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도록 설계되었다. 행여나 자신을 굶기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는지, 밥때가 되면 우렁차게 알람을 울려온다. 기저귀가 축축하거나, 잠은 오는데 눈이 감기지 않아도 어김없이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쨍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몇 년 전, 아이를 가지기 전에 유부녀 직장동료들에게 밤 귀가 어두운 내가 아이 울음소리를 못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들은 그저 웃으며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했었다. 과연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디가 불편한지 낑낑거리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였다.
임신 중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이 있었다. "엄마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아이를 낳아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이 말이 당시엔 굉장히 구태의연하게 들렸다. 지금에야 안다. 그녀들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의 그 수많은 변화를 말로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남편은 깊이 잠든 지가 오래되었다. 다섯 시간 단위로 서로 교대를 해주며 잠을 청하곤 하는데, 그 다섯 시간은 마치 5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눈을 비비며 아이가 있는 거실로 나오면 선잠을 자는 남편의 얼굴이 제법 안쓰럽다. 꾸벅꾸벅 졸며 아이를 달래고, 나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주려 애쓰는 그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 출산 전의 사랑을 넘어서는 것이다. 남편이 엉성하게 입혀놓은 아이옷을 보면, 처음 연애할 때의 어색함이 떠오른다. 그때도 지금도 그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 그 사랑의 범위가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전과 같은 일상은 다시 오지 않고, 피로는 만성이 되었지만, 그 모든 게 아무 상관없을 만큼 아이가 주는 행복은 남다르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행복이 온몸 곳곳에 흐른다. 아이의 모든 부분이 더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지루한 관용표현을 꺼내야 할까, 어떤 말로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야 이 마음이 전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작고 말랑한 손발톱, 시시각각 바뀌는 표정, 옹알거림이나 오동통한 허벅지까지. 작은 부분 부분 하나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간혹 남편의 품에서 칭얼거리던 아이가 내 품에서 얌전히 잠드는 순간이 있다. 그 이야기를 친정엄마에게 전하면 엄마에게서 "엄마라서 그래."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맞다, 엄마라서 겪을 수 있는, 엄마라서 가질 수 있는 순간들이 꽤 많다. 남편은 아마 절대 모를 것이다. 내 뱃속에서 작은 생명체가 꼬물거리는 순간이 얼마나 간질간질한 행복이었는지. 그 생명이 심지어 내 배에서 나와 얼굴을 마주할 때는 또 얼마나 벅찼는지. 이 작은 것을 내가 배불리 먹일 수 있음은 하물며 어떤 뿌듯함인지. 뒤집어져 있던 아이를 세상에 바로 꺼내기 위해 내 몸에 남은 일직선의 흉터는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가끔 그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이 흉터 하나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는 건, 아이가 내게 준 가장 큰 특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