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백일장 일반부 산문 금상 수상작
영영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속 표현처럼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내게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은 바람이 매섭던 겨울이었다. 그날,손에 쥔 작은 키트에는 이제 막 피어나는 새싹처럼 연한 두 줄이 나타났다. 한껏 눈에 힘을 주어야 보이는 그 선은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의 첫인사였다. 나와 짝꿍은 하루가 멀다고 진해지는 두 줄의 선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벌써 이런 행복을 주는 걸 보니 그 작은 선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침내 초음파 화면으로 아이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던 날은 아마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깜박이는 심장을 가진,형태도 뚜렷하지 않은 녀석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새로운 생명을 품은 부모의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까치는 오직 새끼를 기르기 위해 집을 짓는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까치 부부가 작은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물어 나르며 연약한 자식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까치집은 언뜻 보면 엉성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가지가 촘촘히 얽혀 단단하다. 까치 새끼는 그 집에서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먹으며 자라난다. 그리고 마침내 혼자 힘으로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오른다. 부모 까치의 헌신과 끈기로 만들어진 까치집이 거칠고,예측 불가능한 자연으로부터 새끼 까치를 지킨다. 까치 가족은 그 집에서 거센 바람과 세찬 비를 견뎌내야 한다. 그들의 노고는 새끼가 세상으로 날아오를 때 비로소 결실을 본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나도 지금 뱃속에서 아이를 위한 집을 짓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자랄수록 내 배는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고,무거운 배로 인해 허리는 시큰거린다. 손발이 붓고,잠을 설치고 때로는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변화가 너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달갑게 느껴진다. 아침잠을 깨워주던 시원한 커피 대신 따듯한 차를 마시고,평소 같은 데이 트 대신 아이를 위한 공간을 꾸미고 손가락만 한 양말을 사 모은다. 우리들의 까치집도 제 나름 촘촘히 만들어지고 있다.
따스한 계절이 오며 시골집 앞 나무에도 어김없이 까치집이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까치집이 이제는 내 눈에 들어온다. 어린 까치가 처음 집을 지으면, 그 아래에는 나뭇가지가 더 많이 떨어져 있다고 한다. 서툴게 집을 짓다 보니 실수도 잦고,떨어지는 가지도 많은 것이다. 아이와 부모는 함께 자란다. 아이가 이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듯,부모도 처음 부모가 된다. 서툴고, 어설프며,때로는 실수도 하지만 그 길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도시가 커지며 자연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까치가 집을 지을 나무도 부족해지고 있다. 급한 대로 전신주나 아파트 실외기에 집을 꾸리는 까치 가족도 있지만,인간도 인간의 사정이 있는 법이라 그들에게 마냥 공간을 내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리면서도,부푼 배를 안고 비좁은 버스에 몸을 구겨 넣을 때면,짧은 횡단보도 신호를 허겁지겁 건널 때면,까치 가족 생각이 난다. 괜히 가슴이 찌릿하다. 그저 부디 우리 시골집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까치 가족만이라도 무사히 새끼를 길러내 세 마리의 까치가 함께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조용히 소망할 뿐이다.
푸르른 동춘당공원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뱃속의 아이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이 아이가 평생 오늘처럼 맑은 날씨 속에서 살기를 바라본다. 설령 비바람이 몰아치고,세상이 거칠게 느껴져도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단단한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너를 기다리는,너를 키운 까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