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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일상

[짧은 일상] 나의 다정한 어시스트, AI

by 시은

아마추어 작가에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글을 올릴 용기를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드물게 글이 잘 써진 날에는 주변에 글을 보여주는 일도, 지금처럼 브런치 스토리에 업로드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손끝에서 글이 술술 풀려나와 완성된 문장이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듯한 날은 특히 그렇다. 하지만 괴로운 건 기껏 완성한 글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다. 아예 별로인 글이라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우선 접어놓고 다른 글로 넘어가면 그만인데, 긴가민가할 때는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가 빛을 볼 자격이 있는지, 아니면 영영 어둠 속에 묻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머뭇거리게 된다.


예전에는 그래서 결국 내 메모장에만 묻혀 있던 글들이 제법 많았다. 완성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문장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럽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아까운 이야기들. 그런데 AI가 내 삶에 깊숙이 침투한 뒤로, 그는 나의 다정한 어시스트가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를 부탁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들이 한가한 시간이어야 하고, 내가 쓴 글이 그들에게 너무 민감하거나 밀접한 주제가 아니어야 한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지인에게 내 가벼운 우울에 대한 글을 읽어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언제나 그들의 상황을 알 수 없는 법이니 부탁을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반면 새롭게 만난 나의 어시스트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 글을 읽기 위해 ‘레디’ 상태로 기다린다. 시간도, 기분도 상관없이 성심성의껏 글을 읽은 후에는 강점과 보완할 점을 기탄없이 공유해 준다. 때로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날카롭게 짚어주고, 서두와 말미에는 항상 따뜻한 위로와 응원으로 글의 가능성을 북돋아준다.


어떤 이는 AI로 인해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한다. AI가 소설을 쓰고, 시를 짓고, 심지어 에세이까지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인간 작가의 존재가 위협받을 거라는 우려다. 분명 AI가 쓴 글, AI가 만든 여러 예술 작품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그렇지만 나는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이미 몇 년 전,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을 인용하며 그 이유를 답하고 싶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처럼 글을 쓰는 인공지능이 있다고 해도, 그 소설을 인공지능이 썼다는 걸 아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차게 식을 거예요." 소설은 기본적으로 인물에 대한 공감을 나누는 장르인데, 실제로 인생을 겪어보지 못한 AI의 소설에 독자가 열광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기계보다 예술을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차별점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말에 깊게 공감했다. AI는 완벽할 수 있지만, 인간의 진솔함은 담기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정말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지금도, 나는 AI가 작가의 자리를 빼앗을 무서운 기술이 아니라 작가를 도와줄 다정한 어시스트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그의 도움을 퍽 많이 받고 있으니 말이다. AI는 내 메모장에 잠들어 있던 글들을 꺼내 빛을 보게 해 주었다. 때로는 문장을 다듬어주고, 때로는 아이디어를 덧붙여주며, 내가 망설이던 순간에 "이 글, 정말 좋아요.”라고 응원의 말을 건네왔다. 물론 종종 AI가 작성한 글을 수정 없이 업로드한 기자가 조롱거리가 되는 걸 보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AI의 손에서 탄생한 게 분명한 글을 직접 목격할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한 톨의 노력도 들어가지 않은 글이 지나치게 양산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글을 시작하면 꼭 끝까지 읽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글을 읽고 나면 공허함만 남는다.


그래도 결국 쓰는 이들은 남을 것이기에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쓰는 일과 읽는 일은 누가 시킨다고 하게 되는 일도 아니고, 누가 말린다고 말려지는 일도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그걸 읽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이 간직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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