 선택의 영역보다는 '의무영역'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카테고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적이 많다. 난 참 개인적으로 훈육하는 말의 스킬이 많이 모자라 오은영 선생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펴 놓고 낭독하며 연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을 못하는 엄마들도 희망을 가지자. 사실, 아이들은 언어 이면에 깔린 비언어적인 에너지에 더 감응하는 존재들이라 엄마의 이런 '노력하는 태도'만으로 쿨하게 넘어가지는 일이 많다.
어느집이야 중재자로서의 부모역할은 힘들겠지만 우리집은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난다. 남녀가 섞여있고 연연연생에다 자기 주장과 소유욕이 한참 강한 네 아이의 합주는 세심하게 들어도 고운 소리는 찾아듣기 힘들다. 솔로몬도 피해가는 우리집 사남매의 매일매일 치열한 현장방문 후 부모지인들은 모두 속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하신다. 다 안다. 다만 이 현장에서 매일 살아갈 우리를 배려해서 '아이들이 참 에너지가 좋네' 정도의 좋은말로 감싸주신다. 사실 가만 들어보면 넷 다 각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수 있는 말들을 하고 있기에 정신줄을 잠깐 놓는순간 이 중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하루가 그냥 걸려 넘어지고 파묻힌다. 신생아 시절부터 누구하나 놀다가 혼자 잠든일 없이, 하루종일 놀고도 소리를 빽빽 질러야 겨우겨우 자는 슈퍼에너자이너 네 녀석이 하루종일 쏟아내는 말들, 싸움들, 별난 행동들이 만들어내는 트러블 고구마줄기를 보고 있자면, 고구마를 물없이 100개 연속먹은 기분이 든다.
오은영박사님이나 서천석 박사님이 여기에 오신다면 어떤 말을 해 주실까? 가끔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난다.
사정이 이런 육아계의 하드코어 우리집 나름 순기능도 있다. 육아에 지친 아빠엄마들이 한번 저희집을 방문하고 나면 "아, 나는 참 엄살쟁였구나. 우리 아이는 순한편이구나" 하며 그집 분위기가 되려 절로 좋아져서 돌아간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다시 감사의 감각이 사라질때쯤 저희집에 와서 가진 삶의 감사와 평온함을 수혈을 받아가기도 한다고 친한 동생은 고백도 했다. 그럼 이런 우리집은 뭐가 되나? 세네카라는 철학자는 일부러 극단적인 비극작품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 작품들을 접하고 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일상이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하게 느껴질 것을 의도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집은 육아계의 세네카다. 그게 뭐든 육아빠,육엄마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드리면 그걸로 우리의 고생이 조금 사그라 드는 느낌이니 서로 윈윈이다. 육아에 지치신분들....010-884,XXXX 연락주시길. 무슨 박물관이나 힐링까페는 아니라 민망하지만, 문호는 항상 대개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율해가며 살 수 있는건 사실 훈육보다 평소에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글쓰기나 대화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인데 이것이 올바른 훈육의 기본값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의 본질이라던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라던지, 인생의 큰 꿈에 대해서라던지. 아이들이지만 자꾸 주제를 접하다보면 각자 자신만의 정체성과 주제의식이 생겨나는것을 발견했다. 그런 후 아이들과 부모가 서로간의 가치관과 언어가 호환되면서 말그대로 '말이 통하는 아이'가 되고 나면 훈육은 거저다. 나로부터 탄생한 아이로만 보지 않고 각자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러 지구에 온 나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로 이 특별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서로간의 존중의 스위치가 절로 켜진다는게 우리 부부의 훈육의 핵심 그 저변에 깔린 바탕색이다. 그래도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은 계속 발발한다. 전쟁기념관 관람 문의는 아까 위에 있는 저 번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