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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희 Apr 10. 2024

10. 남편과 박 터지게 싸운 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부부는 싸움을 하여도 화합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출처 네이버


몇년의 시간이 지났다.

중간중간 보통의 부부처럼 소소한 다툼은 있었지만,

그 외로는 평범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어느새 아이들은 유치윈에 입학 했다.




이제 써내려 갈 일이 남편의 마지막 폭력이 된 듯하다. (앞으로 또 반복될 수는 있겠지만.)




어느 날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는 첫째를 위해 집에서 2시간 거리인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마침 그 곳에서 지역축제도 한다고 하니 축제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사진도 잔뜩 찍을 생각이었다.


여행 하루 전 날, 가족 여행을 다음날 앞두고 남편이 회식을 한다고 전화가 왔다.


“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회식이라고?”


“ 그동안 애기들 키운다고 몇년동안 회식 한번 참석하지 못했잖아. 회사 사람들이 하도 저녁만 먹고 가라고 성화여서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야. 금방 먹고 일찍 들어갈게.”


“ 하.. 술은 조금만 마시고, 일찍와. 내일 아침 일찍 여행가야하니까.”


“ 알았어! 고마워-“




하지만 역시나.


남편은 술은 조금만 마시고 일찍 오겠다고 했지만, 우려했던 데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음날 놀러 갈 생각에 한껏 들뜬 아이들을 재우고 씩씩대며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내일 아침 일찍 가야하는데 왜 아직까지 안 오냐고 소리쳤다.


남편은 취한 듯 살짝 혀가 꼬여있었고 금방 간다고만 했다.

하지만 화가 잔뜩 난 나는 10분-15분에 한 번씩 전화해서 확인을 했고, 집에 5분 내로 도착한다는 남편의 마지막 답을 듣고 남편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집 밖으로 나와 계모임 언니가 운영하는 바로 집 앞 호프집으로 갔다.


계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언니들 몇 분이서 생맥주 한잔씩들 하고 계셨고, 남편에게 기분이 상했던 나는 그 자리에 함께 하게 됐다.


냉수를 들이키며 언니들에게 남편의 불만을 막 쏟아내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 사람들 있는데 전화해서 그렇게 싫은 소리를 했어야 했냐며, 남편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다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처참했다.


남편은 언니가 운영하는 호프집까지 쫓아와 욕을 퍼부었다.


“ 여기 장사하는 데니까 나가서 얘기하자.”


일단 남편은 데리고 호프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남편은 날 구타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호프집으로 삼삼오오 모인 아파트 계모임 언니들이 뜯어말렸다.


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남편은 달려와 내 목을 발로 찼다.


나는 그대로 넘어졌고, 목을 부여잡고 일어서며 목뼈가 부러지지 않음에 순간적으로 다행이다 여겼다.


목을 부여잡고 아파서 끙끙대고 있는데 A언니가 내 몸을 감싸며 남편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나 보네. 의외로 침착한 걸 보니.”


언니의 말은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은 맞으나, 난 지금 침착한 상태가 아니었다.


A언니는 근처 카페에 날 데리고 갔지만, 난 점점 더 솟구치는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커피를 주문하러 간 언니를 두고서 남편이 있던 곳으로 달려 갔다.


도저히 이렇게 해서 끝날 일이 아니고, 이렇게 맞고는 못살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가만히 서있는 날 향해 달려와 내 목을 발로 찬 걸 용납할 수가 없었다. 목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만큼 어찌나 세게 찼던지, 남편의 발목 인대가 끊어져서 다음날 통기브스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멀리서 아픈 발목을 잡고 주저앉아서 싸움을 말리던 언니 중 한 명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이미 모든 이성의 끈을 놓은 나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분노가 차올랐다.

나는 꽤 묵직했던 나의 운동화 한짝을 벗어 들고 길 위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편의 뒷덜미를 향해 내리쳤다.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남편은 기습적으로 한대를 얻어맞고 다시 흥분을 했다. 나의 머리채를 잡고 주먹을 휘둘렀다.

나 역시 지지 않고 남편의 머리칼을 뜯으며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정말 박 터지게 싸웠다.


결국 지나가던 행인까지 나서서 우리를 말렸고, 곧 경찰이 왔다.


남편과 나는 경찰이 오니 조금이라도 진정을 할 수 있었고, 결국 남편이 집에 남고 나는 내 물건 몇 가지를 챙겨 나오기로 협의했다. 그리고 남편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에 경찰에게 사건접수를 요청했다.


서로 폭행한거라 쌍방이라 하더라도 전처럼 그냥 넘길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더욱 용서할 수 없었던 건, 경찰분들에게 사건접수를 요청하는 사이 남편이 나의 친정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이 상황을 말하며 나와 이혼할 거라고 하는 것이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친정아빠한테는 왜 전화한걸까? 내가 당신의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면 당신은 용납이 되었을까?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보여주는 남편의 유치하고 저급한 행동에 너무 지쳐버렸고 단 1분 1초도 같은 곳에 있고 싶지 않아 그대로 집을 나와버렸다.


내일 여행 간다며 들떠있던 아이들 생각에 몇 시간을 울었던 것 같다.

아이들한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단 사실에 미칠 것만 같았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이렇게 터지는 현실이 조마조마하고 싫었다.


모든게 남편 탓이라고 생각치는 않았다.

우린 성격이 맞지 않았고, 나 역시 남편에게 잔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손지검이 습관이 되어있던 건 분명했다.


이날 이후 나는 심각하게 변해있었고, 병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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