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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02. 2018

오래된 슬픈 일들_#ME TOO(나도 당했다)

그들의 용기를 응원하기 위하여 #WithYou





 미투 운동이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문단계, 영화계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대학 내 교수들의 성희롱 고발까지 진행된 이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미국의 유명 할리우드 감독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를 규탄하고자 시작된 트위터의 해쉬태그 운동이다. 하비와인스타인은 영화제작사 '하비와인스타인사'에서 퇴출당했으나,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지 단면적인 성추행 및 성폭력 사건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사건들이 묵인되고 또 피해자가 다시 숨게 되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Me Too(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며 감추려 했던 추악한 범죄가 세상에 전격 공개되었다. 이와 같은 운동은 2015년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는 뉴욕매거진이 발단이 된 해쉬태그 운동 #TheEmptyChair와 닮았다.



제니스 디킨스, 바바라 보먼 등 코메디언 빌 코스비에게 성폭행 당한 이들의 증언이 담긴 뉴욕매거진의 2015년 표지이다. 이 기획 취재는 6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뉴욕매거진은 성폭행 혐의로 코스비를 고소한 슈퍼모델 제니스 디킨스를 포함하여 피해 여성 46명을 확인하였고, 이 가운데 35명의 인터뷰를 30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Cosby : The Women>이라는 제목으로 피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명시한 표지를 내세운 뉴욕매거진은 차마 '당시에는 두려워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추악한 성추행과 성폭행을 낱낱이 폭로하며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때 세상에 나와 부조리를 고발한 46명의 피해자들을 위해 #TheEmptyChair 해쉬태그 운동이 이어졌고, 세상에 가려지는 수많은 피해자들과 또 이들이 가졌던 두려움에 숨었던 가해자들의 추악한 면을 되새기는 시간들을 가졌다. 여전히 이와 같은 이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점점 더 폭로의 간격도 짧아지는 듯하다.




한국일보가 정리한 '미투운동'의 부끄러운 얼굴들.

 

서구권에서 이뤄졌던 운동과 지금 우리나라 각계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조금 다른 양산을 띄는 것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인물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일명 '연희단 거리패'라 불리는 연극단의 큰 기둥으로 불리는 이윤택 연출가의 잔인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성폭행 및 성추행 추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게다가 이 연희단 거리패 소속 배우들은 함께 이 사실을 덮거나 무마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같은 배우들은 '청출어람'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행보를 보였다. 사실은 연희단 거리패가 아니라 연희단 패거리가 더욱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이 배우들 뿐만 아니라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던 고은 시인과 인간문화재 하용부, 사진작가 배병우 등 어떤 한 분야를 칭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폭로는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들 대다수는 이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이룬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이뤄낸 그 자리를 위해 도덕과 양심은 필요가 없었던 걸까. 어쩌면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 위치에서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저지르는 실수'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슬픈 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즐거운 것만을 바라보기 위해 애써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도처에는 예술과 문학, 문화라는 이름으로 나를 위로하던 것들. 

   그 아름다운 것에 가려진 오래된 슬픔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군가는 그 상황에 화를 낼 것이고 피해자의 슬픔에 깊은 공감을 하며 같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믿을 수 없는 진실을 거부하고 가해자의 행동을 실수라 일컫는 이들은 계속해서 피해자를 흠집 낸다. 연예계를 뒤집은 수많은 사건들이 그랬다. 이른바 장자연 사건이 큰 이슈를 가져오고, 박유천, 박시후 등 유명 연예인들이 성범죄를 저질러도 마찬가지다.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듯, '무고한'가해자를 찾고 그에 감정 이입하는 이 상황에서 나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오히려 피해자가 검열받는 것에 익숙하다. 자신의 모든 지위와 두려움을 딛고 부조리를 고발한 이들이 완벽하길 바란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만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회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덮으려던 이 사건은, 가해자 남성이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타겟으로 하기 위해 피해자를 물색했다는 점과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를 당해도 부조리한 사회의 구조를 두리뭉실하게 비판하는 일명 '가해자 감정이입'에 의해 더욱 쟁점에 서기도 했다. 때문에 여전히 피해자들은 그 타당성과 순결함을 의심받는다. 한샘 사건의 피해자 역시, 이 피해자의 순수 여부에서 강제적으로 탈락하여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간 양상 되어왔던 여성 혐오를 낱낱이 고발하는 글들과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사회 전체로 그 불이 옮겨 붙어 현재까지도 많은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잇다라 문단 내 성폭행 고발, 예술계 성폭행 고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성폭행 및 성추행 고발이 이어졌다. 허나 비교적 소소하게 단락 지어진 이 사건은 법적인 자문을 받은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피해자 및 네티즌들을 대거 고소하며 일부 남성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돌을 던진다. 단지 몇 안 되는 무고죄가 성립된 이들을 주장의 근거로 삼으면서. 



변화를 바라는 이들은 단지 인터넷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나와 세상에 한마음 한 뜻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밝혀야 할 진실보다 여전히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에 대한 심판이 더욱 급한 이들도 있다. 이 심판을 위해 기꺼이 피해자를 자처하는 모순도 생긴다. 그것은 바로 '무고'. 법적으로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성폭력 폭로 운동이 지속될수록 무고죄를 더욱 엄격히 처별 할 것을 주장한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옷을 갈아입기 위한 준비다. 

분명 이 모든 것이 '피해자'라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게임은 아니다. 그저 성폭력 없는 세상을 살기 원하는 이들은 '가해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기 싫은 것뿐이다. 하지만 어떤 위치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이들은 이미 감정이입을 넘어 사회의 폭력에 동참한다. 이런 사회가 빚어낸 침묵의 폭력 앞에서만큼 피해자가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은 어떤 일에서든 중요한 쟁점이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이야 말로 진실이다. 

눈을 떠 바라본 거센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주장의 타당성은 당연히 철저히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단지 심판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이 파도의 시작은 분명 가려진 폭력과 슬픔이다.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시작된 '심판'을 나는 거부하겠다. 나는 기꺼이 이 거센 물결의 위에 서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애쓸 것이고 나 역시 소리 내 외칠 것이다. 당신과 함께 갈 것이라고. #Me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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