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불공평

by 시은

신혼시절부터 우리는 제법 공평하게 집안일을 나눠왔다. 요리, 설거지와 빨래는 내가, 집 안 청소와 쓰레기 버리기는 남편이 한다던지.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는 우리 나름대로의 규칙을 잘 지키며 생활해 왔다. 그 규칙은 굉장히 합리적이었고, 우리의 작은 자부심이기도 했다.

아이를 가지고 초기에 절박유산 진단을 받은 뒤로 그 균형은 깨졌다. 내 생활반경은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자연스레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부담하게 됐다. 이게 마냥 편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혼자 고생하는 남편을 보는 미안함과 더불어, 내 입맛에 쏙 맞게 밥을 해 먹지 못하는 답답함도 내 불편한 감정에 한몫했다. 음식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나에게, 직접 요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꽤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공평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깨달았다.

다행히 건강히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또 습관적으로 '공평'하게 육아와 집안일을 분배했다. 하지만 이제 그 규칙은 예전처럼 경직되지 않았다. 서로의 사정을 자꾸만 보듬어주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도 계속 밀린 일을 처리하는 남편을 위해 아이를 좀 더 안아주고 싶은 내 마음, 손목이 시큰거리는 나를 위해 설거지 한 번 더 하고 청소기 한 번 더 돌려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 우리는 이제 누가 무얼 했나 따지기 보다, 피곤한 얼굴을 먼저 읽어내려고 애쓴다.

얼마 전 내가 외출한 사이 혼자 아이를 보던 남편이 나에게 말하길, 이유 없이 무작정 우는 아이가 잠시 얄밉더란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밥도 먹고 기저귀도 갈고, 잘 자고 일어나서도 뜬금없이 목청을 높여 울곤 한다. 때로는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허탈함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의 언어는 울음뿐이니 이해하기로 한다. 이해하지 않으면 어쩔 텐가. 나는 이 아이 앞에서 영영 약자인 것을. 아이가 울 때마다 나는 조금씩 부모의, 엄마의 마음을 배우는 지도 모른다.

이 막무가내인 새로운 구성원 덕택에 우리 집은 불공평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적게 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꺼이 더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었나 보다. 주고도 더 주고 싶고, 받고도 미안해하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행복한 불공평을 가져온 아가, 우리 집에서만큼은 영영 비논리적인 사랑을 주련다. 셈하지 않는 사랑을 주련다.

KakaoTalk_20250926_191922906.jpg 뒷통수마저 사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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