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중고물품을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첫 아이니까, 우리 아이니까, 반짝이는 새 물건으로만 채워주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아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란다는 것을. 지난주에 딱 맞았던 옷이 이번 주엔 작아지고, 한 달 전 샀던 장난감에 금세 흥미를 잃는다. 게다가 바운서, 아기체육관, 보행기처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제품들은 정말 짧은 기간만 사용하고 치워야 한다. 이렇게 짧은 사용 기간을 가진 물건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무엇보다 집이 점점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물건을 새것으로 구매한 터라 짧은 기간만 사용된 채 방치되거나, 아이에게 맞지 않아 아예 써보지 못한 용품도 많았다
남편의 주변인들에게 물려받은 몇 가지 물품은 대부분 빛을 발했다. 국민템이라고 하는 젖병소독기부터 기저귀갈이대까지. 육아선배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머지 처치곤란인 물품들을 어딘가로 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당근마켓에 입문하게 되었다.
판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조심스럽게 용품을 구매하기도 하며, 꽤 활발하게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중이다. 욕심으로 구매했던 감성 가득 원목침대는 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출산을 앞둔 임산부에게 보내주었고, 어제는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급하게 우주복을 한 벌 들여오기도 했다. 나도 몰랐던 세계지만, 생각보다 바로바로 구매할 수 있는 아기옷이 많지 않다. 인기 많은 옷들은 이른바 프리오더는 기본이다.
대부분 비대면 문고리 거래라 얼굴은 못 보지만, 오고 가는 채팅 속에 마음이 따듯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플랫폼이다 보니 가끔 이상한 사람도 만난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거나, 터무니없는 흥정을 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모두 잊을 만큼 좋은 기억도 만들어주는 곳이 당근마켓이다.
얼마 전에는 개월수를 물으며 괜찮다면 겨울모자를 함께 챙겨주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내고 받아온 모자는 아이에게 꼭 맞았다. 올 겨울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 몰랐다. 같은 일을 겪어본 동지라서 그런지, 서로를 향한 응원의 마음이 물건 너머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오늘 나도 아이에게 작아진 옷을 팔며 구매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이가 신생아일까요?"
그렇다는 답변에 아이에게 작아진 모자를 덤으로 챙겼다. 문고리에 걸어둔 봉투가 사라졌고, 채팅창에 감사 인사가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옷이 사라진 자리에 레모나 젤리 두 봉이 남아있었다.
100일 차 엄마가 된 지금, 당근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서로의 짐을 덜어주고, 작은 친절을 나누는 곳이다. 같은 시기를 지나온 누군가의 물건을 받아 쓰고, 내 아이가 다 쓴 물건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는 이 순환 속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해주는, 얼굴 모르는 타인의 친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당근마켓 알림을 확인한다. 누군가 내가 올린 물건에 관심을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구매가능합니다."
답장을 보냈다. 또 하나의 따스한 연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