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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an 24. 2018

3. 새별오름 : 마지막 밤에 오른 별

반가워 새 별, 새 해.

 퇴사가 결정된 날 바로 제주로 향했다. 그 날 점심, 마지막과 아쉬운 이별은 은빛 저수지를 바라보며 이뤄졌고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정신없이 김포로 향했다. 떠난 시각은 토요일 아주 늦은 밤. 여가를 즐기려 온 건지, 나처럼 도피를 즐기려 온건지 도로위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나 또한 차들이 만들어내는 넘실거리는 빛 사이로 흔적만을 남기며 서울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렇게 제주로 향했고, 도착한 그 곳에서는 새해를 앞두고 독감에 걸린 엄마와 피곤에 절은 두 자식이 있었다. 불과 한달 전, 나는 제주에서 씁쓸한 슬픔을 맛보았고 혼자 남아 꾸역 꾸역 밀어넣던 밥에 짜디 짠 눈물로 간을 더하는 경험을 가졌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끝에 다시 제주로 돌아온 것은 뻥 뚫린 하늘과 넘실거리는 억새가 못내 아쉬워 다시 담고싶었기 때문이다. 한달 전만 해도 좁은 버스 창이나 빠르게 올라가는 미터기를 쫓는 눈으로 곁눈질하던 퍼런 풍경이 내가 마주하는 제주의 모습의 다였기 때문이다. 그게 못내 아쉬웠는지 육지로 돌아와서는 간혹 말들이 풀을 뜯어먹는 제주의 풍경을 꿈꾸기도 했고 혼자여서 아쉬웠던 순간들에 기회를 주기 위해 기꺼이 비싼 성수기에 제주로 향했다. 다행히도 제주에는 아직 억새가 남아있었고, 그 아름다움의 절정은 셋이서 향한 새별오름에서 더욱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오름에 오르던 날은 최악의 날이었다. 엄마는 독감에 걸리셨고 아빠는 몸살이 나셔 숙소에 앓아 누웠다. 게다가 이 날은 한해의 마지막 날로, 제주에는 사람이 넘쳐났고 그에 기약했던 그 어떤곳도 가지 못한 채 정처없이 떠돌던 날이었다. 그 때 바람에 비벼지는 억새소리를 듣기 위해 새별오름으로 향했고, 절벽처럼 가파른 옆구리를 타고 헉헉거리며 정상으로 향했다. 새별오름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나중에 돌아올때가 되어 알았지만, 반대편에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 준비되어 있어 숨을 쉴 여유정도는 부릴 수 있지 않았을련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래도 새별 오름이 지닌 가파른 옆구리를 낑낑거리며 올라가며 밀짚으로 엮은 발바침을 짓이기고 앞서가는 엄마의 엉덩이를 꾹꾹 누르기도 하던 순간들을 나는 꽤나 기분 좋은 때로 기억한다.  

 다른 어떤 끝이 다가와 슬퍼질 날에는 이 억새가 그립겠지. 억새 비벼지는 소리가 귀를 가득 매운다. 때마침 흐릿한 구름 사이로 잠시 고개를 내민 해가 붉은 그림을 만든다. 다시 해넘이를 보기위해 바다로 향했지만, 새별오름에서 본 붉은 해를 끝으로 다시는 2017년의 해를 볼수는 없었다. 

 만약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이 날의 가장 특별한 기억은 이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겹게 올라가 따뜻한 기운을 준 새별오름이 선물한 한 해의 마지막 해는 새로운 별로 향하는 길을 터주었고, 나는 다시 즐겁게 인사한다. 

반가워.

올해도 작년만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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