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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Mar 20. 2024

6. 이해하니, 용서가 됐다.

칼로 물 베기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이 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
- John Steinbeck


남편은 나에게 다신 손대지 않겠다고 각서도 썼고, 나에게 잘못도 빌만큼 빌었다. 하지만 좀처럼 그를 용서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덜컥 헤어짐을 결심하지도 못하겠다.


며칠을 서먹서먹하게 지냈다. 술로 날을 지새우며 ‘이게 시작이겠지, 절대 마지막은 아닐 거야.’라는 생각만 든다.



답답한 마음에 맘카페에 비슷한 사연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한번 손 대기 시작하면 계속 손을 올리게 되어있다고들 한다.


… … 사실 이러한 조언이 쓰여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다.


그럼에도 굳이 검색해 본 이유는 위로를 받기 위함일까? 용기를 받기 위함일까? 희망을 찾기 위해서일까?  



우리의 관계는 이제 내 선택만 남은 거겠지.






남편은 오랜만에 주간출근을 했다.

아침에 바삐 출근하는 남편을 억지로 본체만체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죽은 듯이 지냈다. 내 눈치를 보며 시덥지 않은 말을 걸기도 했지만, 무응답으로 돌아오는 내 태도에 더욱 숨죽이며 지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우리 아기를 위해서 어떤 결정이든 해야 했다.


아침부터 맥주를 한 캔을 꺼냈다. 몇 모금을 벌컥벌컥 마시며 조금 전 분유를 먹고 곤히 잠든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난 그렇다 쳐도 우리 아기는 무슨 죄라고…

나와 같은 삶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는데…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퇴근한 남편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굳은 표정으로 서로 마주했다.


“ 우리, 이혼하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내가 만삭이었을 때도 한번 손을 대지 않았어? 그게 시작일 수 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난 당신을 믿었어. 아니나 다를까… 그 일이 있었던 게 겨우 석달 전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나 출산한 지 100일도 안 지났어.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오빠 따라 연고도 없는 이 동네로 왔는데 겨우 이러려고 데리고 왔니? 때리고 쫓아내려고?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딸아이한테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되겠어.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고 싶어. 내일 바로 이혼 서류를 제출하면 좋겠어.”


“ … 알겠어.”


남편도 별다른 대꾸도 없이 순순히 내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 외로 아이와 내가 살 거처는 마련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지금 살고 집을 처분하고, 본인 원룸정도 구할 수 있는 돈은 제외하고 나머지를 다 주겠다고 한다.


“ 겨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시 살고 있는 집은 지방에 소형아파트 전세였다.

남편이 지낼 원룸 구할 돈을 빼면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다.


“ 그럼 양육비는?”


달에 120만 원씩 보내겠다고 한다.


아기가 100일도 안되었는데 120만 원이 맞긴 하냐고, 결국 자기 살 길만 다 계산하고 나와 아기한테는 최소한만 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쏘아붙혔다. 하지만 여차저차 변명만 줄줄이 늘어놓는 남편이 싫어서 남편이 얘기한데로 하기로 했고, 이렇게 협의가 된 마당에 시간 끌거 없이 내일 바로 이혼서류를 내러 가자고 하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아기와 단둘이 어떻게 살게 될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은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왔다.

그리고 딸아이를 안고서 우리 셋은 법원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단 주민센터에 가서 필요서류를 발급 후 이혼서류를 작성했다.

지난밤 급하게 협의하긴 했지만 이게 최선의 협의점이라 생각했다.


이혼서류 작성을 다 하고 제출 직전,

남편이 잠시 차에서 얘기 좀 하자고 한다.


나도 막상 법원에 오니 앞으로 닥칠 현실에 겁이 났던 걸까? 대충 무슨 얘기를 할지 뻔히 알면서도 순순히 남편과 차에 올라탔다. 예상대로 남편은 회유의 말을 꺼냈다.


“ 꼭 이혼만이 답이야?”


차마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막상 법원 앞에 와서 내 품에 안겨 말똥말똥 눈을 깜빡이고 있는 아이를 보니 차마 그것이 답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었다.


“ 다시 잘해보자. 변명 같겠지만 늘 울면서 회사가지 말라고 닦달하는 너도 신경 쓰이고, 우리 가족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만 하는데, 너 때문에 몇 번씩 결근을 하게 되니 회사에서도 눈치가 보였어. 어머니, 아버지는 농사일이 너무 많다고 도와달라고 하시는데 네가 힘들까 봐 가자고도 못하고, 그렇다고 동생 놈들이 자주 가서 도와드리는 것도 아니니 장남으로써 죄송하고 속상했었어. 네가 산후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처럼 나도 우울증이 온 것 같았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너무 힘들었어. 널 때렸던 그 날도 막내제수씨한테 네 편 들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는데, 네가 바구니를 걷어차며 계속 욕을 하는 모습이 가족들 듣는데서 날 무시하는 것 같았어. 다 변명인 거 알아. 너 아프게 한 거 정말 잘못했어. 진짜 너무 잘못했어. 내 마음도 조금만 헤아려주면 안될까? 나 우리 아기랑 너 없으면 안 돼. 내가 잘할게. 더 잘할 거야. 부탁이야. 제발”



남편은 본인 머리를 뜯어가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용서를 빌기도 한다.

초조한 듯이 횡설수설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남편에게 했던 행동을 떠올린다.


그래. 남편은 현장 책임자인데, 내가 혼자 있기 싫다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 아프다고 거짓말하면서까지 보내지 않았던 적이 많았지.

그럼에도 남편이 출근하면 언제오냐고 닦달했었지

시부모님은 많이 연로하시고, 특히 시아버님은 뇌경색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어..

이런 상황에서 남편도 자기만의 시간은 1분도 갖지 않고 오롯이 나와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 하긴 했지.



고개를 숙인 체로 눈물을 쏟으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남편을 보면서 지난날 이혼을 해야겠다고 굳게 한 결심이 너무나 무색하게 남편의 입장을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날 때렸던 게 꼭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한편으로 스스로 참 한심하단 생각도 든다. 이렇게 쉽게 풀린다고? 요몇일 뭐 한거지? 이게 맞는건가?


하지만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그를 한번 더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과 같은 의미였다.






다시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수백 번의 다짐을 받고 또 받았다.


남편의 걱정과 부담을 조금은 덜어주고자 시부모님께도 다녀왔다.

막내동서와도 자연스레 화해를 하게 됐다.


그렇게 또다시 우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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