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랑해'도 '고마워'도 아니다. '미안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분유를 늦게 만들어줘서, 기저귀를 늦게 확인해 줘서, 아님 그저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몰라주어서..
우리 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막 40일이 되었다. 한 달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매일 새로운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다. 아이의 울음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밥이 모자라거나, 혹은 너무 많이 준 건 아닐까, 너무 덥거나 추운 건 아닐까, 아픈 데는 없을까. 머릿속에서 늘 걱정이 맴돈다.
마침 남편이 방학이라 우리는 함께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처음에는 둘 다 집에 있으니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뼘만큼 작은 아기 한 명을 돌보기 위해 커다란 어른 둘이 매달리고 허둥댄다. 아이의 패턴을 파악하려고 매번 애플리케이션에 수유시간을 적는 것은 물론, 잠든 시간, 대변 횟수까지 모두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다. 아이만을 위한 연구원이 된 기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적어놓은, 혹은 예상한 패턴대로 흘러가는 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어제는 세 시간 간격으로 밥을 먹더니 오늘은 한 시간 반마다 밥을 찾기도 하고, 어제는 낮에 잘 자더니 오늘은 낮시간 내내 깨어서 끙끙대고 이유 없이 울기도 한다.
매일 새벽이면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다. 기계처럼 일어나 분유를 탄다. 물 온도를 재고, 분유를 넣고, 흔들어서 팔목에 떨어뜨려 온도를 확인한다. 고작 몇 주만에 이런 행동이 몸에 배어 있다. 남편과 교대로 청하는 새벽잠도 익숙해졌다.
낮에는 남편이 많이 애써주고 있다. 아이가 울기만 하면 "내가 밥먹일 게." 하고 젖병을 받아 든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계속 앓는 소리를 하니 남편은 피곤함마저 삼키고 있을 테다. "내가 해도 되는데."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이미 아이를 안고 젖병을 물리고 있다. 아이가 쪽쪽 빨아먹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남편이 밥을 먹이는 새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하려 분주히 움직이기도 하고, 가끔은 남편 옆에 앉아 열심히 밥 먹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참 예쁘다." 밥을 먹이던 남편이 중얼거린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종잇장 같은 손톱도, 이제 점점 길어지고 있는 속눈썹도, 작디작은 콧구멍도 예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나의 우주가 되었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트림을 하려고 끙끙댄다. 남편이 아이를 어깨에 기대어 등을 톡톡 두드린다. 큰 트림 소리와 함께 아이의 얼굴이 평화로워진다. "역시 트림은 여보가 잘 시켜." 내가 치켜세우자 남편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밥을 먹고 낮잠을 청한다. 아이가 잘 때 우리도 잠을 보충하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도 마찬가지인지 뒤척인다.
아이의 손톱을 깎는 날이었다. 고새 자라 버린 작은 손톱들이 보드라운 아이의 얼굴을 할퀴지 않게 조심스럽게 잘라내야 했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나는 아기용 손톱깎이를 들었다. "가만히 있어, 예온아." 하지만 아이는 내 마음도 모르고 손을 계속 움직였다. 남편이 아이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이렇게 작고 연한 손톱 하나를 자르는 일이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혹시 살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너무 짧게 자르지는 않을까. 한 개씩 조심스럽게 자르는 동안 남편과 나는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다 됐다!" 열 개의 작은 손톱을 모두 자르고 나니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보다 더 성취감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의 손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가만히 동그래진 아이의 손톱을 보며 바라본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부모가,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미안해라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주고 싶다. 나의 우주가 점점 더 행복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