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3개월 아기엄마가 혼자 떠난 여행 후기

by 시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경주의 골목을 걸었다. 햇살은 뜨겁고 정해진 목적지는 없다. 도시만큼이나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걷는 나 또한 낯설었다. 남편을 사랑하고, 얼마 전 태어난 나의 아이 역시 넘치도록 사랑하지만, 나는 지금 분명 혼자인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경주로 오는 기차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몇 페이지 넘길라치면 아이의 칭얼거림이 들려오는 집에서는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일행이 있다면 가지 않았을지 모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깻잎향이 진하게 나는 소바였다. 소스까지 싹싹 긁어 한 그릇을 비우고 내가 익숙한 풍경을 떠나왔음을 실감했다. 미술에 취미는 없지만 괜히 미술관에도 들려보았다. 여행 하루 전 급하게 구매한 조잡한 삼각대로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봐도 구도가 우스웠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런대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 남편과 함께라면 분명 인생사진을 건져주었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렸다.


능에서는 다행히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을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약속했다. 내 차례가 돌아와 그녀가 찍어준 사진은 흠없이 좋았다. 우리는 말을 나누는 대신 사진을 나누었다. 그녀도 내가 찍은 사진에 만족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늘이 맑았다. 무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줄을 서는 도시, 이질감에 갸우뚱했지만 발을 멈출 새가 없었다.


즉흥적으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은 첫 입이 가장 맛있었다. 나눠먹을 사람이 없음이 또 아쉬워지려 했다. 허겁지겁 아이스크림을 해치우고 둘러본 거리에는 소품샵이 가득이었다. 눈에 띄는 곳을 모두 들어가 봤다. 네팔에서 만들었다는 가방이 현금가 이만 원이었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서랍장에 수납되어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한 내 가방들이 떠올랐다. 결국 가방은 내려놓고 짐이 되지 않는 수저받침과 아이몫의 스카프를 하나 구매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공간을 채우는데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음 행선지는 작은 서점이었다. 갈만한 장소를 거의 찾아보지 않고 떠난 여행이지만 서점만큼은 꼭 가보려고 마음먹었다. 내 책과 남편 책을 한 권씩 구매했다. 서점주인이 책을 담는 봉투에 선물할 사람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것 같은데 아직도 해가 쨍쨍했다. 발길 닿는 카페로 가 태블릿을 펼치고 오늘의 감상을 적었다. 벌집꿀이 올라간 토마토주스는 내 입맛에 딱 맞게 달았다.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았다. 그러나 아마도 오늘의 기록은 여기서 멈출 것이다. 혹시 글이 이어진다 해도 그것은 한참 뒤의 일이 될 거라 예상해 본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될 테니 말이다.

경주빵을 사가야겠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본 남편의 입에 꼭 하나를 직접 넣어주어야겠다. 벌써부터 내가 사랑하는 부녀가 그립다. 남편은 피치 못할 일로 인해 며칠간 집을 비우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으로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올 수 있었다. 일박으로 계획했던 여행을 이틀 전 당일치기로 변경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어쩌면 애초에 일박을 갈 생각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숙소예약하는 걸 계속 미루어왔다.

남편은 원하지 않는, 해야만 하는 일로 집을 비우고도 부채감이나 미안함을 안고 돌아온다. 나 역시 머리로는 고생한 남편을 토닥여줘야 하는 걸 알지만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면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미안해하고, 누군가는 서운해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적절한 보상을 내게 제공한다. 달달한 먹거리, 혼자 보는 영화, 혼자 떠나는 여행. 나의 연인이었고, 나의 남편이었고, 내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자식으로, 사회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에게 나는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할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아이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이 그에게 평온과 행복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삼각대가 찍어준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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