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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03. 2024

9. 닦달하는 아내, 한번에 터지는 남편

이해하기 싫은데, 이해가 된다.


기쁨의 가치를 온전히 누리려면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 마크 트웨인



예전에 남편은 많은 업무량에 치여 피곤하고 힘들어 했지만, 난 그런 남편을 데리고 주말마다 산이며 바다며 콧바람 쐬러 다녔고, 행여 외출하지 않고 집에 있던 날도 나와 대화를 나누길 원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고맙게도 대부분 내가 하자는대로 기꺼이 해주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남편과 좋았던 일들이 중간중간 떠올려보니 내가 참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한바탕 다툼이 있던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본가로 돌아가시고 나서 남편과 대화를 했다.


남편은 싸우는 게 싫어서 꾹꾹 눌러 담았다가 어느 한 부분에 꽂히면 펑! 하고 터지는 게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막내서방님이 술기운에 농담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형수, 우리 형 별명이 가스(GAS)였어요. 불만 붙이면 펑 터진다고 사람들이 가스(GAS)라고 불렀어요.”




나도 차분한 성격은 아니었다.

특히 할 말은 꼭 해야되는 성격이었다.

성격도 무척 급하기도 하고, 내 뜻이 통하지 않으면 좌절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남편은 늘 내 성격이 어렵다고 했다.


“ 자기는 자그마한 잘못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내가 퇴근하고 와서 얘기할 수도 있는 건데, 일하고 있거나 출근할 때 전화해서 하나 하나 짚어가며 따져물을 때면 솔직히 너무 화가 나...”


“ 그래… 내가 그랬지.”


“ 이번에 엄마가 왔을 때도… 엄마는 며칠만 와계시는 건데, 자긴 그 며칠을 못 참고 힘들다고 짜증내고… 내가 퇴근하고 오면 나한테 온 감정을 푸니까 말은 못했지만, 솔직히 너무 서운하고 힘들었어...자기랑 대화하면 자기는 힘들다고 화만 내고 몰아세우니까 너무 힘들었고, 집에 들어오기가 너무 무서웠어.. 나는 이제 나이도 있어서 체력도 많이 부족한데 회사 일은 너무 바쁘고, 항상 자기는 어디로 놀러 가자조르고, 쉬는 날에도 조금도 쉬지 못하고, 나만의 시간이 단 1시간도 없다는 것이 숨 막혔었어..”



“ 오빠. 주말에 나와 애기들한테 오롯이 에너지 다 쓰는 거 잘 알아. 오빠만의 시간이 필요했겠지. 근데

있잖아… 나도 나만의 시간이란 거 없었어. 둘째 안아주면 첫째가 질투해서 울고, 둘째 분유먹이고 재우고 있으면 첫째가 사고치고, 첫째는 아직 배변 훈련도 안되어 있으니 둘 다 기저귀 갈아주고, 씻기고… 게다가 어머니까지 와계셨잖아. 어머니 삼시세끼 식사에 중간 중간 간식까지 챙겨드리고, 또 첫째는 첫째대로 따로 밥 챙겨줘야 해. 틈이라도 나서 좀 쉬려고 하면 어머니께서 심심하시다고 거실에서 땅콩 까시는데 거실바닥 뿐만 아니라 화장실까지 전부 흙투성이야. 그럼 난 또 청소하기 바빠. 답답한데 어머니께 말씀도 못드리니 오빠한테 닦달한 거 인정할게.그런데 그만큼 나도 정말 힘들었어.”



“ 알지. 연년생 육아에 엄마까지 와계시니 답답하고 힘든거 알아. 그래서 늘 묵묵히 다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했는데… 하. 정말 미안해. 그냥, 내가 부족한 놈이라 혼자 꾹꾹 눌러담았다가 한번에 터진 것 같아. 정말 미안해. 그래도.. 그래도 자기야.. 나도 참 힘들고 눈치보이고 답답했어… 진짜 너무 답답했어…집 앞에 도착하면 한숨부터 나오고 들어오기가 겁이 날 정도였어..”


이것들이 폭력의 정당화는 되지 않지만, 성격이 급하고 할 말은 바로바로 해야하는 까칠한 내 성격을 나도 잘 알고 있었고, 집에 오면 짜증섞인 나의 하소연이 많이 힘들었단 말을 들으니 남편 마음도 어느정도 이해가 됐다.


늘 폭력이 있기 직전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조금 더 편하게 해주지 못한 것을 인정했다.


“ 알았어. 오빠 마음을 잘 몰랐네. 그 때는 내가 나만 생각했나보다. 그건 미안해. 하지만 폭력은 더이상 절대 안돼. 폭력은 정당화 할 수 없어.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그땐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야.”






남편과 대화를 마무리 한 후 혼자서 예전 일을 곱씹다가 문득 첫째 100일 전 손지검 이후 써놨던 각서가 생각나서 꺼내서 읽다가 이내 휴지통에 버렸다.

지켜지지도 않고, 갖고 있어봤자 소용도 없는 이런 무의미한 종이쪼가리는 더 이상 보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을 이해해야지 생각을 하다가, 벌써 이게 몇번째인지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음날

우린 다시 아무일 없었단 듯이 지냈고, 남편은 특히 아빠,엄마의 싸움으로 놀랬을 첫째아이에게 온 에너지를 쏟았다.


첫째 아이가 남편과 숨바꼭질을 하며 꺄르르 웃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 그래..평소엔 저렇게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인데…’


오늘도 난, 또 남편을 이해하고 다시 잘 지내보자고 다짐한다.


이전 08화 8. ‘우리 귀한 아들’을 외치던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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