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3개월도 안되어서 떠나는 것이다. 2월 초에 입국했으니, 4월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줄은 몰랐다. 여행을 가고파 항공권 구매 사이트를 몇번 뒤적거리며 손톱을 짓씹다가 결국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심지어 술김에 부모님께 내가 모두 쏜다고(?)까지 말해버린 것이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취소 수수료를 찾아보았지만, 취소하느니 가는게 나을만큼 큰 금액에 여행을 떠나기로한다. 그러면서도 내 자신이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행이 가고싶다고 부르짖으면서 왜자꾸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 것인지. 자꾸만 안되는 이유를 찾으며 여행을 겁내는 내가 우스웠다. 겁쟁이. 바보.
나는 속히말하는 '집순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집안에서 굴러다니는 것이 좋다. 게다가 도전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딱히 음식을 가리지 않아도 늘 먹는 음식만 먹고, 늘 쓰던 화장품에, 바지는 잘 입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운전하는 것이 무서워 면허를 따야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루고 있으니 말 다 하지 않았는가. 이 두가지 성격을 보건데 나는 여행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이 외에도 요목조목 따져보면 여행에 어울리지 않음을 증명할 조건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도피에 가깝다.
얼마전 뉴욕에 다녀온 뒤로 친구들이 내게 뉴욕의 어떤 것이 가장 좋았느냐 물었다. 그에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퇴사해서 좋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한 후로 나는 첼시마켓에서 먹은 랍스타 샌드위치나 너무나 황홀했던 미술관 등을 뒤늦게 이유로 댔지만, 가장 먼저 튀어나온 대답이 나의 진심이리라. 그 말은 정말 사실이다. 나는 퇴사 후 떠난 여행이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나 버킷리스트 실행 등 그런 이유들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퇴사 후 공허해질 내 자신이 두려웠다. 늘 반복되던 일상 사이에서 여행은 나에게 단순히 기분전환이 아닌, 필수적인 터닝포인트였다. 일을 하며 떠났던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지 도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도피에 가까운 여행임에도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난다. 사치가 아닌 목숨같은 여행. 오늘도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 즐거운 고통을 기대하며 또 다시 설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