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슬 좋은 부부란 타이틀을 얻었다.
아침 식사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은 분명 너무나 소박한 기쁨이지만, 살면서 이런 기쁨을 누리는 부부가 잘 없어요.
- 앤 모로우 린드버그
몇 개월 살다 보니 동네에 아는 지인들이 몇 생겼다.
특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한 언니와 부쩍 자주 만나게 됐다.
언니와 일주일에 대여섯 번을 꼬박꼬박 만날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부부끼리도 함께 식사하는 날도 자주 있었다.
어린 딸아이를 아기띠로 안고서, 밤 11시까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언니 집에서 수다를 떨고 오는 날도 종종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생기니 남편에게 회사에 가지 말라고 조를 일도 없어졌고, 대부분 남편이 내 뜻에 맞추어 주었기 때문에 다툴 일도 없었다.
남편도 내가 언니와 마트도 가고, 아이옷 쇼핑도 하고, 문화센터도 다니며 예전보다 활발해진 내 모습을 좋아했다.
자연스레 사이도 좋아졌다.
평화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내가 바라던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부부에게 생각치도 못한 일이 생겼다.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부쩍 예민해짐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보채는 아기한테 짜증을 내고 ‘ 헉! 내가 왜 이러지?’라며 뜨끔할 때가 종종 생겼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봐도 속이 더부룩하니 당기질 않는다. 육퇴를 하고 한잔씩 마시던 시원한 맥주도 한 모금조차 넘기질 못 하겠다.
생각해 보니 생리 예정일도 며칠 지났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남편을 시켜서 임신테스트기를 사 와서 급하게 테스트를 했다.
희미하게 두 줄이 떴다. 믿을 수가 없어서 테스트기를 하나 더 사 와서 다시 검사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희미하지만 두 줄이 맞다.
첫째 아기가 이제 겨우 생후 7개월에 접어들었는데, 둘째가 일찍 우리 부부에게 온 것이다.
기뻐해야 맞는 건데…
지금 현실에서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겁부터 났다.
난 아이 한명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기도 하고, 특히 연년생은 자신이 없다고 무책임한 말만 뱉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첫째를 낳고 나서 남편은 줄곧 둘째 계획은 없다고 항상 말해왔었다.
자신의 나이도 있고, 체력도 되지 않다 보니 자녀 계획은 늘 한결같이 한 명이라고 했다.
그랬는데 둘째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첫째가 아직 생후 7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다.
난 자신이 없다는 소리만 되뇌었다.
“ 나 자신이 없어… 지금 한명 키우는 것도 충분히 빠듯하고, 이제서야 적응하고 숨통 좀 트일 것 같은데.. 너무 겁이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뜸 첫째 아이가 입었던 내복을 집어 들고 욕실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난 말없이 욕실 앞에 앉아서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첫째는 뭐가 그리 신난 건지 힘차게 옹아리를 하며 거실 구석구석을 기어다니며 탐색하고 있었다.
아기 빨래를 조물 거리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 우리 기쁜 마음으로 뱃 속의 아기 받아들이자.”
너무나 의외였다.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늘 아이는 한 명만 낳자고 했던 사람이 왜 이러는 건지 어리둥절했다.
난 곧 정신을 차리고 무책임한 거 알지만 자신이 없다고 울먹울먹 거리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남편은 여유롭게 미소도 보인다.
“ 내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리 회사일이 힘들더라도 육아나 집안일 전부 다 도와줄게. 우리 아기 낳아서 잘 키워보자!! ”
항상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고 단언하던 그였는데… 나는 남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웃기게도 난 내심 남편의 이런 반응을 바랐던 것인지, 금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니, 흔들렸다기보다는 남편의 말에 바로 마음이 돌아섰다.
그래! 이 아기가 무슨 죄가 있는가.
‘둘째 계획은 없다.’하고서 피임도 제대로 안 한 우리 탓인걸. 또 나도 외동이라 혼자인 게 외롭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둘째 임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대신, 오빠가 정말 많이 도와줘야 돼.”
절대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던 남편이었는데, 낳고 싶다고 뚝심 있게 말해주니 기분이 내심 좋았고, 나 또한 둘째 임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행복에너지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 둘째는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이었음 좋겠어?”
“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 다 예쁠 것 같아.”
다음날 주변에 임신소식을 알렸고, 사람들은 찰떡금슬이라며 놀리기도 했다.
난 그것마저도 축복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이 행복이 깨지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