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아이를 안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당황했고, 이유를 물어왔으나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4개월에 접어든 나의 아이는 분명 순한 편이다. 100일이 채 되기도 전에 10시간 통잠으로 엄마아빠에게 밤잠을 되돌려주었고, 원더윅스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한 번쯤은 고난을 겪는다는 카시트에도 척척 앉아주고, 밖에 나가면 순한 양이 되어 울지도 않고 엄마만 바라본다. 뿐만인가, 목욕을 할 때도, 옷을 갈아입힐 때도, 늘 아이는 우리에게 협조적이다. 육아에 난도가 있다면 '하'에 속하는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주변 엄마들은 부러워한다. 잠도 잘 자고 안 보채면 얼마나 좋아? 맞는 말이다. 새벽 수유를 끊지 못하고 밤마다 보채는 아이를 재우느라 눈이 퀭한 다른 엄마들을 볼 때면, 우리 아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여섯 시가 되기도 전에 어김없이 일어나야 하고, 머리를 감기 위해 남편을 목 빠지게 기다려야 하고, 취미생활이나 개인 일정을 잡으려면 서로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동안에도 쉴 수 없다. 밀린 집안일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아이가 머무는 공간, 아이가 입는 옷, 아이가 덮는 이불, 아이가 먹는 젖병. 모든 것을 부지런히 가꿔야 한다.
아이는 낮잠을 잘때면 꼭 엄마품에 안겨야만 한다. 이제 7kg을 넘는 아이를 들어 올릴 때면 손목이 시큰하게 아파온다. 얼마 전부터는 손목을 대신했던 팔 언저리마저 욱신거려 온다. 한 손으로는 아이를, 다른 손으로는 하루를 버틴다. 예전엔 당연하게 했던 일들, 샤워하기, 밥 먹기, 화장실 가기조차 타이밍을 재야 한다. 아기엄마들은 다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먹는다던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녹아도 괜찮은 음료는 아이스아메리카노 뿐인 것이다.
오늘은 유난히 바쁜 하루였다. 오전부터 결혼식을 다녀와 시댁까지 들린 날이었다. 긴 이동 시간에 아이는 보채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쳤다. 차 안에서 달래고, 시댁에서 안아주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를 재우느라 저녁은 대충 때운 채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아이를 겨우 재운 후, 하루만, 아니 반나절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마음에 눈물이 났나 보다.
부모의 삶을 써서 아이는 자란다. 울음이 적다는 이유로, 잠을 잘 잔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편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육아는 여전히 나의 모든 시간을, 모든 에너지를, 모든 마음을 요구한다. 아이가 울지 않는다고 해서 돌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배고픔을 알아채야 하고, 졸린 신호를 읽어야 하고, 불편함을 먼저 살펴야 한다. 오히려 말없이 착한 아이이기에,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들이는 시간 이상으로 행복을 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날 보고 방긋 웃어주고, 내 어깨에 폭 기대온다. 마치 코알라처럼 내 몸통에 매달려있는 아이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고 나는 하루를 보낼 힘을 얻는다.
아무리 순한 아기라도 각자의 고충이 있고, 아무리 예민한 아기여도 특별한 기쁨을 주는 순간이 있다. 남편의 말대로 서툰 부모를 위해 순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이 작은 사람을 안고 하루를 버텨낼 결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